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윤희웅 Headshot

'약장수'와 '홍보관'에 욕만 할 순 없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OLD MAN
Getty Images/Vetta
인쇄

"그 사람들, 뭐라 하지 마라. 다들 늙은이 귀찮아하는데 살갑게 대해주고 즐겁게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다." 몇 해 전 팔순이 넘은 외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기성이 짙으니 가지 마시라"고 했다가 들은 핀잔이다. 마을 노인들을 흥겹게 해주고, 당일치기 관광도 보내주면서 한편으론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이나 생필품을 파는 곳을 '홍보관'이라고 했다. 이후 다른 친척집 어른들과의 대화에선 '약장수' '홍보관' 얘기가 나오면 "휴지나 칫솔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사면 괜찮다"고 수위를 낮췄다. 여가를 보낼 마땅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현재 즐거움을 금지할 자격이 내겐 없었다.

우리 노인의 각종 사회지표는 처참하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는 한때 '노인공경 사회' 타이틀을 지녔던 나라가 맞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미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인데 우리는 그저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야 한다'고만 외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를 넘는 고령화사회에는 이미 2000년에 진입했고, 14%를 넘는 고령사회는 2~3년 앞으로 다가왔다. 일본은 24년이 소요되었지만 우리는 20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노인 문제는 크게 경제, 건강, 소외로 정리된다. 우리는 모든 항목에서 심각하다. '배고프고, 아프고, 외롭다.' 특히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소외 문제다. 우후죽순 약장수와 홍보관이 퍼진 것도 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2016 고령자 통계를 보면,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허락한다면 '여가에 관광하고 싶다'는 응답이 51.1%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실제 '여가 때 관광을 한다'는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지난 1년간 공연, 전시, 스포츠를 한 번 이상 관람한 65세 이상 인구는 24.5%에 그쳤다. 복수응답을 받은 여가활용 방법에 대해선 'TV·DVD를 시청한다'가 83.1%로 가장 많았다. '그냥 쉰다'는 응답도 51.3%에 달했다. 50대까지만 하더라도 여가활용 방법이 다양한 데 비해 60대로 넘어가면 극히 단조로워진다. 단순히 건강과 비용 문제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전엔 여가에 가족들이 함께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녀와의 동거는 2014년 기준 28.4%였는데 이는 10년 새 10.2%포인트가 급감한 것이다. 동거 자녀들도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 좋겠지만 부채의 덫에 헉헉대는 자녀 세대들의 실천은 요원하기만 하다. 2014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부모 부양의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응답이 1998년엔 89.9%였지만 2014년에 31.7%로 뚝 떨어졌다.

그래도 부모들은 자녀와 동거를 원할 것 같은데 정작 조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비율이 24.9%에 그친 것이다. 정말 자녀들과 살기 싫은 걸까. 아마도 노년 부모들이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솔직한 대답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실한 여가는 노인의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킨다.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은 경제적 원인이 크긴 하지만 외로움과 우울증도 만만치 않다. 20만원을 쥐여주는 일로 끝낼 게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주 임무다. 21세기 안보 개념은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빈곤과 건강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으로 확장된다.

대선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대선 주자들의 싱크탱크도 선을 보이고 있다. 청년 문제의 해법도 내놓아야 하겠지만 노인 문제 대책도 보다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선보여야 한다. 대선은 훌륭한 리더를 뽑는 일이면서 필요한 정책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한 만큼 대선 주자들의 준비가 요구된다. '노인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불탄 것과 같다'는 속담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