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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가드'와 안철수의 '조각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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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지지율은 민주당 내부에 고여있는 지지율이 모여있는 것이다. 안희정의 지지율은 아니다. 그는 민주당의 코어 지지층을 끌어당기기 보다는 바깥으로 외연을 확장해왔다. 때문에 문재인이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다면 문재인의 지지율은 다른 민주당 후보에게 간다. 그러나 안희정이 패배했을 경우에는 그가 확보한 지지율이 민주당 바깥으로도 뛰쳐나간다. 안철수는 그렇게 뛰쳐나온 안희정의 지지율이 자기에게 옮겨올 거라고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일리 있는 계산이다. 민주당 경선이 진행될수록 문재인의 지지율은 그대로인데 안희정의 지지율은 조금씩, 그러나 착실하게 떨어지고 있다. 스윙보터들이 보기에 안희정이 안될 것 같으니까 빠지는 거다. 그렇게 빠진 지지율은 문재인이나 이재명에게 흡수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그들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다. 반면 안철수는 민주당 경선이 진행된 일주일 만에 지지율이 9%p나 상승했다. 이게 우연일까?


안철수는 '변하고 있다' 혹은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문재인과 민주당에는 더 이상 기대해볼 만한 이벤트가 남아 있지 않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인데 무슨 이벤트가 더 남았겠는가. 호남과 충청 경선에서 이미 게임이 끝났다. 그렇다면 그 게임이 과연 민주당 전체의 고양을 이끌어내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는가? 경선 레이스가 들어가고나서 발생한 이벤트들이라는 게 기껏해야 상호 간에 흠집을 내고, 물어뜯고, 누구 말마따나 '정 떨어지고 질리게' 만드는 것들 일색이었다. 주목도가 높은데 반해 보고 있으면 흥미진진하고 고양되는 경기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피로도가 누적되는 경기였다. 상대의 포인트를 빼앗아 섭취할 수 있는 그런 형태의 경기가 아니라, 서로 상대가 갖고 있는 자산을 찢어 너절하게 만드는 형태랄까? 거칠게 몸싸움을 하더라도 경기 내용이 좋으면 괜찮은데, 뭔가 태클만 난무했던 거다. 그럼 보는 사람은 피곤하다.

반면 민주당의 경선에 비해 주목도는 낮았으나 안철수는 '변하고 있다' 혹은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기동을 했다. 예의 그 안철수의 루이 암스트롱 발성은 사실 연설 효과를 높이는 기능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설의 내용이 기억이나 나는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건 오로지 '안철수가 변했다.' 혹은 '안철수가 변하려고 노력을 꽤 하고 있는 모양이다'라는 인상 정도밖에 없다.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것이다.


문재인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수성전을 펼칠 것이다.


문재인은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수성전을 펼칠 것이다. 방어전에서 본능적으로 취하는 작전은 손실최소화다. 가드를 굳히고, 갖고 있는 포인트를 빼앗길 만한 사고를 치지 않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이미 갖고 있는 포인트로도 잘 버티면 판정승인데, 괜한 위험부담 감수하며 자세 고칠 필요 없는 것이다. 즉, 떠올릴 수 있는 남은 이벤트도 없는데, 선수가 포인트를 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럼 변화는 없다. 대중들은 '어차피 이번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계산값에 이성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역시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가 앞으로 뭔가 더 보여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냥 저렇게 가겠거니 한다.

한편, 안철수에게는 아직 발생할 수 있는 이벤트가 남아 있다. 조각모음이란 이벤트다. 안철수는 적폐세력과의 연대는 없다고 일찌감치 못박았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와든 연대 자체가 없다고 못 박았다. 기존 정치 문법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아집인데 좋게 해석해주면, 정치공학 기술이 아니라 자기 콘텐츠로 붙어보겠다는 것이다. 뭐, 그런 문법으로 실제로 성공하면 그가 줄창 말했던 새정치라고 평가받을 거고, 실패하면 여전히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거다. 그래서 안철수가 정치공학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냐면, 그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연대가 없다고 하면서도 계속 본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강구도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연대를 안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선거공학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그런 메시지를 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어쨌든, 안철수는 자유당은 버리고 간다는 거다. 버리고 가는 게 맞고, 매우 적절한 판단이다. 양자구도 만들겠답시고 자유당과 뭘 하면 문재인은 가드 풀고 마음 편하게 공격 모드로 전환하면 된다. 그러면 안철수는 안희정이 얻어맞은 것보다 갑절은 더 얻어맞는다. 시대적 명분도 문재인이 독점한다. 문재인은 '촛불의 열망을 받아 형성된 후보'라는 수사를 독점하게 되는 거고, 안철수에게는 '정권 잡으려고 정치공학 기술로 적폐세력과도 이합집산하여 만들어진 후보'라는 프레임을 씌워 난타 치면 된다. 매우 먹힐 것이고 클린히트가 팍팍 꽂힐 거다. 안철수는 손도 못 쓰고 넉다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는 것은 문재인의 이벤트가 아니라 안철수의 이벤트다.


안철수에게는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홍준표, 심상정의 5자 구도에서 안희정의 표를 흡수하고 유승민의 표까지 빨아당길 수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 조각모음 이벤트가 적어도 두 번 발생해야 한다. 첫 번째는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는 이벤트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는 것은 문재인의 이벤트가 아니라 안철수의 이벤트다. 사람들이 민주당 경선 결과에서 기대하는 건 이미 결정되다시피한 민주당 후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그래서 퇴장하는 이재명의 표와 안희정의 표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벤트는 그래서 안철수가 '정의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열망까지도 받아 안으면서, 거기에 길 잃은 보수파를 갖다 붙이고, 그 효과로 중도층까지 당겨올 만한 조각모음 이벤트를 어떻게 수행해낼지에 대한 것이다. 요약하면 문재인은 가드 잘 올리고 실수만 하지 말자 모드, 안철수는 나가서 포인트를 따오자 모드가 되는데, 후자가 훨씬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정서적으로 이입하기 좋다. 관심도가 옮겨갈 여지가 있는 거다.

현재 보수진영의 과제는 이번 대선에서 포인트를 따내는 게 아니다. 범보수의 다음 헤게모니를 그래서 누가 쥐느냐가 과제일 것이다. 지는 건 확정인데, 잘 져야 한다. 그래야 차근차근 회복할 수 있으니까. 회복 후의 범보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장기적인 복안을 염두에 둔다면 당장은 도저히 홍준표와 김진태, 친박이 잔뜩 묻어있는 것들과 붙어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바른정당의 유승민이 수습도 안 된 자유당과 단일화하면 정작 선거에서 이기지도 못하면서 앞으로의 명분까지 잃는 선택이다. 따라서 보수 진영 후보들은 양측이 찢겨 있는 상태로 대선에 등장한다. 그리되면 '갈 길 없는 보수 지지층'이란 옵션은 본선 내내 유효해진다. 근데 그들이 갈 곳 없다고 문재인한테 갈까?

누구를 지지하느냐보다 문재인 저지를 더 중요하게 여길 그들은 유승민이든 홍준표든 어차피 안 될 거라면 그냥 안철수를 밀 거다. 유승민이 차후 행보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훼손하지 않는 최적의 형태로 안철수 쪽을 밀어줘버리면 더 편해지는 거고. 이 조각모음이 수행되면 '정권 잡기 위해 적폐세력과도 이합집산'하지 않았으면서도 실질적으로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 된다. 만약 여기다가 적폐세력과 규합 운운하는 프레임 씌우면 국론분열에 편가르기라고 역풍 맞을 테니 그럴 리도 없다.

물론 이렇게 되어도 이재명의 표를 상당부분 흡수할 문재인이 더 유리하다. 심상정? 심상정은 이재명의 표를 일부 빨아들인 상태로 완주한다. 과거의 선거와 구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간당 간당한 상황이면 모를까 민주당으로든 국민의당으로든 정권교체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심상정이 대체 왜 단일화를 하는가. 범보수의 과제도 이야기했으니 말 나온 김에 이번 선거에서 진보진영의 과제도 살짝 언급해볼까? 정의당은 이 기회에 진보정당이 야권 단일화를 위한 정당, 민주당의 부속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씻어내고, 진보진영 외연 확장 및 안착에 들어가는 게 과제다. 문이든 안이든 심이랑 단일화하려면 지금까지의 논법으론 택도 없고 정말 극진히 모셔야 할 게다.

여튼 구도가 이런 식이 되면 보수층과 반문 입장에서는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집을 떠올릴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꽤나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안 되는 상황'과 '불리한 상황'은 다르다. 후자는 바람 한번 불면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거가 그런 거다.


본선에서는 서로가 갖고있는 가치가 겹친다. 둘 다 정권교체 할 수 있고, 둘 다 적폐세력과 손 안 잡는다.


이번 대선의 최대 키워드는 경제나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의 구현'이다. 민주주의를 주창하던 안희정이 자빠지는 걸 보라. 사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는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가 좀 이질적인 게 맞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권자들은 일단 싹 쓸어버리란 거다. 이미 민주주의로 박근혜를 끌어내려버린 유권자로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보다 정의에 대한 갈증이 더 크다. 민주주의를 더 고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니까 개혁과제에 동의한다면 자유당과도 연정이 된다느니 일단 상대의 선의를 받아들인다느니 하는 '민주주의적인 이야기'를 해도 유권자들은 그게 '정의로운 생각'이 아니라고 느끼니 김빠지기 시작하는 거다.

즉, '사회가 변해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는 열망이 가득한 선거다. 그 열망을 지금은 문재인이 받아 안고 있다. 그런데 안철수는 자격이 없을까? 그렇지가 않다. 지지율이 낮을 뿐, 따지고 보면 안철수 역시 명백한 반적폐 세력이다. 문재인이 갖고 있는 자격을 안철수도 갖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본선에서는 서로가 갖고있는 가치가 겹친다. 둘 다 정권교체 할 수 있고, 둘 다 적폐세력과 손 안 잡는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적폐청산에 대한 당장 급한 갈증은 조금씩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극우 정당이 붕괴하다시피 했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과 국정원 등이 계산을 다 끝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용이 구속되고, 박근혜가 구속되고, 정권이 바뀔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꽤 신중하게 기동했을 텐데, 검찰이 저토록 시원시원하다. 왜? 검찰이 하루 아침에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기관으로 개혁되었나? 지난해 수사를 미적대던 그 검찰이 박근혜를 구속시킨 그 검찰이다. 누가 됐든 정권이 바뀐다는 계산이 명확하기 때문에 저럴 수 있는 건데, 그런 검찰의 판단 때문에 큼직한 청산작업은 이미 시작되어 버린 거다. 굳이 누가 정권을 잡기도 전에. 적폐 세력이 정치적으로 파산하다시피했고, 정부의 범죄자들이 이미 구속 수순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당장 급한 갈증이 해소가 되고 있고, 나머지도 누가 잡든 하긴 하겠구나 싶어지면, 이제 칼을 야권끼리 겨누며 정권 누가 잡느냐의 영역으로 드잡이를 하게 된다.


이제 변별력을 위해 누가 집권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보다 구체적인 통치비전을 기준으로 들고 오게 될 것이다.


'변화'의 열망은 여전할 것이니, 그래서 이제 변별력을 위해 누가 집권하면 어떻게 변하는지, 보다 구체적인 통치비전을 기준으로 들고 오게 될 것이다. 이 때, 줄곧 가드를 굳히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현상을 유지하려는 인상을 주는 후보와 선거 내내 진화하며 포인트를 따는 역동적인 후보. 누구를 괄목상대하게 되겠으며, 누구한테 이입이 되겠고, 누구한테 기대가 옮겨 가겠는가. 후보 본인이 변하고 있는 인상을 주지 않는데, 그 후보를 보고 사회가 변할 거라는 정서적 기대가 어찌 계속 유지되고 고양될 수 있는가. 처음에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각도가 벌어진 채로 시간이 지나면 그 폭이 점점 커진다.

당장의 지지율에 갇힐 게 아니고 정서가 일렁이고 있다는 것을 예민하게 감지해야 하는 것이다. 일렁이는 정서는 점점 요동친다. 요동칠 정도의 시간은 남았는데, 한 번 요동쳐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을 재수습할 시간은 남지 않았다. 내가 뭘 잘 알아서 이런 소리들을 하는 게 아니고 보아하니 사람들은 슬슬 이걸 눈치 채고 있는데, 민주당 내에서 승리를 이어가고 있는 문재인 지지자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 하는 말이다.

안철수의 승부처는 아직 기대 이벤트가 남은 본선이겠지만, 이렇다 할 기대 이벤트가 없는 문재인의 승부처는 사실상 지금이다. 문재인 후보는 슬슬 가드 굳히기가 아니라 승부 굳히기에 들어가야 한다. '집권하여 적폐를 쓸어버린다'는 구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적폐가 쌓이지 않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 즉,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쪽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아, 안철수는 노력하는데 문재인은 노력을 안 한단 식으로 말한 것 같아 덧붙이자면, 문재인도 노력하고 있는 것 안다. 안보관을 공격받으니 특히 그 부분을 잠식시키기 위해 노력 한다거나, 폐쇄적이고 확장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자 매머드급 단위를 구성하여 여러 사람을 영입하는 노력을 한다거나. 그거 분명 변화에 대한 노력이 맞다. 다만 '스타일'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바로 눈에 띄고 정서에 막바로 영향을 주는 스타일 변화. 이를테면, 안보관에 문제 없다는 걸 보이기 위한 노력으로 5년 전에 들고 나왔던 특전사를 다시 꺼내면 변한 게 없다고 느낀다. 아무리 매머드 급 인사를 구성하는 노력을 해도 당내 경쟁자의 자산 조차 흡수하겠노라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면 확장성이 없다는 인상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다.

본인이 어째서 '더 준비된' 후보인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말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