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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근본주의 그리고 반지성주의 | 히파티아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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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 좌측 하단에 흰 옷을 입고 서 있는 여성이 히파티아이다

히파티아라는 수학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여성 위인이다. 대체로 여성 위인이라고 하면 '헬렌 켈러'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며, 그나마 과학사에서는 '퀴리 부인'을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히파티아는 기원후 355년에 태어난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식별 가능한 인물 중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기도 하다. 이 히파티아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필즈메달을 수상한 여성 수학자로 비견할 수 있겠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테온으로부터 그 시대의 여성에게는 금기시된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이었던 테온은 자연과학과 문학, 예술, 철학, 수사학뿐만 아니라 수영과 승마 등 운동도 딸인 히파티아에게 가르쳤고, 그녀는 금세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지성미를 뽐내기 시작했다.

후술할 것이지만 히파티아는 고대 그리스-로마 지성 사회의 종말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그녀가 쓴 수많은 저서들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업적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하지만 남은 디오판토스의 대수와 관련된 저서를 보면 그녀의 연구 업적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재논의될 정도로 선구적이었다.

히파티아는 외모도 아름다워서 그녀의 제자이자 신플라톤 학파의 학자였던 시네시우스(Synesius)는 그녀에게 '플라톤의 머리와 아프로디테의 몸'을 가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갑자기 외모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그만큼 히파티아가 지성미와 함께 고대 로마 사회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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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윌리엄 미첼의 "히파티아" : 히파티아를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미지화 한 것은 비참한 죽음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하고자 하는 것과 함께 남성 중심 시각이 투영된 것이다

히파티아는 당대의 명사나 왕족들에게 청혼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거절하며 독신을 추구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최고 지성인이자 로마 사회의 슈퍼스타였던 그녀는 결국 자연스럽게 정치적 갈등 구조에 포함되게 되었다.

히파티아에게 삶의 낙이란 연구와 강의였다. 학술원 격이자 오늘날 뮤지엄(museum)의 그리스어 어원인 무세이온(mouseion)에서 제자들을 키우며, 강연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고, 당연히 지성인으로서 알렉산드리아 행정가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은 아주 중립적 행동들이었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독이었던 오레스테스에게 통치에 관한 조언을 자주 해주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의 반대파인 키릴로스 대주교는 오레스테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히파티아를 제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게도 키릴로스 대주교와 정적인 오레스테스 총독은 같은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이다. 다만 기독교인이었지만 오레스테스 총독은 종교적 신념보다 지성에 의한 신념을 현실에 투영했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이었던 히파티아의 조언을 존중했었던 것이었다.

히파티아는 총독인 오레스테스가 기독교인임에도 통치 차원에서 키릴로스 대주교의 영향력을 억제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실제로 키릴로스 대주교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을 혐오했고, 백색테러를 부추기기도 했었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가 국교화되었지만 제국 구성원 중에서는 기독교인이 소수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과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회의 사법권과 재산권을 공인함에 따라 제국의 각지에서는 이렇게 비기독교인들이 대주교에 의해 탄압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특히 학술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반감이 더욱 심했다.

아무튼 키릴로스 대주교는 유대교인들과의 갈등에서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도시 밖으로 추방하는 결정을 했는데, 이 때문에 실제 행정 통치자인 오레스테스 총독과의 갈등 구조는 일종의 종교 전쟁처럼 비화되고 말았다. 이때 오레스테스 총독은 중재를 위해 공개적으로 자신이 세례를 받았음을 밝혔지만 이 이후 기독교인에 의해 공격을 받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러한 종교적 갈등 상황에서 유일한 목표는 지역의 명사이자 비기독교인 중의 상징인 히파티아였다. 히파티아는 강의를 하러 가던 중 마차에서 끌려 나와 발가벗겨진 후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산채로 화형을 당했다. 그러니까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해 벌어진 최초의 마녀사냥이었던 셈이다.

이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완승을 했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파괴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히파티아의 삶을 다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고, 그녀가 어떤 학문적 업적을 남겼는지 자세히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히파티아의 죽음을 둘러싼 모습은 종교적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세상을 퇴보시키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히파티아는 이교도의 관습에도 관심이 없었고, 비기독교인이었지만 종교적으로 편향된 강의나 저술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중재 방법을 조언했고, 종교적 강압이 사람들의 일상에 끼치는 문제에 대해서 경계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 자체가 근본주의자에게는 이단이었고, 배격의 대상이었다. 기원후 415년 어느 날 광신도들은 그렇게 당대 최고의 지성인에게 가장 치욕적인 죽음을 선사했다. 도시민이 숭배에 가깝게 추앙하던 지성을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제거하였는데, 그 방법은 참으로 참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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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of the philosopher Hypatia, in Alexandria" 프랑스 과학저술가 Louis Figuier 의 그림

60세가 된 그녀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머리카락을 마차에 묶어 교회로 끌고 갔으며, 굴 껍데기로 그녀의 피부를 벗겼고, 온갖 고문 후 불에 태워 죽였다. 아마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 시민은 그녀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종교적 반지성주의 앞에서는 상식도 이단이고, 불경이 된다. 히파티아는 누구보다 사상의 자유를 중시했으며, 과학을 사랑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게 그녀의 과학적 사상은 배격되어야 할 이단에 불과했다.

아무튼 그녀의 죽음으로 사상의 자유가 용인되지 못하는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의 도시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로마 지성의 종말이었던 것이고, 히파티아의 죽음이 그 상징처럼 기억되는 까닭이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문명과 학문의 자유를 판단할 때는 언제나 반지성주의가 횡행했고, 역사적으로 문명의 파괴와 퇴보란 결과를 탄생시켰다. 최근 미국에서 99년 만에 개기일식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한때 개기일식은 종교적으로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신이 분노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지성 사회는 예측 가능하고, 새로운 이론을 입증할 흥미로운 천체 현상으로 바라본다. 개기일식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거한 빛의 휘어짐을 관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귀한 구경거리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 우주쇼를 경탄의 시각으로 맞이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 신이 만물을 창조했으며, 그러한 까닭에 현대 과학의 업적들이 부정되는 '학회'가 있다고 한다. 특이할 것은 없지만 그런 신념을 가진 이가 '권력'을 잡고, '공직'에 지명되는 사회를 보니 문득 히파티아가 떠올랐다.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1세대 창조과학자들의 뒤를 이을 젊은 다음 세대들의 대대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일반대학의 크리스천 교수들과 네트워킹을 하여 그 밑에서 연구와 학위를 취득하고, 각 분야에 흩어져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여호수아와 같은 인재들을 키워내야 한다. ACGR(Association for Christian Graduate Research)은 이것을 시작하려고 한다"
-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

* 히파티아에 대한 일화는 영화 '아고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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