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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정면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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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ING
yar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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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싱을 배울 무렵 처음 링에 올라갔을 때, 어디 챔피언 출신이라던 관장에게 제일 먼저 들은 말은 '고개를 들어'였다. '이렇게 쳐라, 저렇게 피해라'가 아니라 우선 정면을, 상대를 똑바로 보라는 말이었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왜 듣게 되냐면, 역시 당연하게도, 초심자는 앞에서 주먹이 날아들거나 혹은 날아들 것 같으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곤 하기 때문이다. (얻어 맞는 게) 겁이 나니까 웅크리게 되고 상대를 보지 않으니 유의미한 다음 액션을 취할 수도 없다. 그저 뒷걸음질 치다가 코너에 몰려서는 고개를 숙이고 잔뜩 웅크린 채 얻어맞기만 하다가 공이 울린다. 물론 고개를 숙인채로도, 일단은 링 안에 있으니까, 나름 반격이랍시고 아무렇게나 팔을 휘둘러보기도(그건 펀치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클린히트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시합을 하려면 순서가 있다. 우선은 정면을, 상대를 똑바로 봐야 한다. 모든 건 그 다음이다.

방어는 상대를 제 시야에서 밀어내는 타조 흉내가 아니라 상대를 정면으로 보면서 자기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한다. 가드를 굳히고, 상체를 흔들고, 스탭을 밟고, 가능한 뒷걸음질 치지 않으면서. 그런 와중에 잽을 던진다. 앞손, 그러니까 레프트를 던지는 건 상대에게 유효 데미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리를 재기 위해서다. 나의 유효 사정거리를 체크하고, 상대와 나와의 거리를 측정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시야와 예상은 의외로 부정확해서 정확한 간격을 측정하려면 팔을 직접 뻗아봐야한다. 다른 무도들은 본격적으로 건드려 본 일이 없지만, 아마 대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거리(자신의 공간)와 타이밍을 제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말이다.

우리는 도무지 상대를 정면으로 보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팔을 뻗어 상대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해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려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내적으로는 끝간데 없이 자신의 감정 혹은 자의식에만 침잠하면서 외적으로는 상대가 아니라 오로지 관객의 시선만을 의식한다. 그러니 상대방이란 그저 멱살을 잡아 임의 구성해놓은 자신의 타임라인이나 자신의 감정 안에 패대기칠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무슨 이야기가 되겠고, 무슨 싸움이 되겠으며, 무슨 연대가 가능하겠는가. 그저 각자의 세계에서 서로를 이해 못할 멍청이라고 조롱이나 하면서 각자의 개판만 양산될 뿐이다.

링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채 두들겨 맞고 있을 때 링 밖에서 들려오는 "똑바로 정면을 봐"하고 소리치는 관장의 고함소리가 좋았다. 저렇게 용감하니까 챔피언도 했겠지. 그 고함은 링위에서의 내 꼴을 알려주는 어드바이스였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상대를 정면에서 응시한 채로 얻어맞는 데까지 성공했을 무렵, 내 성격이 바뀌어 있었다. 똑바로 정면을 보라는 말은 이후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 되었다. 싸움이든 연대든 연애든 상대를 정면으로 똑바로 봐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자기 자신의 정확한 움직임도, 상대와의 정확한 거리도 측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신체를 단련하고 상처 입을 지도 모르는 근본적인 공포를 극복하면서, 외적으로는 억지로라도 이기고자 하는 상대를 이해해야만 하는 이 스포츠를 깊이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근육과 체력이 빠지고 신체가 늘어지고 있지만, 그 마음만은 늙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감정에만 침몰되는 것을 극복하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를테면 그게 자기 자신의 꼴이든 상대의 면모든- 억지로라도 이해해보려 하는 그 마음 말이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비겁할 바에야 차라리 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물정 모르는 자신에 안도한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