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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과 음악회 '예매대전' 이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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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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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김영란법의 여파로 세계적인 악단의 내한공연 티켓이 평소보다 현저히 싼 2.5만 원에 대거 풀리며 한바탕 예매대전이 일었다. 가격이 하필 2.5만 원인 것은 그래야 두 장을 선물해도 5만 원을 안 넘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김영란법 때문에 벌어진 음악회 예매대전]

 한데 이를 두고 잘됐다며 통쾌해하는 목소리가 은근히 들린다. 요약하면 '솔직히 너무 비싸니 이참에 거품 좀 빠져라!', '공짜로 비싼 초대권 팍팍 뿌려대더니 꼴좋다!', '누군 돈 내고 보고 누군 초대권으로 보고!' 등이다. 보통의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되는 불만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까지 알면 약간은 달리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간략히 써보고자 한다.


단적으로 잘라 말하면 우리나라 공연·예술 산업, 특히 클래식 공연계를 지탱하고 있는 건 입장료 수입이 아니다.


 사실 굳이 간략히 쓰겠다고 밝힐 필요도 없다. 애초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단적으로 잘라 말하면 우리나라 공연·예술 산업, 특히 클래식 공연계를 지탱하고 있는 건 입장료 수입이 아니다. 바로 기업으로부터 따낸 후원이다. 기업의 후원이 없으면 애초 큰 공연의 유치 자체가 불가능하다. 수요가 미미해서 손익분기점을 맞출 만큼의 유료관객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장료 수입에 대한 기대가 낮다면 기획사로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그냥 공연 유치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입장료 외의 다른 수입원을 발굴해 공연을 유치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기획사가 둘째 경로를 택했기에 우리는 퀄리티 높은 공연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었다. 즉 기업의 후원을 유치해 손익분기점을 맞춰왔다는 의미다.

 그간 여기저기 뿌려진 초대권은 상당수가 바로 이 후원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 것이다. 기업은 기획사에 돈을 지원하고 기획사는 그에 상응하는 초대권을 지급했다. 그리고 기업은 그 초대권을 그들의 임직원 혹은 접대해야 하는 이들에게 선물했다. 따라서 그 초대권을 마냥 공짜표로 보기는 어렵다. 큰 틀에서 보면 그들 또한 유료관객일 수 있다. 단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돈을 지불했을 뿐.

 혹자는 물을 수 있다. 그런 게 무슨 후원이냐고? 맞다. 누가 봐도 이상한 후원이다. 실제로 그에 대한 문제제기는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해외 사례를 봐도 후원의 대가로 그렇게까지 많은 표를 받아가지는 않는다. 수준 높은 콘텐츠를 지원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아니다. 왜? 클래식, 나아가 순수예술을 지원해봐야 딱히 기업 이미지에 도움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공연예술 시장 자체가 작으니 돈을 들여 얻을 수 있는 이미지 제고 정도가 미미하다. 또 그런 걸 지원한다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기사를 내주거나 그러지도 않는다. 딱히 기대할 만한 게 없단 소리다.


기획사가 기업에 줄 수 있는 게 달리 없기에 초대권을 준다는 뜻이다.


 해외는 다르다. 유럽의 예를 들어보자. 거긴 클래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은 서양의 엘리트 문화에 불과하지만 거기선 아니다. 그들에게 클래식은 지켜야할 문화유산이고, 향유층이 확산된 과정 또한 역사적 맥락에서 받아들여진다. 수백 년 전에는 귀족 문화였으나 18~19세기의 민주화, 자본화를 거치며 그 범주가 대중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 역사적 맥락에서 클래식을 보는 인식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기업으로선 충분히 후원할 만하다. 일단 수요층이 넓어 널리 노출되니 수지타산이 맞고, 그런 콘텐츠에 대한 지원이 예술/역사 유산을 지키고 보급하는 사회적 기여로도 인식된다. 이쯤 되면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기에 괜찮은 아이템이다. 지원할 유인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지원해봐야 딱히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노출 빈도도 낮고 이미지 제고 효과도 미미하다. 그래서 후원의 대가로 초대권을 요구한다. 그건 복지나 접대 등에 활용할 수 있으니까. 다시 말해 기획사가 기업에 줄 수 있는 게 달리 없기에 초대권을 준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 난 기이한 후원 문화의 근본 원인이 문화 토양 차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어떻게 치유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솔직히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넘어설 수 없는 한계랄까?

 많은 예술 관계자들이 순수한 후원을 운운하며 읍소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현실에서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업 입장에서 관건은 다른 무엇보다 유인(incentive)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각종 사회공헌사업을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행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게 기업의 생리다. 계산기 안 두드리고 막 퍼주는 기업이 있다면 진즉에 자빠져서 애초 후원 따위를 할 여력도 없을 거다. 후원할 만한 자금을 갖고 있는 기업은 죄다 깐깐하게 계산기 두드려가며 돈을 번 기업이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일부 예술단체가 후원회 등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양상을 보면 사실상 상류층 사교집단이다. 예술을 매개로 네트워크를 넓히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란 뜻이다. 원활히 운영되는 후원회는 다들 네트워크 확장의 장이라는 유인을 충실히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건 나쁜 것도 아니고 영악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과정에서 후원까지 이뤄지니 사회로서도 나쁠 것 없다.


문제는 초대권을 뿌리지 않으면, 다시 말해 초대권을 뿌릴 만큼 기업의 후원을 따내지 않으면 애초 공연 자체를 유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다시 초대권 이야기로 돌아오자. 그동안 초대권으로 불거진 문제 때문에 애호가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누구는 제값 내고 보는데 누구는 초대권으로 보니 유쾌할 리 없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좋은 좌석의 대부분이 초대권에 배정되며 돈이 있어도 좋은 자리를 예매하지 못하는 데 따른 불만도 있다.

 그뿐 아니다. 기업이 접대용으로 뿌린 표가 모두 음악 애호가에게 갔을 리 없다. 그 때문에 초대권 관객들이 객석 분위기를 흐리고 심지어 공연을 통째로 망쳤다는 흉흉한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자기가 받은 초대권을 중고나라 등지에 저렴하게 내다 팔며 제값 주고 산 사람의 박탈감을 야기하는 경우도 잦다. 솔직히 나도 만 원짜리 두어 장으로 20만 원 상당의 좌석을 몇 차례 산 적 있다. (이는 대중음악에도 해당하는 사례다. 마이클 볼튼 내한공연 티켓은 서로 싼 값에 팔겠다고 전쟁을 벌였다. 느긋하게 기다린 사람은 모두 1만 원 이하에 샀을 거다.)

 한데 문제는 그렇게 초대권을 뿌리지 않으면, 다시 말해 초대권을 뿌릴 만큼 기업의 후원을 따내지 않으면 애초 공연 자체를 유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만약 기업의 후원 없이 공연을 유치한다면 티켓 가격을 지금보다 더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같은 경우 R석 30만 원대 중반, C석 5~7만 원 정도에서 형성되는 게 보통인데 이게 각각 50만 원 이상, 10만 원 이상으로 오른단 뜻이다.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다. 많은 유료관객이 초대권 관객을 욕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초대권 관객의 보조를 받아 유료관객이 조금 저렴하게 보는 셈이니까. 만약 기업의 후원 없이 유료관객에게만 철저히 의존한다면 굵직한 공연의 상당수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나마 해볼 만한 몇몇만 티켓 값이 인상된 채 무대에 오를 공산이 크다. 과연 이게 모두에게 좋은 상황일까?

 약간 그럴싸하게 표현하자면 그동안의 일그러진 문화조차 어찌 보면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 각 행위자가 현재의 상태에서 굳이 이탈할 유인이 없는 상황)의 일환일 수 있다. 기업은 초대권을 얻어서 활용하고, 기획사는 초대권을 발행해서 공연을 유치하고, 관객은 그 덕분에 더 많은 공연을 조금이나마 저렴하게 보고. 여기에 김영란법이라는 충격(shock)이 가해지며 업계가 패닉에 빠진 것이다.

 이제 조금 그림이 그려지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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