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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과 욕망 사이에서' 감염인 게이의 삶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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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싱 에이즈 쌀롱 _ STEP 2 만져보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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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나영정(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지난 3월에 열린 첫 번째 키싱 에이즈 살롱 STEP 1 찔러보기(http://www.huffingtonpost.kr/hivaids-activists-network-korea/story_b_15537342.html)를 성황리에 마치고, 준비팀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스텝을 밟아보기로 했다. STEP 2. 만져보기는 게이 커뮤니티와 HIV 감염인이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성적 낙인에 대한 것이자, 서로를 만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벽으로서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면 섹스에 대한 감정이 장벽이 된다. 그래서 이 자리를 통해서 성정체성과 HIV/AIDS 라는 질병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과 감정에 대해서, 혹은 그 반대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속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운영위원장 남웅이 사회를 맡았고, '불안하게 bareback을 지향하는' 상근, '섹스는 꾸준히 하지만 여전히 외로운' 소리, '예쁘면 다 되는' 아쿠아마린, '찜방을 좋아하는' 버섯이라고 소개한 네 명의 패널을 초대하였다.

1. 감정의 뿌리

섹스에 대해서 게이와 HIV 감염인이 느끼는 감정의 뿌리는 같을지도 모른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단속에 걸린 이들은 자신이 어떤 경로로 남성을 만났는지, 그 남성은 동성애자인지, 둘은 친구인지, 애인인지, 성관계를 했는지, 했다면 어떻게 했는지 심문당하고 있다. 남성간의 성관계가 잘못된 것이고, HIV/AIDS라는 질병을 불러온다고 이미 전제되기 때문에 집단생활, 특히나 국방의 의무라는 신성한 활동을 하는 공간에서 그러한 잘못된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정체성과 질병은 '박멸의 대상'으로 천명되었다. 이 수사는 군형법 92조6에 의거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으로 보는 관점도 있을 수 있으나 군대라는 특수상황이 동성애자 차별과 동성애 혐오를 용인해도 된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당연히 이러한 잘못된 전제들은 군대 내에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군대 내 위계로 발생하는 성폭력을 처벌하는 조항은 별도로 존재하고 있다. 이성간, 동성간에 벌어지는 군내 성폭력의 이슈가 조명되지 않고 근절을 위한 노력도 미미하며, 성폭력은 군내 동성애자의 존재와 동성간 성행위처럼 '박멸의 대상'으로 천명되지 않는다. 사실 성폭력과 전쟁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폭력적인 수단이 되어 왔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 키싱 에이즈 살롱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겹쳐져서 들렸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동성간 섹스에 대한 낙인과 에이즈에 대한 공포의 사회적인 구성은 80년대 이후 동시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게이로 살아왔던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이 낙인과 공포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기에, 동성간 섹스를 하는 동성애자가 가지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질 때, 그것이 외화되는 형식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2017년, 아직도 '동성애가 에이즈를 자연발생시킨다'는 미신을 믿는 게이가 있다(아쿠아마린, 소리). 한국사회는 82년 처음 에이즈가 발견되었을 때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사회집단이라는 존재형식이 부재했고, 남성과 섹스하는 '보갈(갈보를 뒤집은 말)'로 불릴 뿐이었다. 90년대 초반부터 세계화의 영향속에서 동성애자, LGBT라는 정체성의 형식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서동진(2005), '인권, 시민권 그리고 섹슈얼리티 -한국의 성적 소수자 운동과 정치학', <경제와 사회> 통권 67호 참조.) 이와 같은 역사는 한국의 동성애자가 사회적인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하는 것이 선행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서구의 경우 60~70년대 동성애자, 여성이 주도한 성혁명의 끝자락에 에이즈 위기를 맞이하면서 에이즈 위기로 인한 콘돔 사용에 대한 압박을 불평하며 70년대 성혁명을 그리워했던 게이들의 탄식이 일어났다(웅).(2014년 5월 한국에서 개봉한 <노말 하트>에는 이러한 과정을 겪는 게이 커뮤니티의 삶이 잘 그려진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미국으로부터 동성애와 에이즈 모두가 한 덩어리로 한국에 전달된 것으로 인식되면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이미 살아왔던 한국의 동성애자 스스로 존재의 양식을 가다듬으면서 에이즈 자체를 통합했던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 에이즈의 진원지로 파고다극장, 탑골공원 등이 지목되자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기쁜 마음에 점점 더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에이즈의 공포를 조장하는 기사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과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박차민정(2017), 'AIDS 패닉 혹은 괴담의 정치', <말과활> 통권 12호 참조.)

2. 수치심

본격적인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시작된 지 25년, 이제는 수치심 없이 섹스를 하게 되었을까? 동성애자의 어떤 기질은 타고날 수 있지만, 사회적인 존재 인식과 형식은 구성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인권규범이 확립되고, HIV/AIDS 또한 치료제가 발전하면서 질병의 의미가 변화했다. 동성애가 정체성으로 구성되는만큼 연인관계, 파트너쉽에 대한 경험과 열망 또한 역사성을 띄고, 성소수자로서 차별금지, 동성결혼이나 가족구성권보장과 같은 요구를 권리의 언어로 만들어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게이의 상이 형성되면,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모습을 바람직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고, 그 위계는 어떤 경험과 욕망을 드러내기 어렵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수의 익명의 상대와 콘돔없는(bareback) 섹스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욕망과 그것을 실천하는 존재는 드러내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하는 존재들도, "아 이 욕망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라는 확인을 통해서 안도감을 얻고,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나갈 동력이 된다(버섯). 그리고 "세이프 섹스와 콘돔없는 섹스를 동시에 욕망하고 실천하는 나의 삶은 인권활동가로서의 삶과 통합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상근). 이 욕망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비감염인인 것이 아니라 예비감염인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한다(버섯). 이제 HIV/AIDS는 공포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알아야 할 지식과 관계 맺어야 할 사람들이 되었다.

한편 게이 내부의 위계성은 외모 자체로부터 발생하기도 하고, 이는 만남의 방식이 변화하면서 점점 더 구조화되고 있다. 어플에 자신의 프로필을 등록했을 때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만한 '스펙'은 극소수이다.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찾아서 탐색하면서 원치 않는 속성이 발견될 때 그것을 지적하고, 대화를 중단하고, 상대를 차단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게이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많고 오히려 서로에게 모멸감을 주는 구조라고 느끼기도 한다(버섯). (http://www.huffingtonpost.kr/2017/03/17/story_n_15416596.html?utm_hp_ref=kr-gay-voice)게이 커뮤니티는 어떤 유대와 신뢰가 가능한가? 혹은 데이트 시장 그 자체인가? 감염인 게이도 어플을 통해서 너무나 쉽게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지만, 질병이 관계의 장벽이 될 때 어플은 속수무책이고, 더욱더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또한 이 외로움은 죄인이라는 감정을 심어주는 국가의 영향도 크다(소리). 이 감정은 연애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동거하는 과정에서도 일상생활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결국 내가 어떻게 나의 질병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가가 관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아쿠아마린). 그런 점에서 이 감정은 섹스를 할 때, 혹은 그 전후에 잠깐 동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계 전반, 나의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3. 원망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PL(People Living with HIV/AIDS 의 약자로 감염인을 지칭한다)은 모두 무언가를 원망해 보았을 것이고, 자신 또한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원망의 대상 또한 상대, 나 자신, 그리고 사회 모두가 될 수 있다. 나에게 본인의 질병을 숨긴 상대, 이 질병에 대해서 몰랐고 조심하지 않은 나, 그리고 이러한 준비에 아무것도 돕지 않은 사회에 대한 것이다(소리). HIV/AIDS는 서로가 원해서, 서로의 몸에 침투하여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품고 표출했던 상대에게 책임을 묻는 유례없는 질병이다. 이러한 질병의 영향이 특히나 게이 커뮤니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질문하고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도, 감염경로와 치료방법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공포를 가지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까다로운 문제는 노콘에 대한 욕망과 실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4. 욕망

노콘에 대한 욕망은 무엇일까? 이것은 콘돔이 주는 이물감을 넘어 타인의 신체의 일부가 나의 신체안에 들어오는 것, 그리고 그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한 충만함, 신뢰감이라는 판타지가 작동한다(상근). 또한 콘돔이 건강함의 상징이 될 때, 노콘을 지향하는 나와 콘돔을 수호하는 상대 사이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른 감각과 인식이 작동한다(버섯). 콘돔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무겁고 다양한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에 PL의 삶을 지지하기 위해서 모임 운영자로서 회원들에게 "괜찮아, 감염인은 비감염인과 할 때 콘돔을 껴야 하는 것 말고는 달라질 것이 없어"라고 말하지만(소리)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HIV 감염인에게 콘돔은 후회이자 의무, 그리고 내가 섹스하는 상대, 연애하는 상대, 사랑하는 상대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PL끼리 콘돔 없이, 아무런 걱정도 없이 행복하게 섹스(아쿠아마린) 하는 이유는 이런 압박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감염인끼리의 섹스에서 콘돔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콘돔은 또다른 성병의 예방이나 2차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욕망은 위험에 대한 감수와 도전을 통한 것뿐만 아니라 신뢰에 기반한 안정감에서 오기도 한다. 이번 살롱을 통해서 위험한 욕망에 대해서는 비감염인이, 신뢰에 기반한 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감염인이 이야기를 하였다. 이 구도가 어떤 구도로 보이는가? 한 사람 안에서도 현재 삶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에 따라, 혹은 HIV 감염에 따라 욕망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고, 나의 삶의 지향에 따라 욕망이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은 무엇을 지향하며 어떻게 그것을 실현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내가 원하는 건강한 삶은 무엇인가? 내가 느끼는 행복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것을 위해서 내가 타인과 관계맺는 방식은 어떠한가? 내가 느끼는 장벽을 부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삶에서 어떤 위험들을 감수하고 어떤 것들은 적극적으로 회피하는가? 건강한 삶과 행복한 삶은 언제나 일치하는가? 나 자신은 타인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서 볼모로 잡힐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까다롭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질문이다.

5. 나가며

내가 섹스하는 상대가 HIV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안도감까지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믿는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여전히 불확실함과 거짓말에 대한 의심이 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안도감을 주는 것은 내가 혹은 상대방이 HIV 감염인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그때부터 가장 강력한 안도감에 기반한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실행할 수 있다. 그때의 콘돔은 자책과 수치심을 더 이상 상징하지 않을 수 있다. 서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게이커뮤니티가 HIV/AIDS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는 것은 동성간 섹스 자체에 대한 수치심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많다. 더 이상 그 수치심을 HIV/AIDS에, PL에게 덮어씌우고 언젠가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서 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게이로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는 요소에 대해서 직면하지 않으면서, 좀 더 취약한 이들에게 그것을 넘겨버리는 것이야 말고 수치심을 유지하는 강력한 동력일 뿐이다. 아픈 것, 약해지는 것,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게이가 가지는 공포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사실 게이 커뮤니티의 삶과 죽음에 문제에 있어서 더욱 직접적인 것은 질병이 아니라 자살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PL의 삶에 대해서 깊이 이해함으로써 공포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영감과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PL 커뮤니티에서도 이 자리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오히려 게이 PL에 대한 낙인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지만(소리) PL 스스로도 내적 혐오와 낙인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아쿠아마린). PL의 삶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큰 부분은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들이다. 우리가 커밍아웃을 할 때 스스로 인정하는 것, 수치심에서 벗어나 나의 정체성에 통합하는 것, 타인에게 알림으로써 관계를 다시 조정하고 인정받는 것, 사회를 향해 차별과 폭력을 해결하도록 나서는 것 등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PL로서의 커밍아웃 또한 이러한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섹스와 감정의 문제는 그 커밍아웃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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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싱 에이즈 쌀롱'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기획하는 월례 행사로서, 인권재단 사람 정기공모사업 '인권프로젝트-온' 에 선정되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키싱 에이즈 쌀롱'은 에이즈에 대해 더 친숙하게 말하기, 더 많이 알기, 감염인과 함께 살기. 적극적으로 알리기라는 4가지 목표를 이루기 기획된 오픈 토크 자리입니다. 말하고 싶은 걸 터놓고 이야기하고, 다양한 의견이 있음을 확인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에이즈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월 서울 종로3가 게이바 VIVA에서 진행하는 키싱 에이즈 쌀롱은 HIV 감염과 무관하게 관심이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감염인을 혐오하는 이는 출입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