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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사고, 개가 아니라 '전근대적 애견문화'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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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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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개를 대하는 인식은 전근대적이다. 개의 식용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개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 보면 한국 사회에 몰상식과 비과학적 태도가 난입한 '애견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애견협회와 애견연맹을 위시한 한국의 반려견 관련 단체들의 행태부터 문제다. 그들은 소위 '혈통주의'를 생산하고 사회에 그릇된 애견문화를 주입해온 장본인들이다. 국가-지역에서 인간의 문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발생한 일부 견종은 인류가 개와 자연스레 맺어온 관계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견종 표준'은 오직 인간의 관점에서 크기와 몸무게는 물론 털의 길이와 색깔까지 일정한 기준을 만들었다. 이런 기준을 개들에게 억지로 적용하는 것은 강제적 폭력이다. 천편일률적 모델을 개들에게 부여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개를 마치 도태시켜야 할 대상으로 치부케 만드는 그들의 존재 방식부터 우리 사회가 거부해야 한다.

또한, 개를 개답게 키워야 한다거나 개의 야생성을 길러야 한다는 전근대적 주장에 대해서도 반성을 촉구한다. 조선 시대 유교의 인간 중심주의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짐승=미물'이라는 믿음을 기준으로 국견이니 토종이니 하며 한 사람만 따르도록 만든 진돗개나 풍산개를 보자. 현대사회나 문화와 동떨어진 원시적 성격의 개로 만들어 놓고는 이제 와 맹견으로 분류해야 한다라는 식의 태도를 규탄한다.

한국 사회는 앞서 언급한 견종표준이니 하는 서구의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는 식의 한국적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혼재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이 개와 맺은 관계는 다른 사회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특히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고발하는 언론이라면, 관계 당국의 실무자라면, 정치인이라면, 관련 단체와 활동가라면 문제의 근간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

19세기의 사냥법을 고수하는 수렵꾼이 자신의 사냥개 네 마리를 공원에 풀었다가 행인을 무는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은 개의 문제가 아니라 사냥꾼-견주-인간이라는 개인의 인식 문제임과 동시에 그런 상황을 초래한 한국 사회의 제도와 문화의 책임이다. 결코, 개에게 이 문제의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개를 만든 것도 인간이고 개를 그렇게 훈련시킨 것도 인간이며 개를 그렇게 키우게끔 허락한 것 역시 인간이 만든 제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해당 사건과 관련해 여기저기서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그 뉴스들, 뉴스를 만드는 기자들, 보도국이나 데스크를 포함한 언론인들의 시각은 너무나도 단편적이다. 앞서 말한 진짜 문제인 인간-문화-제도의 문제를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YTN은 지난 9월 12일, 전문가 인터뷰로 해당 사건을 다루면서 '위험한 개'라는 표현을 일삼으며 향후 개의 거취 문제에 대해 "(통상적으로는) 사람을 물었기 때문에 안락사시키곤 합니다."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후 9월 13일, "우리 개는 착해요. 애견인들의 흔한 착각"이라는 인터뷰 형식의 보도를 통해서도 개를 관리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만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가 하면, 맹견의 위험성만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1차원적 해석은 YTN에서 그치지 않았다. KBS를 비롯해 MBN, 채널A 등도 '맹견'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하며 엄격한 처벌이나 제도 강화에 여론을 몰아넣고 있다. 그나마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한 것은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반복되는 맹견사고..관리기준 허술한가) 뿐이다. 그나마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선진국이 맹견을 어떻게 관리하고 법을 위반했을 경우 어떤 처벌을 가하는지에 대해서만 비교하는 데 그쳤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사회와 그들이 만든 제도를 비교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경우의 처벌'에 관한 그들의 제도가 얼마나 엄한지를 논하며 한국과 비교하려면, 반드시 그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이 개와 맺고 있는 관계를 비교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의 본질에 가장 깊게 접근해야 마땅한 국회의원들조차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9월 12일,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특정)견종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맹견으로 분류하지 않더라도 입마개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역시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이런 언론과 정치인의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도록 몇 가지 묻고 싶다. 2017년 9월, 그러니까 21세기가 된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아직도 "개를 왜 공원에 데리고 오느냐"는 이야기를 듣는 사회가 정상적 사회인가? 심지어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함께 호텔에 투숙하려는 이를 거절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냐는 말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한국 사회의 태도에 대한 문제점은 누락시킨 채로 선진국의 제도와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와 동물의 관계를 대하던 그 숱한 나태, 관계 기관의 그 숱한 직무유기, 그릇된 인식으로 개를 키우던 인간의 그 숱한 무책임,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의 그 숱한 무시, 이 모든 방관은 다 어디에다 두고 강력한 법을 만들어 입마개를 씌우고 개들을 안락사시켜 문제를 눈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면 된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회가 발전을 이야기하고 인격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반려견을 인간 사회와 함께 살 수 없는 성격으로 키운 모든 이들에게 법을 엄정하게 적용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한국 사회가 개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나아가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다시금 설정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를 촉구한다.


* 이 글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