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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일베 조형물'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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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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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일베 조형물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먼저 난 그런 식의 작품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술적, 철학적으로 어느 정도의 깊이와 설득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런 작품을 만들어서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이 형편없으면 그냥 그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하면 될 일이다. 만들지 마라고 강요하는 데엔 난 반대한다. 때려 부수는 건 당연히 범죄이고.

한데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그걸 파손한 이더러 책임지라고 말하는 건 어딘지 아쉽게 여겨진다. 구상 및 제작 단계에서 그 정도 반응은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는 데다가, 어쩌면 훼손되는 단계까지 가야 작가 본인이 주장하는 작품 본연의 메시지가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반응 역시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충분히 응축하고 있지 않나.

때려 부순 건 당연히 잘못한 일이지만 작가가, 그것도 도발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말하고자 했던 작가가 그를 두고 처벌이나 책임 운운하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는 소견이다. 본인의 메시지를 스스로 희석시키는 것처럼도 보인다. 한편으로는 일베를 향한 사회의 강력한 우려를 고려할 때 그 정도 반발은 예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걸 때려부수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들 간에 관용이 가득했다면 애초 일베는 탄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처음 그 일베 조형물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당연히 작가가 파괴까지 염두에 두고 작품을 기획한 것으로 예상했다. 한데 실제 파손 후의 입장 전문을 보니 그게 아닌 듯하다. 반발이 있으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그 정도를 훨씬 낮게 잡은 모양이다. 이는 사회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 차이일 수도 있겠다. 내가 느끼는 우리 사회는 '당연히 때려 부수는 누군가가 있는' 공간인 반면 작가가 느끼는 우리 사회는 '그렇다고 때려 부수지는 않는' 공간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서 일베가 차지하는 의미와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정서를 감안한다면, 나아가 그런 메시지를 그런 방식으로 대중에게 던지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는 관용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오히려 그편이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한결 더 잘 살리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작품의 범주를 조형물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일련의 행태로 확대한다는 의미다. 조형물은 훼손됐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작품은 완성됐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난 그가 내놓은 입장 전문의 대부분에 공감한다. 책임을 지라는 대목만 빼면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구절 때문에 그가 입장 전문에서 내놓은 말의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듯해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작품을 파손한 것은 반론의 여지 없는 범법행위이고, 노력을 들인 작품이 파손된 것 또한 작가로서는 심히 안타깝고 분통을 터뜨릴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방법론을 취한 작가라면 파손하는 행위조차도 어느 정도는 관대하게 바라보는 편이 현명한 대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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