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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개그의 정보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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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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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그가 나타났다. 아재 개그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부장 개그가 새로 등장했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에 그나마 다행이다. 우선 아재 개그부터 알아보자. 아재 개그는 일반 개그와 속성이 좀 다르다. 개그는 맥락과 타이밍이 생명인데 아재 개그에는 맥락이 없고 타이밍이 느리다. 맥락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황하게 된다. 듣고 나서 잠시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그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온다. 이 아재 개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부장 개그다. 부장 개그는 아재 개그에 계급적 폭력성이 추가된 개그다. 맥락은 필요 없고 듣고 바로 웃어야 한다. 크게 웃어야 한다. 웃다가 눈물이라도 몇 방울 흘리면 유머감각이 풍부한 직원이 된다. 이제 부장님은 예능의 신, 개그의 신으로 등극하고 세상은 웃음이 가득한 평화로운 지상 낙원이 된다.

그런데 이 지상 낙원에는 없는 게 하나 있다. 부장님도 계시고 일용할 양식도 있고 웃음도 있는데 맥락이 없다. 텍스트(Text)는 있는데 콘-텍스트(Con - text)가 없다. 부장님이 말할 때마다 웃을 수는 없다. 가끔 진지한 말을 할 때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웃어서는 안 된다. 웃을 때와 진지한 때를 가려서 처신해야 된다. 이게 참 힘들다. 웃으라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새겨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장님의 발언이 개그인지 진지인지 아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처음부터 웃지 말고 일단 이야기를 다 들어 봐라. 다 듣고 나서 부장님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펴 봐야 한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 부장 개그가 틀림없다. 자신의 개그에 스스로 감동할 때 나타나는 표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웃어도 좋다. 부장님 만세 !!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적당히 웃어주고 월급 받으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충분히 참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맥락이 없는 개그에 자동 반응하다 보니 어느새 부장 개그를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모처럼 가열차게 개그를 준비해서 터뜨렸는데 웃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욕감과 절망감이 정수리 끝까지 차오른다. 웃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재미 좀 없더라도 웃어 줄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은 너무 인정머리가 없다. 이제 나도 이 사람들 발언에 반응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소통하려 하였는데 이 사람들이 날 무시했으니 내 책임은 더 이상 없다. 그냥 월급이나 받고 부장님에게만 충성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부장 개그가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맥락과 소통이 없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언사와 행동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장들은 자신의 발언이 우아한 유머의 결정체라고 강고하게 믿고 있지만 듣는 사람들에게는 분리수거도 안 되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문제는 발언의 내용이 아니라 그 소통방식에 있다. 본인에게는 재미있어 보여도 상대방에게는 이미 식상한 내용이거나 불쾌한 내용일 수 있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콘텐츠를 수정하면 근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린다. 웃음은 결코 폭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망가지면서 낮은 자세가 될 때 상대방의 마음이 열린다. 유머의 시작과 끝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전달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개그와 정보사회는 소통을 주요 기반으로 한다는 면에서 동일한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 다 자발적 참가자가 많아야 한다. 여러 사람이 참가하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결국 소통하면서 이해되고 해결된다. 부장과 사원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남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내재화시킨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도 부장 개그 시대에 살고 있다. 개그의 소재는 제한되어 있고 정보 네트워크는 늘 감시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계시는 부장님들께서는 계속 웃으라고 강요하고 계신다. 이 좋은 세상에 살면서 왜 웃지를 않으냐고 반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