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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가 고통받아야 하는가 | 집회 '눈길끌기용' 동물 동원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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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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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인 26일, 광화문 광장에 소 두 마리가 나타났다. 한 농민이 '박근혜씨 하야하소'라는 문구를 붙인 소를 타고 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낮 시간부터 인터넷에는 코뚜레를 한 소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빽빽하게 들어선 인파에 휩쓸려 다니는 사진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5시경 촛불집회 사회자는 "소 두 마리가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찰에 막혀있다"며 "소가 무대까지 올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구했다. 언론에 따르면 소를 탄 농민들과 경찰의 대치 상황이 한 시간 이상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경찰 간 몸싸움도 일어난 것으로 보도됐다. 오후 6시 30분 경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소를 탄 농민과 경찰 간의 대치 현장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교보문고 앞에서 소를 탄 농민이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소를 탄) 사람은 교체를 하고 있지만 소는 밀착되어 가로막힌 채 한 시간 넘게 서 있으면서 토하고 비틀거리고 있다"며 근처에 있는 수의사를 찾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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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에서 한 참가자가 소를 타고 행진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사 밑에는 소와 집회 참가자의 안전을 염려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놈의 정권 때문에 소도 고생한다'며 소를 위로하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든 정권을 탓해야 한다', '소가 아니라 농민의 고통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혹은 현장에서 봤는데 소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도 많았다.


소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동물이다.


소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동물이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FAO)의 자료에 의하면 소는 사람보다 청력이 훨씬 민감한데, 특히 고주파에 민감해 사람이 듣지 못하는 간헐적인 소음에도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미국 농무부 연구에서는 전화벨 소리를 들은 소의 심장 박동이 1분에 50회에서 70회로 증가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300도 이상의 넓은 각도를 볼 수 있는 시력을 갖고 있는 소는 빛의 대조에 민감하고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면 쉽게 겁을 먹는다. 도시의 불빛과 백만이 넘는 촛불, 함성으로 가득한 광장에서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까지 받으며 소가 공포를 느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300킬로그램이 넘는 소가 공포에 질려 날뛰거나 공격성을 보였다면 사람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외부 자극에 민감한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도 도축장으로 운송할 때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동물운송세부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의 명보영 수의사는 "소는 예민하기 때문에 좋은 육질의 동물을 생산하기 위해 가둬서 기르지도 않고, 닭이나 돼지 등 다른 축종에 비해 사육공간도 여유 있는 편이다. 그런 소가 낯설고 복잡한 환경과 소음에 노출된 데다, 특별히 훈련되지 않은 동물이 사람을 태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심지어 사람 많은 곳에 적응하도록 사회화가 된 반려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큰 집회에 동물을 데리고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시위에 눈길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동물이 동원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시위에 눈길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동물이 동원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농민들의 시위에 동물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난 7월 여의도에서 열린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농축산물 제외 촉구 전국농축산인 총궐기대회'에서도 한우농가 참석자들은 현수막을 건 달구지를 매단 소와 함께 행진했다. 거리로 내몰리지 않고 시위의 도구가 된 경우도 있다. 2012년 전북 순천에서는 소값 파동과 사료값 폭등에 항의하는 한 농장주가 소에게 먹이를 죽이지 않고 몇 달 동안 굶겨 죽이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당시 50여 마리의 소가 아사했다.

2013년에는 반달가슴곰까지 청계광장에 등장했다. 곰 쓸개즙 때문에 곰을 사육해 온 농민들이 곰 사육 금지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에 동원한 것이다. 10년 동안 몸 크기만 한 철창에서 정신병에 시달리며 자기 팔다리를 뜯어먹다 도살되는 운명도 억울한데, 자신의 '몸값'을 요구하는 시위에까지 끌려 나오는 것은 곰의 입장에서는 정말 공평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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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5일 서울 청계광장에 전국사육곰협회 회원들이 데려온 사육곰이 우리 안에 갇혀 있다.

때로는 동물과 전혀 상관이 없는 시위에 동원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한 공무원노조 간부가 '청주시장'이라고 적힌 천을 개 몸통에 붙이고 시청 광장을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2007년에 발생한 '돼지 능지처참' 시위다. 경기도 이천으로 군부대를 이전하는 데 반대하는 시위를 하던 일부 시민들이 국방부 앞에서 살아있는 새끼돼지의 네 발에 밧줄을 묶고 잡아당겨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 퍼포먼스'를 벌였다. 당시 군부대 이전반대 이천시 비상대책위원회는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농사밖에 모르는 농민들이고 가축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라며 "일부 주민들이 절박한 감정을 호소하려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사과했다.


"사람이 받는 대우도 이 지경인데 웬 동물 타령이냐"고 한다면, 인권은 나중이라던 경제성장주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농부에게 정부와 경찰이 물대포를 쏘아 숨지게 하는 비극을 겪은 상황에서 입을 열기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촛불집회 주최 측과 농민들께 시위를 위해서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은 이제 자제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어차피 도축될 동물인데, 주인 맘대로 시위에 좀 동원하면 어떠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단지 동물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고통을 당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국민을 '위에서 군림하며 마음대로 짓밟아도 되는 존재'로 취급하는 박근혜 정부, 집권당보다 나을 것이 없다. "사람이 받는 대우도 이 지경인데 웬 동물 타령이냐"고 한다면, 일단 잘 먹고 살아야 한다며 경제 성장이 먼저, 노동자 인권은 나중이라던 경제성장주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정부 비판 외의 문제를 지적하면 '물타기'라고 하거나,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간절히 원하는 박근혜 퇴진은 사실 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소'가 논란의 중심이 된 소값 파동 때도, FTA를 강행하면서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농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의 잘못을 탓하기 위해 꼭 소까지 단지 '보여주기 위한' 고통을 당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잘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애꿎은 대상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옳지 않은 일이다.

동물은 정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 생명을 물건처럼 여기는 정권에서는 동물도 피해를 입는다. 잔혹한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인터넷에는 분개하는 댓글이 넘쳐나지만, 정작 동물학대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단계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동물관련 법안은 어렵게 발의돼도 국회에서 '사람 먹고 사는 법'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않고, 꼭 필요한 정책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된다. 동물원 동물에게 최소한의 처우를 보장하자는 취지로 2013년 장하나 전 의원이 발의한 '동물원법'도 국회 환경운동노동위원회에서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폐기될 위험에 처해 있다가 결국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핵심조항이 다 빠진 상태로 2016년 어렵게 통과됐다. 올해 SBS 동물농장에서 방송된 '강아지 공장'이 논란이 되면서 개 번식장 금지를 촉구하는 서명에는 수만 명이 서명했지만, 표창원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비롯해 20대 국회에 발의된 14건의 동물보호법 개정안 중 단 한 건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품 법안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날 저녁, 광화문 광장에는 가수 양희은이 노래하는 '행복의 나라로'가 울려 퍼졌다. 내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70,80 년대 거리에서 목이 쉬도록 불렀을 그 노래를 이제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부르는 중년층도 있었다. 어른들과 달리 가사를 알 리 없는 고등학생들도 노래 중간에는 몸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다가 마지막 후렴구인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는 힘을 주어 함께 불렀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노래하는 '행복의 나라'에 대해 생각했다.


광장에서 단지 눈길을 끌기 위해 고통당하는 동물은 다시 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는 단지 박근혜 정권이 물러난 나라만은 아니다. 이다음에라도 권력과 이득만 챙기려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감히 정치인이 될 꿈도 꾸지 못하는 나라다. 내가 낸 세금이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 나라다. 일하는 사람은 정당한 임금과 대우를 받고,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다. 돈이 없다고, 학력이 낮다고, 여자라고, 동성애자라고, 나이가 어리다고, 혹은 나이가 많다고, 장애가 있다고,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차별 받지 않는 나라다. 그리고 '생명이 생명으로 존중받는 나라'다. 동물이 물건처럼 다루어지지 않는 나라다. '개돼지'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대로 짓밟고 이유 없이 고통을 주어도 되는 나라가 아니라, 설사 사람들에게 이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길러진다 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동물이 갖고 태어난 모습과 습성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나라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가 내 옆에서 노래하던 사람들이 살고 싶은 나라, 그리고 농민들이 얻기 위해 투쟁하는 나라와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번 주도,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 것이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 단지 눈길을 끌기 위해 고통당하는 동물은 다시 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