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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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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뙤약볕 속 경기도 이천의 특수전 사령부 연병장에 주한 미군 수뇌부가 총집결했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미 8군 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제2보병사단 마틴 사단장 등 간단하게 세어도 '미국 별'이 10여개. 미군 행사에서도 주한미군 최고 지휘부가 이 정도로 한데 모이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그뿐만 아니다. 이기백-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은 물론이고 수많은 전-현직 군인들,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평소에는 이천에 특수전 사령부라는 곳이 있는줄도 모를 -이천 특수전 사령부는 아주 최근에야 서울에서 이전한 곳이다- 사람들이 이 날 이곳에 몰려들었다. 왜일까. 바로 한 장성의 전역식에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의 전역식은 바로 전인범 육군 중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장성의 전역식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이기는 하지만, 대장도 아닌 중장급 장성, 그것도 전역 후 어딘가 '높은 곳'으로 갈 예정도 없는 장군의 전역에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심지어 주한미군이 거의 수뇌부 총출동을 감행(?)하는 경우가 과연 흔할까.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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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장군의 이야기는 33년 전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위 계급이던 그는 합참의장 수행부관을 할 때 아웅산 테러를 만났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였지만, 2차 폭발의 우려가 있음에도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을 구출해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했다. 이기백 전 장관이 이날 전역식에 참석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만이 그를 설명할 소재가 되지는 않는다. 그 뒤 중대장부터 연대장에 이르기까지 전투력 측정을 하면 언제나 그가 지휘하는 부대가 최상위권을 휩쓸었고, 사단장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것이 흔히 말하는 'X별'스타일의 지휘로 부하들을 괴롭히기만 해서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부대에 눈이 오면 사단장부터 직접 삽을 들고 제설작업에 나서고, 행군을 해도 사단장이 맨 앞부터 뒤까지 오가며 격려했다. 군단장은 물론 국회의원이 방문할 때조차 다른 'X별'들 처럼 보여주기식 '쇼'를 벌이지 않으려 애썼고("그 양반들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는 말은 해당 부대에서는 지금도 유명하다), 병사들의 휴식과 복지는 반대로 어떻게든 보장하려 애쓰면서 필요하다면 '별'의 체면 따위는 쉽게 던져버리고 지역사회 등 위아래를 막론하지 않고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또 사병들의 전역식 자리에서는 '군 생활하느라 고생했는데 줄 것은 없으니 투 스타 경례나 받고 가쇼'라며 전역병들에게 부동자세의 거수경례를 한 일화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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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밑에서의 군생활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훈련만큼은 오히려 소위 말하는 'FM대로'였고, 타성에 젖어 그의 질문에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목소리만 높이는 휘하 간부들은 그야말로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질책받기 일쑤였다. 병사들은 절대로 '대충대충' 훈련을 넘어갈 수 없었고, 간부들도 언제 날아올지 모를 매서운 사단장의 질문에 늘 제대로 답할 준비해야 했다. 된다면 왜 되는지 자세히 말하고, 안되면 솔직히 털어놓고 왜 안 되는지를 자세히 밝혀야 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 가능했던 것은 전인범 장군 본인이 소위 말하는 '밀덕', 즉 밀리터리 마니아급의 해박한 군사지식을 갖췄을 뿐 아니라 현역 국군 장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수준의 유창한 -통역이 필요 없는 수준- 영어 구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원래 밀리터리 마니아가 상대라면 설령 그가 민간인이라도 현역 군인이 혀를 내두르는 지식을 가진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물며 현역 군인, 그것도 장성급에 해외 최신정보를 문제 없이 해독할 능력자가 상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의 경력은 이런 그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2004년에는 이라크 다국적군 사령부 선거지원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 모두에서 훈장을 받았고, 2007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카불 현지에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되어 인질 구출을 위해 힘썼다. 그리고 2011년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차장으로 영전했고, 2013년에는 유엔 군사정전위원회의 한국군 수석대표로 임명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미 연합작전 능력을 높이고 한미 유대를 발전시키는데 누구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미국이 외국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등급 훈장인 공로훈장을 2011년 5월에 수여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10월, 25대 특수전 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의 휘하에서 특전사는 과거 보지 못한 강도 높은 개혁을 겪었다.

일단 훈련 내용이 바뀌었다. 특전사 대원이 복무 중 여러 차례 겪으면서 필요 이상으로 육체적 소모와 부상을 겪게 만들던 천리행군을 강도는 높이는 대신 특전교육단에서 단 한번만 하게끔 바꿨고(대신 여기서 탈락하면 퇴교), 사격부터 시작해 수많은 훈련 내용들에서 '보여주기'식 내용은 배제되고 최대한 실전적이고 실용적으로 바뀌면서 더욱 혹독해졌다. 대신 훈련과 체력단련이 끝난 뒤에는 불필요한 업무를 최대한 줄여 야근할 일이 거의 없어졌고, 회식도 제한하면서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는 한편으로 주말의 외출이나 외박도 할 일만 제대로 끝내면 눈치 보지 않고 나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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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특전사 개혁에서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바로 '사제장비 허용'이었다. 그 동안 특전사 대원들은 지급품의 열악한 성능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많은 사제품을 사용했지만 이는 규정 위반이었고, 그나마도 갈수록 선진국과의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는 총기 분야에서는 사제품 장착이나 개조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인범 사령관 아래에서는 사제품 사용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심지어 미군 특수부대처럼 총기에 '사제품'을 장착하는 등의 개조도 일정 부분 허용됐다. 나름 논란도 있었지만, 적어도 특전사의 장비들이 선진국과 비교해 매우 열악하며 이를 기존 시스템하에서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아는 많은 이들은 그나마 전인범 전 사령관이 현실에서 최대한 특전사의 전투력을 빨리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평가한다.

이런 그의 발걸음 덕분인지, 그는 현역 군인으로서는 흔치 않은 상당한 '팬덤'이 형성되기도 했다. 심지어 특전사 대원 중에는 그가 사령관직에서 이임(2015년 4월)한 뒤 전역하면서 '전장군님이 계속 사령관이었으면 전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주한미군 등 외국군과의 깊은 친분까지 더하면서, 3성 장군의 전역식으로는 드물게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특전사령관 자리를 떠난 뒤에도 '영원한 특전사령관'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부하들로부터 받은 흔치 않은 인물, 전인범 중장은 36년의 군 생활을 이렇게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