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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모습에 갇히지 마세요 | 다중인격을 키우는 '자아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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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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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로 진료를 하면 많은 분들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물어올 때가 많다.
"저는 이런 사람 같은데, 남들은 아니라네요. 어떤 게 맞는 건가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변을 드린다.
"전부 다 맞아요."

사람의 마음은 32만 트루 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초특급 물감 세트다. 한 사람의 인격은 고대 그리스철학자 헤라클로이토스(BC 540년 ~ BC 480년경)가 말했듯,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외부의 자극과 내면의 정서에 따라 시시각각 공명을 이루며 변한다. 그래서 인격 전체의 변화는 물론이고, 외부 인격, 페르소나가 잠시 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프로그램인 셈이다.

'인격 변화'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법칙'이지만, 외부에서 비치는 모습, 페르소나가 꼭 하나여야만 한다고 믿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님에도 '남이 생각하는 나'를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마치 무대 위에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무대에 내려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쓰러지는 것처럼. 결국 이런 분들은 마음의 심지가 없어 중장년의 위기(mid-life crisis)가 온다. 이분들은 존재 가치를 타인의 찬사에 늘 의존해왔으므로 껍데기만 살다가 세상을 등지는 수가 많다.

최근 진료실에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 때문에 심각한 해리성 장애가 아님에도 혹시 자신이 다중인격은 아닌지 묻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다중인격'이라는 말이 이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단어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인격이 퇴행하거나 성장하는 현상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신적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마음의 물리 법칙'이다.

'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인격만이 있어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얼마 전의 한 조사에서는 '일할 때 자신의 원래 성격과 다른 태도나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직장인 비율이 90%나 됐다. 또한 일할 때 '다중인격' 행동을 보이는 것에도 95%가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다행스럽게도 실생활에서는 이미 '다중인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더 다양한 사람,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선 이제 '다중인격'이 요구되고 있다. 하나의 모습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의 내면의 자아를 기르는 것. 이것이 바로 '다중인격 관리'다. 지금까지 자기관리라고 하면 대부분 뱃살을 뺀다, 근육을 만든다 등과 같은 신체적인 관리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도, 자신의 다른 인격들도 관리해야 한다. 일본 타마대학교 대학원의 다사카 히로시 교수는 이 점에 착안해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 이란 책을 썼다. 그의 새로운 자아 관리법은 일본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 <박경림의 두시의 데이트>, <가족의 발견>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면서 만나온 사람들 중 '다중인격 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역시 유재석 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녹화할 때면,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출연자와 스태프를 하나로 이끄는 리더십으로 일인자가 되지만, 카메라 불빛이 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배려 넘치고 젠틀한 우리가 잘 아는 그 이미지로 금세 돌아간다. 유재석 씨는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꾸준한 운동으로 신체적인 자기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잠재인격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수준급 인격관리를 무의식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서 간이 진료를 해본 기억에 따르면 그 분 역시 지나치게 페르소나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동남아 여행이 꿈이라는 그의 말과 눈빛은 절박했다. 외부인격이 가식은 아니지만, 외부인격에 너무 잠식되면 우린 또 다른 껍데기에 잠식당하기 쉽다.

상황에 맞게 다양한 인격을 활용하려면 내 자신의 자아 역시 강해져야 한다. 이는 상호 보완적이라 내 안의 낯선 다중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 안의 자아가 커졌다는 뜻이다. 내 안의 수많은 잠재인격들에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커진 내 안의 자아는, 앞으로 맞닥뜨릴 수많은 장애물을 넘을 때 정신적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자아의 확장이야 말로 정신치료의 근본적 목표다. 물론 '다중인격 관리'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고, '더 큰 자아를 기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가진 기존의 인격과 너무나 다른 새로운 잠재인격을 마주하게 되면, '정말 이게 나야?'라고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다. 융 학파에선 이를 두고 그림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우리가 정작 성장하기 위해선 빛이 아니라 그림자와도 친해져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이다. 다양한 잠재인격들을 유연히 활용할 수 있는 자아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다중인격 관리'를 통해 길러진 더 커진 자아는 이 세상을 오롯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의 가장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다중인격을 키우는 '자아 관리' 3단계

#1 겉으로 드러난 인격(표층인격)을 활용하는 법 : 자기관찰
1) 내가 일을 할 때, 어떤 인격으로 일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한다.
2) 일상생활에서 어떤 인격을 표출하고 있는지 관찰한다.
3) 자신의 일에 필요한 알맞은 인격을 기르고 의식적으로 드러내기

#2 나도 몰랐던 잠재인격(심층인격)을 발견하는 법 : 인격 연출
1)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한정을 하지 않는다.
2)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자신을 연출한다.
3) 적성 검사, 성격 검사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다.

#3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나의 모습(억압인격) 관리하는 법 : 상담
1) 상담과 진료를 통해 갇혀 있는 인격을 꺼낸다
: 대부분 내가 경멸 혹은 혐오했던 인격이다.
2) 자기혐오를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 혐오나 경멸이 커질수록 부메랑이 되므로 결국 자유가 제한되는 건 본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