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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무티의 지휘료 논란, 질문이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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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문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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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무티의 지휘료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기 필을 두 차례 지휘하면서 받는 돈이 3억 원 가까이 된다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궁금해하던 부분이었다.) 단독 타이틀 걸고 기사를 낸 한겨레는 '베를린 필의 사이먼 래틀도 회당 5천만 원(2009년 기준)인데 이 무슨 혈세 낭비냐?'라고 말하는 모양새다.

난 한겨레에 하나만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런 사안을 이야기할 때 기회비용을 싹 걷어내면 논의가 매우 미흡해진다고. 알다시피 클래식 음악의 주요 무대는 유럽과 미국이다. 거기서 활동하는 유명 음악가가 아시아 동쪽 끝에 자리한 한국에서 연주 활동을 하기 위해선 치러야 하는 대가가 아주 크다.

크게 둘로 나눠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희생해야 하는 스케줄이 더 많다. 무티 같은 거장은 몇 년치 스케줄이 꽉 차 있는 걸어 다니는 중견기업이다. 비행시간과 시차 등을 감안할 때 다른 스케줄을 포기해야 하기에 홈그라운드에서보다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에겐 엄연히 소속된 매니지먼트 회사가 있고, 클래식 음악 또한 계산기를 두드리는 비즈니스다.

둘째, 한국의 경기 필을 지휘하는 건 무티의 커리어에 딱히 도움될 게 없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악단을 지휘하며 관계를 다져가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가 경기 필과의 일시적인 협업을 통해 음악적으로 뭔가를 성취하길 바랄까? 음반, 영상물을 세계 무대에 내고 그걸로 평단과 대중에게 인정받길 바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계 기준에서 경기 필은 완벽한 무명 악단이다. 심지어 한국이 인근의 일본, 중국처럼 매력 있는 시장인 것도 아니다. 잘해도 알아주는 이 없고 못해도 욕 먹을 일 없는 변방이다.

2003년에 로린 마젤이 서울시향을 한 차례 지휘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받은 지휘료가 10만 달러다. 당시 환율로 1억 2000만 원이니 그간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경기 필이 무티에게 지급한 액수보다 더 많다. 아마도 그가 홈그라운드에서 받는 금액의 세 배 정도 됐을 거다. 하지만 난 자연스럽다고 본다. 왜냐하면 마젤 역시 서울시향을 지휘해서 얻을 게 딱히 없었으니까. (당시 서울시향은 한국에서도 2류 악단이었다. 아시아 정상권으로 도약한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지휘료 과다 지급'은 어불성설이다. 애초 그렇게 지불하지 않으면 초빙할 수 없는 인물이니 설득력이 없다. 정말 문제를 제기해 토론을 유발하고 싶다면 다른 지점을 부각하는 게 옳다.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는 건 어떨까?


1) 그렇게까지 지불해서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인가?
2) 그 프로젝트의 비용과 효용을 면밀히 검토했는가?
3) 왜 우리는 클래식 음악(을 위시한 예술) 관련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가?


무티에게 지급한 액수에는 문제가 없다. 끽해야 조금 깎을 수 있느냐 없느냐 정도일 터. 하지만 '그렇게까지 지불해가며 무티를 초빙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얼마든지 던질 수 있다. 이는 좋은 토론거리가 될 수 있고 건설적 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하는 주체는 물론 언론일 테고.

P.S. 좋은 비교대상이 있다. 바로 중국의 프로축구 리그. 세계적인 선수와 감독을 유럽 현지 연봉의 3~5배를 줘가며 영입해대고 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선수 & 감독)이 중국 무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돈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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