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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것은 죽은 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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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의 거리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일상 안에 있다는 것. 죽음은 늘 꽁꽁 싸서 멀리 두어야 하는 곳에서 온 나에겐, 그게 처음에는 이상했고, 나중에는 부러웠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에는 묘지가 있다. 많은 학생들이 묘지를 가로질러 학교에 간다. 가득한 묘비 사이로 아이들은 재잘재잘 잘도 다닌다. 여기서는 죽은 이들이 살아 있는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집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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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거리와 공원에서는, 누군가 죽은 이를 위해 생각하며 남긴 기억 조각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벤치를 만들고 나무를 심는다. 얼마 전 산책길에 앉은 나무의자 등받이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렉 노블의 사랑스런 기억을 담아. 67.8.2∼96.1.23. 네가 여기 있었으면." 살아 있었으면 내 나이였을 그렉이라는 젊은이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짠했다. 그에게는 없는 시간이 내게는 있다는 것도 새삼 감사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이, 오늘을 사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죽음과 삶은 기억을 매개로 연결된다.

기억의 날

영국에서는 11월 11일을 기억의 날(Remembrance Day)이라고 부른다. 전몰장병기념일이다. 1차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1일을 기념해서, 191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9월쯤부터 사람들은 포피라고 불리는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기 시작한다. 11월이 되면 길거리 사람들 중 절반은 종이로 만든 빨간 꽃을 달고 있다. 일년 내내 포피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100년 전에 있었던 전쟁. 그 오래된 전쟁에 대해 사람들은 무얼 기억하는 걸까.

1차대전의 참혹함은 그전까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쟁에 대한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고 한다. 그다지 명분도 없이 시작된 전쟁, 젊은이들이 진흙탕 참호 속에서 겪은 것은 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 이은 2차대전. 두 전쟁으로 전세계에서 1억명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포피를 통해 기억하는 것은, 승전의 영광이나 적을 용감히 무찌른 무용담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 전쟁이 훼손한 인간의 존엄성,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헌신, 그리고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연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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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를 기억하는 장소는 곳곳에 있다. 내가 사는 이스트본(Eastbourne) 시청에도 정면 벽에 1차대전에서 전사한 이곳 주민들의 이름이 동판에 가득 새겨져 있다. 유리 장식장 안에는 2차대전 당시 전사한 마을 젊은이들의 명부가 놓여 있다. 작은 시청에 있는 이 '동네 청년들'의 이름을 보면서 잠시 숙연해졌다. 이곳 '비치헤드'(Beachy Head)라는 바닷가 하얀 절벽 위에는 2차대전 참전 공군을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돌에 새겨진 헌정사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많은 이에게 비치헤드는 그들이 본 영국의 마지막 풍경이 되었다."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보고 있는 이 절벽을 본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상상했다.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난다. "그들을 기억하라"(Remember them). '그들을' 기억하라고 했다. 그들의 희생, 그들의 용맹함, 그들의 충성, 그들의 '무엇'이 아닌. 무엇을 기억할지는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를 터이니.

사회적 의례를 넘어

요 몇달 동안 마음은 온통 한국에 가 있다. 하루아침에 바뀐 세상이 신기하고 벅차서 온종일 뉴스만 찾아본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현충일 추념식을,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보며 그렇게 목이 멨던 것은, 이 의례가 우리가 빚진 이들을, 잊고 있었던 이들을, 사라졌었던 이들을, 목숨을 걸었던 시간들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주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 광주시민을, 박관현을, 표정두를, 조성만을, 박래전을, 4·16 어머니에게 말 건네는 5·18 어머니와 그 잃어버린 자식들을, 갓 태어난 딸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후손을, 6·25 참전군인을, 전사자와 빚진 마음으로 사는 전우들을, 베트남 참전군인을,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청계천 여공들을, 순직 경찰관과 소방관을, 박종철을, 이한열을, 그리고 희생된 민주열사들을 '기억하겠다'고 사회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과 그들의 가족만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고,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기억하는 것은 죽은 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오늘도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끝이 소멸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은 큰 위안이다. 당신을 우리가 기억한다고, 애쓰셨다고, 감사하다고, 우리도 잘 살겠다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떠난 사람에게 갖는 빚진 마음을 덜어내고 지금 우리 몫의 삶에 정성을 다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마지막 날이 와도, 내 삶의 흔적이 세상에서 소멸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가 있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기억해주는 영국사회가 늘 부러웠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5월, 6월, 일련의 사회적 의례를 통해 우린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불러내었다. 삶과 죽음을,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기억의 다리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죽은 자를 멀리 유배 보내지 않을 거다. 지나버린 시간을 박제로 만들지 않을 거다.

나는 이런 사회적 의례가 우리 일상에서의 변화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일상의 지지가 있으면, 힘겹게 만들어진 사회적 변화가 쉽게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참에 우리도, 내 삶에서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불러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라고 가만히 이야기하는 각자의 의례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 나의 의례와 사회적 의례가 모여서, 언젠가 우리도 거리의 벤치에서, 공원의 나무에서, 구청 벽면에서, 학교담벼락에서, 바닷가 언덕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빚진 사람, 우리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를, 우리 사회를 만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한,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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