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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 양 Headshot

올랜도 게이클럽 총기난사, 그리고 서울의 나,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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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미국 플로리다 주의 올랜도에서는 사상 최대의 사망자를 낸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국내 각종 매체에는 사건발생지가 '나이트 클럽'으로만 기재된 경우도 많았지만, 구체적으로 사건의 발생지는 '펄스'라는 이름의 '게이 클럽'이었습니다. 또한 이는 성소수자들을 상대로 한 혐오범죄였습니다. 우리는 '게이'와 '혐오범죄' 라는 단어들이 어떤 기사들에서는 언급조차 안 될 만큼 성소수자 이슈에 무감각한 한국 사회의 모습과 태도를 다시금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보수적이고 종교의 이름을 이용해 성소수자에 반대하는 한국 사회를 바꾸고자, 사건 발생 하루 전인 11일에는 서울 시청광장에서 많은 인권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퀴어문화축제를 주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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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퀴어문화축제에서 공연중인 저와 제 팀의 모습 (사진출처: 김민수)

저 또한 2013년부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축하공연 및 예술활동, 부스운영 등을 해 왔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딱히 레이블(명칭)을 붙이지 않지만, 제 활동들을 봐온 주변 사람들은 저를 아티스트, 인권활동가, 혹은 그냥 제 이름인 히지라고 불러준답니다. 전 특히 이번 2016년 퀴어문화 축제에서는 이전 어느 해보다도 활발하게, 눈코 뜰 새 없이 활동을 했고, 스스로 국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어느정도 기여를 한 것 같다는 뿌듯함에 젖어있었습니다. 그것이 퀴어문화축제를 마친 11일 저녁의 제 기분이었는데요, 이는 하루도 채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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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홍대에서 열린 올랜도 총기난사의 피해자들을 기리는 촛불 문화제

고작 하루가 지나고 12일에 저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인들과 함께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올랜도 게이클럽에서 발생한 혐오범죄와 그로 인해 49명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이 기사를 처음 접한 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 혹은 한국인들 가운데에도 올랜도와 깊은 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랜도가 출신지라든가, 올랜도에 가까운 지인들이 많이 있다든가, 특히 성소수자 지인들이 있다든가...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요. 그 가운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제 친구이기도 한 팀 깃즌(Tim Gitzen)이 서울 홍대에서 올랜도 피해자들을 기리는 촛불 문화제를 기획하고 이끌었습니다. 문화제의 기획부터 홍보까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는데, 약 400여 명의 성소수자 및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날 저녁 홍대의 한 공원에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도 먹먹하고, 또 슬퍼 보였습니다. "우리도 존재한다", "우리도 인간으로서 똑같은 권리를 원한다"라고 퀴어문화축제에서 외쳤던 것이 고작 엊그제인데, 그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가 듣는 것은 게이클럽에서 49인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이어야만 하는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퍼레이드를 이끌며 춤추고, 부스에서 예술작품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우쭐해 있던 저에게 이 사건 소식은 제 눈을 다시 한번 제대로 뜨게 해 준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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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집회에서, 우리는 눈물을, 그리고 사랑을 서로 나누었다."
제 일러스트레이션 저널 시리즈 가운데 이 날의 촛불문화제를 다룬 에피소드

저는 촛불문화제에서 너무나 많이 울었습니다. 처음 절반은 저의 무력함과, 잠시나마 스스로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우쭐했던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나머지 절반은 이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사랑으로 치유해주는 모습에서 받은 감동 때문에 울었습니다. 저는 근 몇 년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에 관련한 작품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그날 촛불문화제에서 받은 감동과, 우리가 혼자가 아닌 것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한 장 짜리 일러스트레이션 저널을 그렸습니다.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저는 울고 있고, 제 곁에는 저를 감싸안아준 너무도 고마운 남자친구를 비롯한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답니다. 이 그림을 통해 저는 제가 받은 감동과 사랑을 표현해 내었지만, 여전히 혐오세력 앞에서 무력하게 내가, 그리고 희생당한 성소수자들이 패배했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저는 그 후 약 1개월 반 동안 작품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7월 말에 들어서야 저는 작품 제작에 돌입했고, 이제서야 스스로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여 이 포스트를 통해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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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ay say I'm a dreamer"
"당신은 내가 몽상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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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I'm not the only one. These are people who are dreaming with me in Seoul."
"하지만 (평화를 바라는 것은) 저 혼자만의 몽상이 아니랍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저와 함께하고 있어요."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 작품은 출력본으로 보시게 되면 팝업 책이나 팜플렛처럼 한 장을 넘기면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 입니다. 작품은 존 레논(John Lennon)의 이매진(Imagine)의 유명한 가사와 함께 시작합니다. 총을 든 상대 앞에 저 홀로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첫 장면이고, 한 장을 넘기면 제 뒤로 가려져 있던 48인의 성소수자 및 지지자들이 깃발을 들고 당당한 모습으로 저와 함께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총을 든 상대에 맞서는 인물의 수가 49명인 것은 올랜도 사건의 사망자가 49인이며 우리는 이에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서 마칭(Marching)해 나갈 것임을 상징합니다. 전 이 작품을 처음 구상했을 때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리커쳐의 모습으로 작품 안에서 저와 함께 할 48인을 모집하고자 했고, 실제로 48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며 참여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저는 실제로 제가 아는 이들, 가까운 이들 위주로 48인을 선정했고, 오랜 시간 펜과 인내심과의 사투 끝에 이들을 모두 그려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촛불 문화제에서 저를 안아주었던 당시의 제 남자친구가 제게 해준 말이 있습니다. "네가 무력하다고 느끼고, 변화를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하는 일들, 만드는 작품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하고 변화를 불러오는데 기여하고 있어." 제가 정말 변화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을까요? 저는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이 말이 맞기를 바라며 계속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가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제 친구들이 말했듯, 당시의 제 남자친구가 말했듯, 그건 제가 할법한 일이 아니니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글로, 행동으로 저와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봅니다. 지금도 애쓰고 계신 수많은 인권 활동가, 아티스트 분들과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봅니다!

제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성소수자 커뮤니티입니다:
www.facebook.com/groups/lgbtkorea
더 많은 제 작품을 보시려면 제 웹사이트를 방문해 주세요:
www.heezy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