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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케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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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 가다 1) 그렇게, 케냐에 왔다

그 문자가 도착한 것은 초여름의 훈풍이 살갗을 스치던 지난 5월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때는 오후 3시.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는데, 졸음이 몰려와 잠시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휴대전화 진동이 두 번 울리더니, 화면에 문장이 하나 나타났다. "혹시 통화 가능한가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의 주인공은 최인아 선생님. "네 선생님,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시나요?" 답장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케냐에 가고 싶은 생각 있어요?"
"네? 케냐요?!"

선생님은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월드비전에서 다음 달 동아프리카 가뭄 취재를 계획하고 있는데, 함께 동행할 사람을 구한다고. 그곳의 삶을, 많은 이들에게, 가감 없이 전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이다.

"그럼 고민해보고 이번 주말에 알려드릴게요!"
"그것보다 일찍은 안 될까?"
"그러면 오늘 저녁까지 고민해볼게요."
"더 빨리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
"네, 그럼 오늘 5시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보고 알아서 결정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일단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4시 58분에 최인아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만약 가능하다면 저는 가고 싶어요!"

그로부터 꼭 일주일 뒤, 여의도 월드비전에서 팀장님을 뵈었다. 나는 물어봤다. "저는 뭘 해야 하죠?" 팀장님은 거꾸로 물어보셨다. "가서 뭘 할 수 있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래, 글을 써야겠다. 스무 살의 눈으로 본 가뭄, 기근, 기후변화, 그리고 기아에 대해. 그리고 그 모든 시련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준비해둔 자료를 꺼내들었다. 여러 기사와 인터뷰, 보고서를 살펴보던 중 단연 눈에 띄는 대목.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4개국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기근에 시달리고 있죠. 국제사회가 노력하지 않으면 이들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유엔 사무차장, 스티븐 오브라이언의 이야기다. 2천만 명 이상. 그러니까 대한민국 인구의 거의 절반. 이제야 조금씩 피부로 다가온다. 이 기근이 얼마나 비참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말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 기아(飢餓)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경제적 기아.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수백만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을 뜻한다. 둘째는 구조적 기아. 더딘 경제발전, 불안정한 정치체제 등 사회 구조적 원인으로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2017년의 동아프리카 기근은 경제적 기아와 사회적 기아 중 어느 쪽에 해당될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우선 급격한 기후변화로 몇 년간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과 가축들이 맥없이 고꾸라져간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만한 역량이 없다. 그나마 정부가 존재하기라도 하면 다행.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국가들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가장 처참하게 파괴되는 것은 여성과 어린이들의 삶이다. 굶주린 아이들은 온갖 질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여성들은 조혼이나 여성할례와 같은 그릇된 풍습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삶의 환희는 사라진 지 오래고, 일상 곳곳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살아간다'는 한 마디가 실로 어마어마한 무게를 지닌 곳. 바로 그곳으로 나는 향하고 있는 것이다.

5시간의 비행과 5시간의 기다림, 또다시 9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나이로비는 삭막했다. 몇 해 전 일어난 테러 때문인지 공항에서 사진을 찍는 것조차 금지된 상황. 그것도 모르고 나는 셔터를 찰칵찰칵 눌러댔는데, 누군가 말리지 않았다면 곧 체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다. 아이들을 만날 때 단 둘이 있어서는 안 되고, 사람들에게 무례한 신체접촉을 해서도 안 된다. 숙소에 누가 문을 두드려도 절대 열어주면 안 되고, 중요한 물품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 차가 막히면 그때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창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기 때문. 들으면서 조금씩 겁이 나긴 했지만 어쨌든 접수 완료. 이제 간단히 아침을 때운 뒤 또 한 번 기나긴 여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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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륜구동 도요타 옆 올레몰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350km 떨어진 마랄랄(Maralal). 코끼리들의 고향으로 유명한 삼부루(Samburu) 주의 주도(州都)이다. 장장 7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을 마사이족 출신의 올레몰로는 월드비전에서 일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동안 엄청난 변화들을 목격했겠어요!"라니 씩 웃으며 "당연하지!"라고 말한다.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나자 가축 떼를 풀어놓은 채 도로변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기린과 얼룩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불현듯 아프리카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종종 말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의 부산한 몸놀림도 눈에 띄었다. 올레몰로에게 물어보니 모두 일요일이라 교회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조금 뒤에는 실제 예배 장면도 목격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뜨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인구의 85%가 기독교인인 케냐에서는 일상적인 장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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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없이 오랜 시간을 버티는 아카시아 나무

아직까지는 눈이 닿는 곳마다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올레몰로에게 물었다. "여기 가뭄이 심각하다더니 조금 이상한데요? 왜 이렇게 초록색이 많이 보이죠?" 올레몰로는 운전대를 이리 홱 돌리고 저리 홱 돌리며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진짜 가뭄이 얼마나 심각한지 볼 수 있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색 대지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표면은 쩍쩍 갈라져 있었고, 보이는 식물이라고는 길쭉하고 가시가 많은 나무들밖에 없었다. 물 없이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아카시아 나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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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에 힘없이 주저앉은 소. 이렇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간다.

물론 사진으로 접하긴 했지만 실제 두 눈으로 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자연이 등을 돌리면 인간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아니면 일주일?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느닷없이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오는구나! 너무 기뻐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와이퍼로 앞 유리를 닦으며 올레몰로가 말했다.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축복을 가져왔나봐!" 그러나 야속하게도 빗방울은 3분 만에 멎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렸다. 3분 동안 내린 비는 아마 3분이면 다시 증발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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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또 달린 끝에 마랄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난 지 25시간째. 올레몰로와 인사를 나누고 대충 몸을 추스르니 해가 뉘엿뉘엿 모습을 감추었다. 이곳저곳에서 힐끗힐끗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주인장에게 열쇠를 받아 졸졸 흐르는 물로 몸을 씻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하늘엔 별빛이 가득했다.

그렇게, 케냐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