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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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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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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과 국민의당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 일부도 탄핵 의지를 밝혔으니, 이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정족수를 채우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탄핵시계'가 빨라짐에 따라 국민들의 마음은 벌써 다음 대선에 가 있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난 두 번의 대선이 부정으로 얼룩졌고, 그렇게 뽑힌 대통령이 전혀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회의적이다. 조만간 새누리당은 친박계 핵심인물 몇몇을 정리하고 당명을 바꾸어서 다시 등장할 텐데, 그러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후회하면서 박근혜에게 투표했고, 지금 다시 박근혜를 뽑은 것을 후회하는 중인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은 이 이름만 바뀐 새누리당이 내세우는 후보에게 한 번 더 표를 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게다가 야당 후보는 여러 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왜 실망했다느니 후회한다느니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번번이 같은 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일까? 간판이 바뀌었으니 다른 당이라고 믿는 것일까? 이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야당 쪽에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는 정당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물이고 계파이며 동원력이다.

그럼 이 콘크리트 지지층이 생각하는 '인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역설적이지만 이것은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쉽게 드러난다. 차기 대선후보로 순위를 다투는 네 사람(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이재명)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그리고 세 명은 전직 변호사, 한 명은 전직 의사(소위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대선은 인구에서 다른 지방을 압도하는 경상도 표의 향방이 매우 중요한데, 경상도 사람들은 경상도 출신의 출세한 사람만을 '인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경상도 사람들은 동창회장을 뽑는 것과 동일한 기준으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아왔다(다른 지방도 비슷하지만 경상도가 특히 심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뤼크 볼탕스키는 파시스트 조직이 동창회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동창회에서는 출세한 동창 몇 명이 나머지 동창들을 대표한다. 즉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사장이 노동자를,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며 술잔을 부딪친다 해도) 같은 계급에 속하지 않으며,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들의 유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함께 먹던 음식같이 상징적인 것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사람이 아니라 식성이 비슷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재래시장으로 달려가서 어묵을 먹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소탈함'을 과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공한 동창은 이렇듯 다른 동창들에게 자기가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았음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주말에는 촛불집회에 가야 한다. 이번에는 300만이 모일 거라고 한다. 87년 민주항쟁을 떠올리며 감격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기쁘지 않다. 30년째 우리가 제자리를 맴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동창회의 정치에서 벗어나, 우리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지도자를 갖게 될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