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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감독 열전(1) : 웨스트햄의 영광을 함께할 슬라벤 빌리치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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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Recine / Reuters
Carl Recine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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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스루에에서 활약한 슬라벤 빌리치 (오른쪽)

페굴리, 노르트베이트, 괴칸 퇴레 등 지난 시즌 7위를 기록한 웨스트햄이 활발히 선수 영입에 나서고 있다. 빅 클럽 진입을 목표로 하는 웨스트햄의 야망을 확실히 엿볼 수 있다. 웨스트햄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는 빌리치 감독에 대한 기대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시즌 강팀 킬러 캐릭터를 구축하며 웨스트햄을 7위까지 올려놓는 데 큰 공헌을 한 주역은 단연 빌리치 감독이었다.

빌리치는 선수 시절,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1993-94 UEFA컵 4강 신화를 이뤘다. 터프한 센터백 빌리치의 수비로 카를스루에는 토너먼트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수비력을 얻었다. 빌리치의 활약상은 영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당시 웨스트햄 감독을 맡던 해리 레드냅은 공식적으로 빌리치에게 이적을 제의했는데, 제의를 수락한 빌리치는 이적료로 클럽 레코드를 갱신하며 많은 기대 속에 잉글랜드 무대에 도전한다.

빌리치는 기대에 충족하는 활약을 펼쳤다. 1996년 1월에 이적해 도중에 합류한 1995-96 시즌에는 13경기를 소화했고, 1996-97 시즌에는 무려 41경기를 소화하며 웨스트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물론 빌리치를 향한 유혹의 손길은 계속됐다. 에버튼은 1995-96 시즌 도중 빌리치에게 이적을 제의했지만, 빌리치는 강등 위기에 처한 웨스트햄을 잔류시킬 의무가 있다며 다음 시즌으로 직접 이적 시기를 미뤘다. 끝내 웨스트햄은 14위로 잔류에 성공했고, 빌리치는 1997년 올해의 웨스트햄 선수 2위에 선정되며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후 1997-98 시즌부터 에버튼 유니폼으로 바꿔 입은 그는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사후징계, 월드컵 피로 누적, 노쇠화 등을 이유로 꾸준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3년간의 활약 후 프로 데뷔팀 하이두크 스플리트로 복귀했고, 2000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빌리치는 선수 시절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감독 대행을 맡아 지도자 경력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크로아티아 U-21, 성인 대표팀을 지휘했고, 유로 2008, 2012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 명성을 얻었다. 유로 2012를 마친 빌리치는 클럽팀 감독직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의 첫 행선지는 러시아 리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였다.

하지만 로코모티브에선 실패했다. 빌리치의 로코모티브는 소련 해체 후 러시아 프로리그에서 구단 사상 최악의 성적인 9위를 기록했다. 결국, 빌리치는 한 시즌 만에 로코모티브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터키의 베식타스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3년간 무려 7번의 지도자 교체가 있었던 베식타스는 흔들리는 팀을 잡아줄 지도자가 필요했다.

빌리치 감독이 크로아티아 감독을 맡을 당시, 유로 2008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3:2로 꺾어 본선행을 좌절시킨 사건은 빌리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다. 그의 '잉글랜드 킬러 본능'은 베식타스에서도 지속했다. 이전까지 베식타스가 잉글랜드 팀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던 걸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 베식타스는 2014-15 유로파리그에서 같은 조에 속한 토트넘을 상대로 1대 0 승, 1대 1 무를 기록하며 조 1위로 32강에 진출했다. 이후 32강 리버풀 전에서는 총합 스코어를 1대 1로 끌고 가더니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며 리버풀을 꺾는 데 성공한다. 잉글랜드 대표팀에 이어 토트넘, 리버풀까지. 중요한 길목에서 빌리치 감독은 잉글랜드 팀들을 좌절시켰다.

비록 리그에서는 뒷심 부족으로 눈앞에서 우승을 놓치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베식타스는 두 시즌 연속 3위를 기록했다. 수차례 지도자가 바뀌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던 베식타스에 안정을 되찾아준 감독은 빌리치였다. 두 시즌 간의 지도를 마치고 베식타스를 떠나기로 한 빌리치는 친정팀 웨스트햄의 부름을 받고, 영국 무대에 복귀했다.

빌리치의 웨스트햄은 시작부터 좋은 흐름을 맞았다. 베식타스에서의 시간이 빌리치의 클럽팀 감독직 적응을 빠르게 도와줬다. 웨스트햄은 개막전부터 아스날에 2대 0 승리를 거뒀다. 이 승리는 웨스트햄이 아스날을 상대로 8년 만에 거둔 값진 승리였다. 리버풀 원정에서도 3대 0 승리를 이룬 빌리치 감독은 1963년 이후 안 필드에서 승리한 유일한 웨스트햄 감독이 됐다. 얼마 뒤 맨시티전에도 2대 1 승리를 거둔 웨스트햄은 EPL 강팀들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개막부터 웨스트햄이 연달아 승리한 아스날, 리버풀, 맨시티전. 이 세 경기는 모두 원정 경기였다. 아스날 원정을 시작으로 강팀과 잡힌 초반 원정 세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이 흐름을 끝까지 이어간 웨스트햄은 마지막까지 강팀 킬러 이미지를 굳히며 다크호스가 됐다.

웨스트햄의 최종 성적은 7위. 쉽게 예상치 못한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빌리치 감독은 다양한 기록을 새로 썼다. 웨스트햄 역사상 한 시즌 리그 최다 승점(62점), 리그 최다 득점(65득점), 리그 최다 골 득실(+14), 리그 최소 패(8패), 리그 원정 경기 최소 패(5패). 모두 빌리치 감독의 첫 시즌에 새로 쓰인 웨스트햄의 역사다. 선수 시절 빌리치는 탄탄한 수비력으로 웨스트햄의 잔류를 이룬 주전 수비수였다. 이제 빌리치는 지도자가 되어 빅 클럽을 향하는 웨스트햄 영광의 순간들을 함께할 준비를 마쳤다.

빌리치 감독은 이제 두 번째 시즌을 맞는다. 경쟁 팀들이 모두 빌리치 감독의 스타일을 파악한 상황에서, 이들의 견제를 어떻게 뿌리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2016-17 시즌, 웨스트햄은 프리미어리그와 유로파리그를 병행하는 어려움이 있다. 일정이 빡빡해진 상황에서 빌리치 감독의 지도력은 더 냉정히 평가받을 전망이다.

지난 시즌 웨스트햄은 선 수비, 후 역습 전술로 확실한 스타일을 자랑했다. 그들의 확실한 경기 컨셉에 강팀들은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스타일이 너무 확고한 나머지 웨스트햄은 중하위권 팀들과의 경기에서 쉽게 이기지 못하는 약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빌리치 감독은 공격적인 전술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화려한 선수 영입에 나서고 있는 웨스트햄,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빌리치 감독이 올 시즌엔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