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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의 재현과 공공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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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싱 에이즈 쌀롱 _ STEP 7 느끼기' 후기

올 가을 타이베이 시립 현대미술관 (MOCA Taipei) 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주요 공립 미술관으로서는 최초로 대규모 퀴어 아트 전시인 '스펙트로신테시스 Spectrosynthesis--지금 아시아의 LGBTQ 이슈와 미술' 이 열렸다. 지난 5월 동성결혼을 불인정하는 현행 법 제도에 대한 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집중된 국내외적 관심을 10월 말 타이베이 프라이드까지 이어가면서 두 달 여간 진행된 전시를 통해 대만 작가들 뿐 아니라 홍콩, 중국, 싱가폴, 그리고 북미에서 활동하는 20여 작가들의 50여 점이 넘는 다양한 작업이 광범위한 국내외 대중들에게 소개됐다. 타이베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권위적인 예술기구로서 시립 현대미술관이 당대 아시아의 퀴어 미술 작업을 집대성해 드러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퀴어 관중들을 공적 공간으로 불러 모음으로써 퀴어 역사와 현실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촉발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퀴어 가시성이 공공화되는 과정에서 예술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 간 내가 머문 대만 곳곳에서 크고 작은 LGBTQ 관련 전시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만 혼인평등 운동을 주도해 온 혼인평권연합 (婚姻平權大平台) 에서는 올 여름 타이베이에 이어 남부 도시인 카오슝에서 혼인평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전시회를 열고 있고, 감염인 인권단체인 에이즈감염인권리촉진협회 (愛滋感染者權益促進會) 는 단체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전시회를 열며 HIV/AIDS 및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편견의 역사를 시각화하고 있다.

올해 3월 종로 3가의 한 게이바에서 데뷔한 키씽에이즈살롱은 시작부터 'HIV/AIDS 인권운동'의 익숙한 반경을 넘어 감염인 커뮤니티와 성소수자 대중을 향하는 공공성의 기획이었다. 우리는 지난 몇 개월간 키씽에이즈살롱에서 이야기 해 온 감염인 커뮤니티 안팎의 다양한 삶이 어떻게 당대의 문화와 예술을 통해 시각화되고 공론화되는지를 보다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7번째 키씽에이즈살롱 '느끼기'에서는 미술/디자인 연구자인 임근준 씨를 초대손님으로 모시고 HIV/AIDS 라는 렌즈를 통해 어떻게 현대 퀴어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보고 느낄 수 있을지 논의했다. 아래에서는 서구와 한국의 퀴어 현대미술의 역사적 전개에 관한 임근준 씨의 강연 내용을 참고로 HIV/AIDS 재현 양상과 작업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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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등장했을 때 HIV/AIDS 는 "동성애자들을 향한 자연의 형벌"로 알려졌고 질병은 면역력 결핍으로 변형된 얼굴을 통해 가시화됐다. 에이즈 발병 전후 신체의 변화는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언론매체를 통해 전시되며 질병에 오염과 죽음, 나아가 비인간의 이미지를 덧씌웠고, 1980년대 내내 이는 곧 당대 게이 남성의 삶의 종착지로 등치되곤 했다. 이런 지배적인 이미지를 극적으로 뒤집은 것은 1990년 LIFE 매거진에 소개된 데이비드 커비의 사진이었다. HIV/AIDS 활동가였던 데이비드 커비가 슬퍼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병동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사진은 마침내 에이즈 환자에게, 나아가 에이즈라는 질병에 인간의 얼굴을 부여했고, 질병을 둘러싼 개인의 서사가 논의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다만 이 "에이즈의 얼굴을 바꾼 한 장의 사진" 은 2년 후 패션 회사인 베네통의 광고 사진으로 컬러풀하게 재탄생하며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광고가 죽은 예수를 안은 마리아의 이미지를 부당하게 전유하고 있다고 분노했고, HIV/AIDS 활동가들은 거대 기업이 죽음의 이미지를 상업화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엘르나 보그, 마리 클레르 같은 패션 잡지들은 해당 광고를 보이콧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논쟁의 핵심은 HIV/AIDS 가 얼굴을 갖게 될 때, 그 얼굴은 누구에게 속하고 누구를 향해 말을 걸며 또 무엇을 하는지였다.

주류 언론의 착취적 재현에 맞서는 질병 당사자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1980년대 후반 시각문화에서 부상한 데에는 HIV/AIDS 의 '얼굴'을 되찾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촉구하고자 하는 투쟁의 맥락이 있었다. 1987년 뉴욕을 기반으로 결성되어 국제적 행동주의 그룹으로 성장한 액트 업 (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출신의 작가/활동가 11인으로 구성된 그랑 퓨리 (Gran Fury) 는 이른바 초기 에이즈 운동의 "프로파간다 부서" 로 불리며 초기 에이즈 위기의 긴급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며 공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정치인들을 압박했다. 이들의 대표적인 작업들, "침묵=죽음 (SILENCE=DEATH)," "키스는 죽음이 아니다 (Kissing Doesn't Kill)," "내 입술을 읽어라 (Read My Lips)" 등은 시내의 표지판, 전광판, 버스 광고판 등 다양한 공적 공간에 설치되고 또한 티셔츠나 엽서, 피켓 등으로 재생산됐다. HIV/AIDS 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공유하기보다 침묵했던 정부, 언론, 그리고 의료체계 지배적인 바로 그 공적 공간에 새겨짐으로써 액트 업과 그랑 퓨리의 메시지들은 그 자체로 강렬한 이미지가 되고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으며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상황주의 미술 전략과 포스트모던 전유, 그리고 퀴어 운동을 연계한 그랑 퓨리의 작업은 정치적인 예술 실천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후 에이즈 운동만이 아니라 당대 공공미술의 아이콘적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즉각적인 사회 변화를 요구한 액트 업과 그랑 퓨리가 생산해 낸 이미지들의 근저에 정부와 거대 제약회사의 소극적 대응 및 HIV/AIDS 를 둘러싼 대중의 공포와 혐오에 대한 조직화된 분노가 놓여 있었다면, 또 다른 HIV/AIDS 공공미술의 대표적인 사례인 에이즈 메모리얼 퀼트 (The AIDS Memorial Quilt) 는 분노 대신 상실과 슬픔, 그리고 애도를 대규모로 재현한다.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게이 활동가 클리브 존스가 1985년 하비 밀크의 죽음을 기리는 촛불 행진을 마무리하며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 건물에 에이즈로 죽어 간 이들의 이름을 새긴 플래카드를 내건 것을 계기로 1987년 설립된 네임 프로젝트 에이즈 메모리얼 퀼트 (Name Project AIDS Memorial Quilt) 는 사회적 낙인과 두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명명되거나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 이들의 소수자로서의 삶과 기억을 남겨진 연인, 가족, 친구들 나름의 방식으로 집합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망자의 삶의 개별성과 이를 기억하려는 방식에 따라 각각의 퀼트 패널은 천 뿐 아니라 레이스, 가죽, 플라스틱과 메탈, 의복이나 다른 추모의 소품들 (때로는 콘돔이나 언더웨어) 을 포함한다. 한 사람의 무덤 크기 퀼트에 남겨진 이름과 이미지, 소품들이 다른 수천 개의 퀼트와 함께 워싱턴 광장에 펼쳐질 때 이는 더이상 사회가 추모하기를 꺼려하는 죽음과 이로 인해 남겨진 이들의 상실과 슬픔을 달래기 위한 내밀한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4만9천 개의 퀼트 위에 새겨진 이름들과 이들의 개별적 이야기들이 함께 54톤의 무게로 130만 제곱피트의 공적 공간을 덮을 때--이 퀼트는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물질성은 하나의 스펙터클이 되어 에이즈 시대의 죽음을 기록하고 또 공공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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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에이즈로 인한 상실과 애도를 시각화한 또 다른 사례로 쿠바 출신 게이이자 감염인 작가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개인적 동기는 증여와 전염의 메타포를 통해 일정한 공적 파급력을 확보한다. 가령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탕 시리즈' 는 에이즈로 죽은 연인의 체중 만큼의 사탕더미를 미술관 한 켠에 쌓아두거나 펼쳐두고 관중들이 자유롭게 덜어갈 수 있도록 한다. 사탕이라는 물질적인 형태를 띤 사적 상실의 기억은 단지 공적 공간에 전시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관중들에게 증여된다. 한 공간에서 이름 모를 관객들이 함께 이 작은 사탕을 핥고 빨며 개인적 기억의 제의에 연루되고 또 전염된다. 공적 섹스와 HIV 의 은유로서 사탕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이 설치미술 작업의 필수적인 일부가 됨으로써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무수한 다른 이들을 기리는 집합적인 제의로 확장된다. 다른 한편 사탕이나 흑백 인쇄물, 전구와 같이 취약하지만 보충이 가능한 소재를 활용함으로써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은 그 자체로 취약하지만 관리되고 지속될 수 있는 HIV 감염인들의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섬세하고 애틋하게 추상화된 슬픔과 애도의 설치작업에서 감염과 질병의 구체성은 강렬한 메시지 대신 은유로 남는다. 1990년 미 연방에서 통과된 에이즈지원법 (The Ryan White Comprehensive AIDS Resources Emergency Act) 이 저소득/미보험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정부지원을 공식화하고 의료 및 사회복지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칵테일 요법이 대대적으로 선전되면서 HIV/AIDS 는 1990년대 이후 관리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으며, "전쟁"에 비유되곤 했던 에이즈 투쟁에서 대중적 선동 역할을 했던 시각예술은 이처럼 점차 정치구호가 아닌 미학의 문법을 취하게 된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이 1990년대 미국 주류 갤러리들을 거쳐 2012년 서울 삼성 플라토 갤러리에서 아시아 최초의 회고전을 통해 한국에 소개됐다는 점은 HIV/AIDS 를 둘러싼 공공미술의 전환의 방향을 선명하게 가리킨다. 이제 HIV/AIDS 에 관한 당대의 시각예술이 소개되고 소비되는 곳은 대중매체와 거리, 그리고 광장이 아니라 대형 미술관의 기획전시나 전향적인 아트 갤러리, 그리고 국제 아트 비엔날레들이다. 역시 2015년 삼성 플라토 갤러리에서 '천 개의 플라토 공항' 전시로 소개된 베를린 기반의 현대미술가 듀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작업들은 HIV/AIDS 가 칵테일 요법과 최근의 PrEP 을 통해 보다 관리가능하고 탐지불가능해진 시대에 HIV/AIDS 가 시각화되는 방식을 잘 예시한다. 예컨대 이들의 설치작업 "사이드 이펙트" 는 일견 범상해 보이는 유리화병들을 HIV 치료제인 트루바다의 염료로 채워 전시한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에 정갈히 전시된 유리화병들은 무수한 HIV 감염인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복용해야 하는 치료제의 규모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제목처럼 치료제가 가진 일정한 부작용을 이미지화한다. 그러나 이 작업이 암시하는 부작용은 단지 감염인의 질병관리와 신체에 발생하는 반응만이 아니라, HIV/AIDS를 다룬 미술작업에서조차 점차 사라져가는 바이러스와 신체 그 자체일지 모른다. 완벽히 살균처리된 듯한 거대기업 소유의 미술관에서 HIV/AIDS 를 다룬 작가들의 창의성과 전시기획자들의 급진성이 비평가들에 의해 찬양되고 나아가 고가에 거래되며 이 미술산업에 연루된 이들의 화폐가치를 높일 때, 우리는 다시 데이비드 커비의 사진이 촉발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HIV/AIDS 에 관한 재현은 누구에게 속하고 누구에게 말을 걸며 무엇을 하는가?

글 · 정민우(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