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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하고 가볍지 않은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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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대개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나쁜 놈이어서 그랬다는 거다. 물론 세상엔 정당방위나 저항 폭력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신이 쉬이 폭력을 휘두르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십중팔구 상대가 자기보다 약해 보이기 때문이거나 여러 맥락상 저항을 못할 것 같아 보여서다. 상대가 잘못을 했니 마니는 그냥 핑계나 계기 정도에 불과하다. 대개의 사람은 상대에게 폭력을 동반한 분노를 표출할 때 가려 가며 한다. 본능적으로.

여럿한테 덤비는 사람, 자기보다 세 보이는 사람, 자기보다 한참 윗사람한테 쉬이 들이받는 경우를 거의 본 일이 없다. 그럴 땐 상대가 아무리 저열해도, 아무리 자기를 화나게 해도 분노조절이 잘 된다. 걸핏하면 상대를 위협하는 사람들은 다혈질 같은 게 아니라 자기 안의 비열함을 경계하지 않는 사람일 경우가 높다.

한 여성 게임 유튜버가 살해위협을 당했다 한다. 그냥 살해위협이 아니라 남성들이 '그 여성의 신상을 털고, 주소지를 직접 찾아다니는 것을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를 하면서 그랬단다. 6,000명이 그걸 시청했고, 그중 상당수는 일종의 오락으로 즐겼다.

대체 계기가 뭐였을까 싶어 살펴보니, 해당 여성 게임 유튜버는 평소에 남성들에게 막말을 좀 했다고 한다. 근데 그래서 뭐. 사실 아프리카TV 등에서 가장 인기 있던 스트리머들이 막말을 일삼아 온 그 바닥 역사를 생각해보면, 대체 막말하는 스트리머가 어디 한 두 명도 아닌데 그게 뭐 대수라고 저 호들갑들인가 싶었다. 그 막말들이 옳다거나 별게 아니라는 게 아니라 그간 거기서 각종 혐오발언을 포함한 막말들을 무감하게 생산하고 소비해왔잖나.

아니나 다를까, 범행을 저지른 남성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갓XX(해당 여성 게임 유튜버의 닉네임)가 아니더라도 (찾아간 주소에서 나오는 사람이) 여자면 죽이겠다."

그러시겠지. 어느새 방점이 '막말'이 아닌 '여성'에 찍힌다. 그런 성질의 위협이 그렇게 쉽게 가능한 본질적인 이유는 대상이 단지 막말을 하여 널 기분 나쁘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너보다 물리적으로 약자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어차피 잃을 거 없으니 널 죽이겠다."

아니, 잃을 게 없어도 절대 자기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그런 짓을 그렇게 쉽게 하지 못한다. 잃을 게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비열해서 그런 것이다.

남성은 체포되어 경범죄로 5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한다.
5만 원의 경범죄라.

혼자 일하는 여성 왁싱 시술사가 살해당한 게 불과 한 달 전쯤인 걸로 기억한다. 범인은 정확하게 그 여성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해했다. 그렇다고 면식범도 아니었다. 그 범인 역시 유튜브를 통해 해당 왁싱 시술사의 정보를 취득한 것이었고, 살해 전에는 강간까지 시도했다.

그런 사건은 그냥 강력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을 접한 혼자 일하는 여성, 혼자 사는 여성에게 끝 간 데 없는 불안감을 안기기에 충분한 사건이며, '여성 혐오'의 사회적 맥락을 갖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5만 원 과태료의 경범죄에 그친 그 행위는 물론 살인과는 죄질이 다르다. 당연히 잘못의 무게를 달리 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여성들에게 가해질 불안의 크기도 다를까? 5만 원의 과태료가 합당한 무게의 징벌일까?

형행 법률이야 이것을 '불안감 조성 행위의 경범죄' 정도로 여길 테지만, 나는 이 건이야 말로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며, 또한 이게 결코 가벼운 범죄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