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황현산 Headshot

소녀상과 만국의 소녀들

게시됨: 업데이트됨:
JAPANESE EMBASSY GIRL STATUE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인쇄

〈일본인과 한국인〉은 인류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닌 수학자 김용운 교수가 쓴 책이다. 이 책은 1960년대에 뿌리깊은나무에서 단권으로 나왔지만 그 후 1990년에 한길사에서 다섯 권의 대작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고대의 한국과 일본의 지배계급은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민족이며, 일본어 '사무라이'는 한국의 옛말 '싸울아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책이며, 한국과 일본은 뿌리가 같기에 서로 적대하면서도 서로 닮는다고 말한 것도 이 책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일본인의 명백한 차이에서 은밀한 차이까지 그 다름에 대해서도 이 책보다 더 잘 지적한 책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테면 일본인과 한국인의 자연관의 차이를 말할 때는 몇 개의 개념어로 두 나라의 문화 전체가 관통되기도 한다. 일본인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극단의 세부까지 손질한 자연이어서 자연보다 더 자연이지만, 한국의 자연은 내버려둔 자연이기에 더도 덜도 말고 자연 바로 그것이다. 그게 삶의 태도를 규정한다. 일본인은 하루에 두 번 네 번 목욕을 하지만 한국인이 보기에는 우스운 작태일 뿐이다. 한국인은 뚫어진 창호지를 겨울 찬바람이 불어도 그대로 두고 산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버선을 벗어 창호지 구멍을 막았다가 아침에는 버선을 빼내어 다시 신고 나간다는 이야기 앞에서는, 젊은 세대야 그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내 세대 사람들이라면, 어떤 철학적 감흥까지 느끼게 된다.

최근 두 나라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 때문에 나는 두 차례나 이 책의 이런저런 페이지들을 불행한 방식으로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가깝게는 광화문 촛불과 관련해서다. 주말마다 수십만 촛불을 든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이고 있을 때 일본에 전해진 그 뉴스에 일본 젊은이들이 달았다는 댓글이 내게까지 알려졌다. 그쪽 젊은이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는 것이다. '앗싸리'한 일본인들, 벚꽃처럼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는 일본인들은 왕이 항복을 선언하여 제2차 대전을 끝냈을 때 자신들의 패전을 철저히 인식하고 "돼지우리에서 여자의 머리 모양까지 민주주의식으로 몸바꿈을 했다." 그들은 정부의 정책과 지휘에 따라 모두 민주주의자가 되었다. 거기에는 촛불이 필요 없다. 우리가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민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이승만의 독재와 싸우고, 박정희의 유신과 육박전을 하며 몸을 으깨고, 신군부의 압제에 대항해 피를 흘렸다. 그러고는 이제 다시 정신 나간 정권과 피할 수 없는 싸움에 들어섰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이렇게 일구었고, 민주주의가 또 그렇게 이루어졌다. 필요하다면 촛불보다 더한 무엇이라도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이고 긍지이다.

그 책을 상기하게 된 또 한 번의 기회는 태평양 전쟁 시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과, 정확하게는 할머니들을 위한 소녀상 건립과 관련된다. 두 해 전에 한국과 일본은 갑작스럽고도 기이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일본이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을 위해 100억원 상당의 돈을 출연하여 할머니들의 생활을 돕는 재단을 꾸리도록 돕고, 이후 한국은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요구도 항의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기로 '최종적 불가역적' 협약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합의에 따라 한국이 맨 먼저 져야 할 의무는 소녀상을 철거하는 일이다.

일본의 위정자들이 이런 협약을 한 것은 한국과 한국인을 잘 몰라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 관해서라면 당사자들을 바보들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거의 할 말이 없다. 이런 일에서 한국인은 일본인과 같지 않다. 양력과세를 하라고 왕이 명령하면 온 나라가 일시에 설을 바꾸고 왕이 항복을 하면 전 국민이 하나같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일본이지만, 한국은 일본 같은 세로사회가 아니어서 윗사람의 방침과 명령이 아랫사람의 머릿속에까지 곧바로 흘러들어오지는 않는다. 을사늑약 뒤에도 당황했던 것은 일본인들이었다는 말이 있다. 왕이 국권을 넘겨주겠다고 도장을 찍었는데 왜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말인가. 〈일본인과 한국인〉에 따르면, 일본과 관련하여 임진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의병에 대해 일본의 역사학자 도쿠토미는 이런 말을 했다고도 한다. "한국의 의병이란 파리 떼와 같다. 파리 때문에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아무리 잡아도 계속해서 붙는 파리 떼가 있는 곳에서 살 수는 없다." 악의를 눌러 담아 쓴 파리 떼라는 말이 귀에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나 성현 소크라테스도 상대를 설복할 때까지 잘못된 논리에 끝까지 따라붙는 자신을 파리나 다름없는 등에라 불렀고, 천재 시인 랭보도 '파리 떼 웅웅거리는 곳에 진정한 성장이 있다'는 뜻으로 말하곤 했으니 크게 기분 나쁘게 여길 일은 아니다. 아무튼 철부지 정부가 일본과 무슨 협약을 했건 그건 정부의 일일 뿐이니 한국인들이 자기들 손으로 세운 소녀상을 철거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돈부터 건넨 일본 정부는 한국에 사기를 당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사기는 무슨 사기, 우리가 보기에 일본이 서둘러 꾸려낸 협약은 조카가 가진 땅을 헐값에 사보겠다고 엉뚱하게 팔푼이 삼촌을 꾀어 계약서를 쓴 꼴과 진배없다.

사실 전쟁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를 끌어안고 있다. 전쟁 위안부의 징집과 위안소의 운영은 넓게 보아 인류에 대한 범죄였고 좁고 구체적인 관점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 죄악이었다. 소녀상에서 한국 소녀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는 같은 시기에 같은 처지에 있었던 중국 소녀의 자리이기도 하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안소에는 일본 소녀들도 있었다. 그들이 군국의 손아귀에 끌려갔건 제 발로 걸어갔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들이 남자 노릇 한답시고 일으킨 전쟁의 처참한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한국 소녀와 일본 소녀의 차이가 없다. 소녀상의 한국 소녀는 한국 소녀이면서 동시에 중국 소녀이고 일본 소녀여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그리고 또 다른 소녀들이 있다. 한국의 남자들도 이 죄악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는 동안 저질렀던 이런저런 만행들을 우리는 이미 모르지 않는다. 어느 글에서도 썼던 이야기지만 한국의 문인들이 월남전 참전을 사과하기 위해 베트남 문인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이긴 전쟁에 사과는 무슨 사과냐는 태도였지만, 그들만 해도 권력자들이다. 당시 처절하게 파괴되었던 마을 민간인들의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 마음이 그들의 마음과 같을 수는 없다. 한국의 소녀상이 중국 소녀상, 일본 소녀상, 베트남 소녀상이기도 할 때, 그 소녀상은 아베 같은 인간들이 돈다발 따위를 들고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떤 높이와 넓이를 얻을 것이다. 한국 소녀에게 참으로 절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만국의 소녀들에게도 절실하고 엄숙한 문제다.

경남 진주의 활동가들이 진주 교육지원청 뜰에 세운 진주평화기림상을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그 소녀상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소녀상보다도 아름답다. 한 시대의 불행을 딛고 우뚝 서 있는 소녀는 벌써 희생자 이상의 어떤 존재다. 인류의 죄악을 알고 있고 자신의 불행과 함께 모든 여성의 불행을 알고 있기에 그의 표정은 단단하다. 그는 한국 소녀이면서 벌써 한국 소녀가 아니다. 그는 어두운 광장을 온기 약한 촛불로 밝혔던 역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자신감으로 중국 소녀가 되고 일본 소녀가 되고 베트남 소녀가 된다. 지극히 가녀린 촛불로 바닥을 단단하게 다진 민주주의만이 만국의 민주주의가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