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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저녁이 있는 삶'이 얘기가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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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MPLOYMENT
Shutterstock / Luna Vandoo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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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청년은 청춘(靑春)의 계절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엄혹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우리 사회 청년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실제 한 조사에서 우리 사회 청년들을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었는데 당사자인 20대 응답자들은 50.7%가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30대에서는 45.6%, 40대에서는 36.6%, 50세 이상에서는 32.2%가 '비관적'에 체크했다. 반면 낙관적인 기분이 든다는 응답은 20대 14.3%, 30대 13.7%, 40대 22.0%, 50대 이상 35.3%에 그쳤다(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2015년 9월).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 주자는 '저녁이 있는 삶'을 선거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현실의 문제와 미래 비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역대 가장 품격 있는 캐치프레이즈로 평가받았다. 당시 주목을 크게 받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되어서가 아니다. 이것이 얘기가 되려면 야근이 많다는 문제 이전에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이 먹힌다. 하지만 고용률은 좀체 늘지 못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축출되고 불량 일자리만 창출되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얻었어도 언제 잃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은 '먼 세상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청년은 특히 심각하다. 6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치였다. 17년 전이면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이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고용동향 보고서를 보면 만 15세부터 29세까지 청년층 실업률은 10.3%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 올랐다. 이 실업률 통계에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구직활동을 아예 멈춘 사람들, 집안일을 무보수로 돕는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니 실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청년 실업은 단지 지표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청년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5초 동안 떠오르는 단어 3개를 생각하도록 한 뒤, 24개의 예시어 중 2개를 고르도록 했더니 '청년실업'과 관련한 단어들이 주로 선택되었다. 취업, 실업, 일자리, 백수, 알바, 인턴 등 청년들의 불안정한 일자리 상황을 나타내는 단어의 비중이 47.6%였다. 20대와 30대에서는 이 비율이 55%까지 올라갔다. 청년과 어울릴 것 같은 열정, 낭만, 청춘, 패기 등의 비중보다 높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력해도 어렵다는 인식까지 형성되고 있다. 20대에서 58%가 취업하는 데 있어 인맥과 연줄이 '매우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부모의 능력이 매우 영향을 준다'는 응답도 44.4%에 달했다. 개인의 노력보다 배경 요인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나약해서 이런 생각을 갖는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암울한 인식은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부모 세대보다 다음 세대인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통계청 사회조사 질문에 '가능하다'는 응답이 2009년엔 48%가 되었지만 지난해에는 32%까지 떨어졌다. 자녀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상승 가능성에 대해 우리 국민 10명 중 고작 3명만 믿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및 자녀 취업 청탁, 공무원의 몰지각한 발언, 재벌 3세들의 부적절한 행실 등에 대한 대중의 격렬한 분노 표출에는 청년들의 불안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이 시대 보통 청년들의 현실과 너무나 다른 사람들의 일탈을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청년안보'도 시급히 다룰 국가과제로 올려야 한다. 현대 안보 개념은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human security)로 옮겨가고 있다. 안보의 대상이 국가 자체였던 전통적 시각에서 개인의 안전과 삶의 질로 확장되고 있다. 생존의 위협, 희망의 상실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사드는 어디 없는가.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