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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열악한 곳에도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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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 가다 4) 가장 열악한 곳에도 가능성이 존재한다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절망적인 상황을 연이어 목격했던 나는, 사실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오늘은 이런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는데, 내일은 얼마나 더 비극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될까. 그러나 무엇보다 힘겨웠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비를 내리게 할 수도, 마을 전체에 거나하게 식사를 대접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른 장소로 향하는 수밖에. 그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을 마치 수박 겉핥기식으로 구경하는 것 같았고, 거기서 미처 주체할 수 없는 무력감과 허탈감이 찾아왔다. 나는 도대체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고 했다. 케냐 방문 중 가장 희망찬 날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월드비전 멤버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차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가슴이 절로 벅차올랐다. 사람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고, 곳곳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여기에는 물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9월에 완공된 이곳의 식수펌프는 1시간에 24,000리터의 물을 끌어올릴 수 있고, 앞으로도 30년간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브라보! 케냐 월드비전 담당자는 한국의 후원자들 덕분에 수원을 찾고, 우물을 파고, 펌프를 설치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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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펫펫(Lpetpet) 마을의 식수대. 100가구가 함께 사용한다.

나는 기여한 바가 아무것도 없지만, 바로 그 한 가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뜨겁게 환영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릎을 굽혔다 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리에게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어떤 삼부루족 할머니는 케냐 국기가 새겨진 팔찌를 나의 손목에 채워주려 애썼는데, 생각만큼 잘 맞지 않아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러고선 나와 눈을 마주치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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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가축들을 위한 식수대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변화를 이야기했다. 물을 얻고 나서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이다. 죽어가던 가축들이 생기를 되찾았고,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는 장장 6시간 동안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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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글라스 레키타차렌(Douglas Lekitacharen, 27)

이 우물을 운영하는 주체는 정부 관료들과 마을 주민들이 꾸린 식수 위원회. 뜻밖에도 그 위원장은 젊디젊은 청년이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더글라스는 아직 27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동체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었다. "앞으로는 마을 젊은이들과 함께 케일, 양배추, 당근, 양파, 토마토 등을 심어서 수익을 창출할 거예요. 물만 있으면 4계절 농사도 문제없으니까요!" 더글라스는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물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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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보르케이(Naiborkei)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근처 나이보르케이(Naiborkei) 초등학교로 향했다. 우리는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교장 선생님, 조세핀(Josephine)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이야기했다. "월드비전에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해요. 월드비전은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해주고, 학교를 보호하는 울타리도 지어줬죠. 덕분에 전에는 외간 남자들이 침입해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제는 안전해요. 또 월드비전이 사택을 지어준 덕분에 15km 밖에서 통근하던 선생님들이 학교에 머물 수 있게 되어 보충수업이 가능해졌지요. 그뿐인가요, 전에는 학생들이 생리 중에는 전혀 학교에 오지 못했는데 월드비전이 생리대를 지원해주어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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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핀 레키팔로이(Josephine Lekipaloi, 38), 가장 왼쪽.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면서, 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진 않았는지. "물론 차별과 편견이 있었죠. 처음 부임할 때만 해도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정부 관료들과 약속을 잡아도 막상 약속시간이 되면 휙 보고는, '무슨 여자가 교장이야? 다시 돌아가야겠네!'라며 말도 섞지 않았죠. 그런데 하나둘씩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학교 성적이 일취월장하면서 조금 나아졌어요. 돌이켜보면 정말 힘겨운 시간이었죠."

조세핀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더니, 만나볼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주인공은 현재 7학년에 재학 중인 페이스(Faith). 페이스는 12살이 되던 지난 2012년, 40세가 넘는 남자와 조혼을 강요당했다. 심각한 가뭄으로 기르던 소와 양이 떼죽음을 당하고, 가장인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상황. 그때 한 남자가 찾아와 지참금을 지불하겠다고 했고, 페이스의 어머니는 마지못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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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 레산(Faith Lesan, 15)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난생 처음 본 나이든 남자와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싫었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어차피 돈이 없어 학교도 못 가는 상황이었거든요. 생활이 조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달랬죠. 그런데 새로 결혼한 남자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고, 거기서도 하루에 한 끼 정도밖에 먹지 못했어요."

페이스는 13살 무렵 아이를 낳았다. 출산 3개월 후 남편은 사망했고, 페이스는 다시 친정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조세핀과 월드비전은 이런 페이스를 발견해 다시 학교로 데려왔다. 페이스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어요. 저의 꿈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러한 상황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저널리스트가 되는 거예요. 저같이 돈이 없어서 조혼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말이에요."

케냐 정부는 18세 미만 아동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실상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은 지참금을 받고 딸을 팔아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 조세핀과 월드비전은 마을 지도자들과 협력해 조혼을 사전에 방지하고, 만약에 식이 진행 중이거나 종료되었을 경우 경찰과 함께 아이를 구출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여성할례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특히 삼부루에서 여성할례는 뿌리 깊은 전통인데, 할례를 받는 즉시 피를 흘리며 죽는 경우도 있고, 훗날 아이를 출산할 때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여성할례와 조혼으로 고통 받는 여아 30여명을 구출했다고, 조세핀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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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축 중인 구조 센터(Rescue Center)의 진척 상황을 확인하는 조세핀

그렇다면 구출된 아이들은 어디서 지내게 될까? "전에는 다 저희 집으로 데려와서 먹이고 재워가며 공부를 시켰지요. 그런데 점점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그건 불가능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월드비전과 함께 학교 안에 구조 센터(Rescue Center)를 짓고 있어요. 아이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나는 순간 경의의 눈빛으로 조세핀을 바라보았다. 물론 내가 나의 눈빛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랬으리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멋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결국 한 사람의 비전과 역량이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고, 한국 월드비전에서 그러한 변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조세핀에게 하루하루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사실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란 정말 힘들어요. 지난하고도 지난한 일이죠. 저의 목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에요. 그것을 위해 지금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 사회도 변하지 않을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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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 사흘간 목격했던 장면,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보고 들은 이야기. 나는 깨달았다. 가장 비참한 곳에도, 가장 열악한 곳에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친 풍랑에도 온몸을 내던져 등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맥없이 주저앉은 사람들이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더 많은 일들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를 위해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

간디는 말했다. "이 세상에서 보기 원하는 바로 그 변화가 되어라"고.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맞서, 지금 이 순간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나의 숙제이자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덧, 동아프리카 기근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길! wv.or.kr/eastaf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