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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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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어떤 메모] 〈남자 마음 설명서〉, 탁현민, 해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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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한국 남성이 쓴 책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탁현민의 "남자가 대놓고 말하는(부제)" 〈남자 마음 설명서〉를 읽었다. 나도 그처럼 "대놓고" 독후감을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양 있게 살아야' 한다는 나의 허위의식이 역겹고 답답하다. 단, 이렇게만 말해두자. 나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가해 남성, 성 구매 범죄자를 상담하는 일을 해왔고 책도 썼다. 마치 그런 공부를 하는 것처럼 '필드워크'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한 줄 한 줄이 명문(銘文)이라 이 지면에 책을 분석하려면 최소 6개월 정도 걸릴 듯하다.

저자도 저자지만 이런 책을 펴내는 일부 출판 편집인들의 안목('수준')도 지적하고 싶다. 홍준표씨는 탁씨처럼 진보를 자처하지 않으며, 이 책은 이원호의 〈강안(强顔) 남자〉 같은 하위문화(subculture)를 표방하는 책도 아니다. 홍씨와 이원호 작가의 포지션은 명확하다. 어쨌든, 이 텍스트의 '특별한' 점은 일부 한국 남성의 인권의식과 정치의식의 표본이라는 데 있다. 저자 같은 이들의 의식이 극복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 미래는 없다.

남자 마음 설명서?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한다. 남자도 인간이고, 인간은 다 다르다. 왜 자기가 남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할까. 이 보편성에의 욕망과 과대망상의 근거는 어디에서 왔을까. 제목을 굳이 정한다면, 남자 마음이 아니라 '내(저자) 마음 설명서'다. 여성에 대한 묘사의 일반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남성의 몸을 일반화하는 이 조물주 콤플렉스를 어찌해야 할까.

"콘돔의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195쪽). 이 구절은 5장 '하고 싶다, 이 여자' 편에 나오는데, 알려진 사실과 '달리' 저자는 피임과 성병 예방을 위해 콘돔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의 요지는 콘돔 사용이 "한 차원 높은 정서적 교감"을 방해하니, "안전한 콘돔과 열정적인 분위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서 임신을 "사고(?)"라고 표현하고 있다(물음표는 저자 본인의 표시).

일단, 그는 이 책에서 공중 보건과 관련하여, 중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만(?) 26명의 여성과 연애했다는 저자의 경험을 고려하면, 무지로 인한 자신감이 지나치다.

첫째, '섹스=남성의 삽입'이 아니다.

둘째, 질외 사정은 "테크닉"과 무관하게 임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출산·낙태·성병은 저자처럼 타인의 안전과 생명에는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사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에게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다.

넷째, 저자는 묻고 있다. "콘돔 사용이 그렇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흡연 장면이나 안전벨트 미착용처럼 드라마나 영화에서 왜 강조하지 않느냐"(196쪽)는 것이다.

남성 중심 성문화에서 콘돔 사용은 중요시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섹슈얼리티 문화, 정부의 정책과 검열 기준은 여성과 성적 소수자에게만 가혹하다. 폭력은 허용하지만 음란은 경계한다. 때문에 성폭력 장면은 섹시하게 묘사하지만(섹스와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콘돔 사용 장면은 음란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콘돔 수출 세계 1위국이다. 그러나 여성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어야 하는 경구 피임약은 광고가 가능하지만 남성이 한번 착용하는 콘돔은 광고 금지 품목이다. 그만큼 여성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다. 콘돔이 '수출 효자 품목'이면 무슨 소용인가. 정작 자국 여성에게 콘돔은 의미가 없고 사후 피임으로서 낙태가 있을 뿐이다. 파트너와 콘돔 사용을 협상할 수 없다면, 진정성 있는 관계가 아니라 권력 관계다. 타인의 생명을 쥐고 흔드는 남성의 무한한 쾌락과 권력.

나는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를 원하지만, 이 책을 읽고 어쩔 수 없이 '바닥'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니스커트, 숏팬츠보다 짧은 옷 안에 제발 쫄쫄이 속옷 좀 입지 마시라"(33쪽). 이런 발상과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다음주에 계속〉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