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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해제된 문인들의 성기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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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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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에서 이런저런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적지 않은 여성이 문인들의 성폭력 사례를 털어놓으며 일종의 리스트까지 공유된 현황이다. 트위터를 일절 하지 않는 나는 일이 굉장히 커졌음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지인들을 통해서 얼추 전해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를 전해준 그들 또한 피해자였다. (이 글은 그들의 양해를 얻어 쓰는 것임을 밝힌다.)

 지인들의 경험,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개략적인 정황이 그려진다. 가해자는 대부분 작품 활동과 문학 교육을 병행하는 남성 중견 작가이고, 피해자는 대부분 문인이 되기를 꿈꾸거나 문학에 대한 일종의 동경심을 가진 20~30대 여성이다.

 수법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먼저 문학과 관련한 교실 또는 SNS에서 상대를 물색한다. 문인이 되기를 희망하며 배움을 청하는 이, 문학에 대한 동경심 내지 호기심을 품고 있는 이, 문인과 교분을 갖고 싶어 하는 예술적 소양 있는 이 등등. 물론 그런 사람 모두가 대상일 리 없다. 몇 차례의 '간을 보는' 과정을 거쳐 (자신이 보기에) 만만한 상대를 추린다. 대체로 어리고 순진한 여성이 그 대상이다.

 놀랍게도 이게 꽤 타율이 높은 모양이다. 몇 차례 친교를 갖는 사이 작가와 여성 사이에는 '라포르(rapport)'에 가까운 어떤 심리적 유대감이 조성되고 이 과정에서 여성은 상당히 수동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작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불합리한 언사는 물론 언어적·물리적·성적 폭력에도 강력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작가만의 '예술적 기질'로 착각하거나 포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3자 관점에선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한데 당사자(=내 지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니 그 심리는 단순히 합리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노회한 프로 작가가 문학에 대한 (어떤 종류든) 동경심을 가진 어린 여성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 가까웠다. 내 지인들도 모종의 유대감에 의해 도리어 감싸거나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것이 부당한 폭력임을 인지하고 스스로 부끄럽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지금 트위터에서 봇물처럼 터지는 건 바로 이 목소리다. 현재 내 지인들은 미당문학상과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모 시인을 성토하고 있다. 그는 내 지인에게 수차례 폭력을 행했는데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자신이 제안한 왕게임을 하던 도중 지인의 팬티를 강제로 벗기고선 벌거벗은 하체를 보고 "처참하다, 처참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른 날에는 얼굴을 잡고 뺨을 열 차례 가까이 때리고선 무릎베개를 해달라고 요구한 후 다른 이에게 섹스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 지인에게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젊은 여성 두 명도 '무시해서'를 이유로 미친 듯이 때리는 것을 지인이 직접 목격했다.

 당사자들은 이런 게 한두 건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전한다. 당시 극심한 수치를 느꼈음에도 차마 신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이제 와서 원망하고 있다. 오히려 당시엔 상대보다 자신을 질책하며 자책했다. 위에서 말한 라포르 때문이다.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인 신고를 도리어 그 시인 개인에 대한 배신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지금도 다른 사안이 더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만 할 뿐 차마 다 말하지 못한다.

 지인은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그런 일을 겪는 동안 주변 문인 중 누구도 주의를 주거나 말리지 않았다고. 다들 그런 걸 암묵적으로 동의 또는 방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이들 또한 비슷한 사례를 적잖게 알고 있을 텐데 차마 발설하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쉬쉬해온 오래된 일이란 뜻이다. 낭만, 권태, 퇴폐 등의 단어로 그럴싸하게 치장된 문학판의 속살 내지 민낯이다.

 혹자는 이런 건을 두고 이상한, 아니, 비열한 라벨링을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피해 여성을 가리켜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이들'이라거나 '환상만을 좇는 아둔한 이들'이라고 폄훼하는 행위 말이다. 부당하다. 그런 식의 고정관념으로 피해자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한낱 혐오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실제로 그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성숙한 사고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언어적·물리적·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에 위와 같은 라벨링은 그저 비열한 혐오발언일 뿐이다.

 지금 문제시되는 대목은 그들의 관계에 폭력이 개입됐다는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문란하게 잠자리를 가졌다는 그런 이야기는 굳이 이렇게 공론화할 필요가 없다. 어디까지나 아랫도리의 일로서 개인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폭력은 다르다. 그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타인의 인권을 짓밟은 일이다. 문학을 빌미로 (자기 딴에는) 만만한 여성을 물색해 일상에서 폭력을 행해왔다는 데에서 그 심각성은 부인할 길이 없다. 이는 문인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각성하고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문단_내_성폭력

※문인들에게 : 남 얘기할 때만 정의로운 척 열불 내지 말고 우리 얘기할 때도 똑같이 열불 좀 내봅시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입을 싹 다물어요? 어떻게든 틀어막아 보려고 뒤에서 애쓰며 서로 싸고 도는 정황이 파악되고 있는데 보기 애처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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