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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윤리'가 '비윤리'보다 악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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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uu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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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교수의 '변절'을 생각하며


한 나이 든 교수와 일한 적이 있다. 인문학자였고, 날렵하고 깔끔한 글을 쓰는 비평가였다. 만화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안목이 높았다. 최신의 문화이론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비교적 격의 없는 성격이었고, 따뜻한 분이었다.

그런데 진보, 좌파 진영에 대한 증오심이 아주 깊었다. 멀쩡히 식사를 하시다가도 '운동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한참 열변을 토하며 미움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뭐 흔히 있는 일이다. 현대 이론을 전공한다고 해서 꼭 진보적인 지식인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그는 이를테면 자신의 신념을 확 바꾼 케이스였다. 그는 한겨레신문사 창간에 힘을 보탰던 사람이고, 군사정권에 맞서서 동조단식을 했었다. 자기는 정말 그야말로 쫄쫄 굶었는데 명망 높은 'B'교수는 몰래 자장면을 시켜먹다가 걸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들은 그의 '변절' 이유는 이렇다. 참여정부 초기에 그는 신문에 비판적인 칼럼을 썼다. 그리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그 비난이 정도를 지나쳐서 그의 직장과 가족을 겨냥했고, 그는 완전한 반성을 강요받았다. 사람들은 그를 욕하고 등을 돌리며 나갔다.

그리고 그의 마음의 어떤 부분은 조금 망가졌다. 늙은 교수는 고통과 미움을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영원히 이쪽 편을 떠났다. 나는 그 칼럼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분명히 꽤 예민한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비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공격의 방식과 총량은 상호간에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한다. 한쪽에서 확성기로 욕을 했다고 해서 한쪽에서 총을 쏘면 안 되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어서 하는 저주와 비난은, 욕보다는 총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학술서 편집자 출신이다. 학자들의 책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면서 나는 그런 식으로 바뀌어버린 이들을 꽤 많이 보았다. 수도의 위치에 대한 법적 논쟁에 참여했다가 너무 많이 두들겨 맞은 한 명예교수는 자신의 '학술서' 서문에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증오와 저주를 담았다. 그도 역시 제자들의 사랑을 받는 온건한 학자였다.

그렇다면 조금 공격받았다고 망가지고 변절하는 그들의 나약함을 욕할 것인가, 왜 당신은 우리가 처음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나와서 엎드려 빌지 않았나, 그렇게 그들에게 책임을 묻겠는가.

나는 '과잉 윤리'가 '비윤리'보다 더 악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무리 안의 '배신자'로 추정되는 이들에 대한 린치는 언제나 적에 대한 공격보다 더 가혹했다. 그들에 대한 윤리적 미움과, 바로잡겠다는 욕망이 그 명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래 왔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