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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청의 어긋난 '소통'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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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부터 방위사업청은 '차륜형 지휘소용 차량 디자인 선호도 조사'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투표를 하고 있다. 투표 내용은 이름 그대로이다. 현재 개발 중인 차기 지휘소용 장갑차의 디자인 시안 네 가지(기본, A, B, C)의 선호도를 일반인 투표를 통해 조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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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투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애당초 무기의 디자인은 '일반인의 선호도'를 통해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자동차를 사는 것이라면 가격이 약간 더 들더라도 디자인이 좋은 차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무기는 다르다. 디자인에 따라 성능과 비용의 변화가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특히 성능과 무관한 디자인의 변화는 당연히 비용으로 연결되며, 민수용 차량과 달리 만들어지는 양이 매우 적은 군용 차량이면 이런 약간의 변화도 쉽게 대당 억 단위의 비용 추가로 연결될 가능성마저 있다. 더 나쁜 것은 이런 디자인의 변화가 성능에 직접 악영향을 끼칠 경우로, 잘못하면 보기 좋은 물건 만들어서 전투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디자인을 멋있게 바꾼다고 해서 헤드라이트 부품을 이 차량에만 사용할 새로운 것으로 선정했다 치자. 그러면 그 뒤로 우리 군은 이 장갑차 전용의 헤드라이트를 따로 주문해 따로 생산해야 한다. 문제는 이 지휘장갑차는 어디서 뚝 떨어진 완전한 신형차량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장갑차인 차륜형 장갑차를 기초로 만든 파생차량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헤드라이트가 기존 장갑차와 다르면? 겨우 보기 좋게 한다는 이유로 기존 부품도 못 쓰고, 당연히 이는 비용 상승과 야전 정비성의 악화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보기 좋게 하다가 세금 낭비하고 전투력 떨어지는 것이다.

헤드라이트는 어떨지 몰라도, 현재 제안되는 디자인 변경안들이 적어도 차체 전면부에 한해서는 원래의 차륜식 장갑차와 다른 부품들을 요구할 부분이 어느 정도는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그만큼의 비용 상승으로 연결된다. 겨우 보기 좋은 것 하나를 목적으로 왜 군용 장비에 돈을 더 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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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시대착오적 인식

게다가 더 문제는 이런 문제가 일부에서 지적되자 나온 방위사업청측의 페이스북 답글이다.

'장갑차 전면의 모습은 기능에 문제없다는 가정하에 적군에게 보이는 모습과 장갑차를 탄 우리 군의 사기와 연관하여 디자인을 검토하는 것으로 군 보안사항과는 무관합니다'

일단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무기는 기능에 문제가 없다고 가정하면 그 다음에는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원가를 절감하는 것이 원칙이다. 무기 도입 비용은 국민의 세금이다. 그것을 '보기 좋게' 하려는 목적으로 더 쓸 수도 있다는 것인데,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진짜 문제는 '적군에게 보이는 모습'과 '장갑차를 탄 우리 군의 사기'라는, 현대 무기의 개발에 가장 고려할 필요가 없는 부분, 아니 어떻게 보면 고려해서는 안될 부분을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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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무기는 적군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적의 눈에 안 띄냐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스텔스 전투기가 적에게 무서워 보이라고 그런 모양을 했나? 군에서 위장을 왜 하는지도 망각한, 지극히 한심한 이야기다. 애당초 여기서 따지는 차체 일부분의 실루엣이나 헤드라이트 형상 같은 것은 현대전의 교전거리에서는 적이 제대로 식별하지도 못하며, 어차피 야전에서는 각종 위장으로 그런 디자인적 요소가 보일 수도 없고 보여서도 안된다. 즉 가장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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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지휘소용 장갑차는 곧 군에 실전배치될 K808 차륜형 장갑차를 기반으로 한다. 지휘소용 장갑차의 디자인중 이것과 달라지는 부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공통 부품의 숫자도 줄어들어 그만큼 정비성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게다가 지휘소용 장갑차는 적의 눈에 잘 띄면 더더욱 안된다. 지휘소는 전쟁 중 적의 최우선 타격목표다. 어떻게든 다른 장갑차들과 덜 달라보이게 하는 편이 이상적이다. 그런데 '적군에게 보이는 모습'을 여기서 왜 '디자인적으로' 따질까. 이는 그야말로 무서운 형태나 도안 등이 적에게 공포심을 줄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적에게 뭐가 보이는지가 중요하면, 차라리 완성된 장갑차 앞에 호랑이 얼굴이라도 큼지막하게 그리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고 싶을 지경이다.

'우리 군의 사기'를 핑계로 내세우는 것도 우습다. 이 장갑차를 운용하는 병력의 사기를 걱정한다면 어떻게 생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원래 설정된 성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그리고 고장은 없는지, 운용은 편한지가 중요한 거다. 아무리 멋있어도 매일같이 고장 나고 쓰기 불편하면 병사들의 사기는 전혀 오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성능 신경 안 쓰고 디자인에나 신경 썼다고 병사들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런 소통 필요없다

물론 방위사업청은 이것이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라며 나름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의 본분은 소통이 아니라 '최저 비용을 통한 최선의 결과 도출'이다. 한마디로 좋은 무기를 더 낮은 가격에 들여오는데 먼저 신경을 써야지, 무슨 나폴레옹 시대에도 안 먹힐 '적에게 보이는 모습' '아군의 사기' 운운하는 핑계를 대며 자칫 결과에 따라서는 비용 상승이나 운용성 저하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는 디자인 투표를 벌이는 것이 언제부터 방사청의 본분이 되었을까. 소통도 어디까지나 본분을 다한 다음에나 할 일이다.

물론 방사청 측은 '의견수렴한 결과는 향후 설계 시 참고할 예정으로 기능을 고려하여 최종 형상이 결정될 것'이라고 하기는 했다. 그러나 기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할 거라면 애당초 이런 '디자인 공모'는 필요 없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무기는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필자는 여기에 사은품으로 내걸린 선물조차 아깝다. 큰돈 아니라고 해도 내가 낸 세금이니 말이다. 하물며 그 결과가 장갑차 자체의 비용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아울러 방위사업청은 왜 그 동안 비난의 대상이 됐는지 제대로 깨닫기 바란다. 이런 이벤트를 안 해서 욕 먹은 게 아니다. 특히 그 동안 전문성 부족이 중요한 비판의 대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에게 보이는 모습' '아군의 사기'운운을 거론한 이번 이벤트는 그 전문성 부족을 여실히 보여준 우울한 모습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