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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대통령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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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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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올림픽이 순수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도시국가들은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 엄청난 물질적 보상과 최고의 영예를 부여했다. 올림픽에서의 성적이 통치세력에게도 정치적 혜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심판매수도 흔했고, 돈을 주고 타국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임대해 와 출전시키기도 했다. 또 일반 대중을 폭넓게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에 유력정치인들은 올림픽이 열리는 곳에서 연설도 많이 했다. 올림픽이 하나의 정치포럼장이기도 했다. 정치적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올림픽의 이러한 정치적 '전통'은 현대에 와서도 계속된다. 올림픽의 자국 유치를 통해서, 올림픽에서의 선수단 성적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얻고자 하는 시도가 흔히 있다.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도약에 상당한 기여를 했지만 애초 유치하기로 한 결정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독일 바덴바덴으로 떠나는 유치단에 당시 안기부장이 나타나 "빈손으로 돌아오면 기다리는 건 지중해 푸른 물일 것"이라는 얘기를 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메달리스트들을 오픈카에 태워 대규모 카퍼레이드를 한 것은 기쁨을 국민과 함께 다시 한 번 누리고자 하는 의도가 없진 않았겠으나 정권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지곤 했다.

이러한 일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일본의 아베 정부도 2012년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환영하는 카퍼레이드 행사를 도쿄 도심에서 연 바 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것을 즐긴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 라커룸을 찾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카퍼레이드 같은 노골적인 마케팅은 비난 여론이 커 이제는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의 스포츠마케팅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올림픽을 전후해 정치권 인사들이 선수촌을 방문하고, 선전한 선수에게 축전을 보내며, 이후에 만찬을 베풀기도 하는 것은 모두 정치적 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올림픽에서의 선수단 성적이 좋으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도 오르는 현상이다. 박태환, 장미란 등이 선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올림픽 시작 전 10%대였던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끝나고나서는 30% 수준까지 수직상승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2002년 월드컵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역시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적지 않게 상승했다.

대통령이 직접 선수로 뛴 것도 아닌데 '메달특수'를 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선수들의 선전이 보는 이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형성하게 하고, 이것이 당시 국정에 대한 우호적 시각에도 다소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대통령이 경기를 응원하고, 기뻐하고, 축하하는 모습이 전달되면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동질감과 유대감을 갖게 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배경은 당시 존재하는 정치적 악재들을 가리는, 이른바 커튼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이슈들이 뉴스를 채우고 있던 상황에서 올림픽이 시작되면 선수들의 경기 관련 내용으로 바뀐다. 모든 언론이 스포츠신문이나 스포츠뉴스로 변하는 셈이다. 대중의 시선이 분산되면서 악재에 대한 집중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즈음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기도 했고, 직전에는 이른바 옷 로비 사건으로 정권이 타격을 받기도 했지만 월드컵이 충격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기능을 했다. 또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이명박정부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논란과 촛불시위로 인한 위기에서 탈출하게 해주었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