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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입국을 막는 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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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대 초중반 분들은 유승준을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그는 2000년대로 따지면 김태희 남편, 2010년대로 따지면 방탄소년단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연예인이었어요. 그야말로 아이돌이었죠. 그의 이미지는 '성실한 교회 오빠' 정도였습니다. 언행이 바른 청년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습니다만, 아마 단순한 비디오-이미지는 아니었을 겁니다.


당시 여론은 유승준을 매국노급 인사로 매몰시킵니다.


그는 '꼭 군대에 가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그를 믿고 병무청이 군 입대를 앞둔 예비 장병의 미국 출국을 '예외적으로' 허가해 줬습니다. 그렇게 미국으로 갔던 유승준은 자신의 모든 발언을 덮고 미국 국적을 취득합니다. 그러니 군대에 가지 않게 됐죠. 이에 병무청이 입국 금지 행정명령을 시행합니다.

말도 못했죠. 당시 여론은 유승준을 매국노급 인사로 매몰시킵니다. 비난과 증오의 크기는 그가 쌓아온 이미지나 인기의 크기에 정비례했습니다. 온 언론이 나서서 '유승준'을 죽였으니까요. 감히 누가 '이거 너무하지 않나'라는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여론을 거스르진 않았습니다. 그저 우스운 사람 정도로 여겼거든요.


유승준이 뭘 잘못했습니까? 약속을 어긴 거요?


자, 이제 정리해 봅시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의 의미와 권리, 인권, 자유, 평등 등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죠.

유승준이 뭘 잘못했습니까? 약속을 어긴 거요? 발언을 철회하고 국적을 바꾼 것이 사회적 살인을 감행할 만한 일입니까?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날 '헬조선은 탈조선이 답'이라는 수사를 썼다면 다시금 유승준의 상황에 그 수사를 대입해 보세요.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방산비리나 군 내무 부조리에 의한 사건 사고 소식을 들으며 '군대는 안 가는 게 상책'이라는 수사를 썼다면 다시금 유승준에게 대입해 보시란 말입니다.

그리고 '형평성'을 운운하시는 분들이라면, 애초에 군 입대를 앞둔 징집 대상자에게 출국을 예외적으로 허가해준 병무청의 어긋난 형평성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겠죠. 당신들 모두 입영 앞두고 해외여행 못 갔잖아요. 형평성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선택권이 있는 개인이 아니라 공정을 기해야 마땅한 기관이란 말입니다.


그런 시스템은 저열한 겁니다.


유승준을 개인적으로 증오할 수 있습니다. 그건 개인의 기호-가치 판단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국가 시스템이 나서서 유승준이라는 인격의 혐오를 조장하는 일은 잘못된 겁니다. 그건 시민혁명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시스템은 저열한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특정국적자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시행하는 과정 중에 수많은 사람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과 유승준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병무청의 행정명령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사회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길 바란다면, "이건 아니다"라고 용기 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론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유승준이라는 인격-자연인을 시스템으로 거부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우리 사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20년대가 바짝 다가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저지른 시대적 착오-과오에 대해 책임지고 매듭짓고 넘어가야죠.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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