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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도 국민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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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 HANDS
FangXiaNu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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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호기롭게 다짐했었다. 그저 여러 장소를 '찍고' 오기보다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현지인들을 만나고, 삶의 방식을 체험하고, 그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맥락을 들여다보겠다고. 그 속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보겠노라고. 실제로 열심히 답을 찾아 헤맸다.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만나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또 끊임없이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정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정답은 어디에 숨었는지 도통 찾을 수 없었고, 본래의 물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득해졌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너희는 왜 그렇게 살아?" "그건 잘못된 거 아니야?" 지금껏 살아온 배경도, 환경도 전혀 다른 이들이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 깊숙이 박혔다. 동시에 평탄했던 나의 사고에도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말 왜 우리는 이 모양이지?' '이렇게밖에 살 수 없을까?' '이건 비정상인데?' 나, 그리고 나를 이뤄온 사회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했다. 여행하는 내내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었다. 결국 떠날 때보다 더 많은 물음을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나이 다른 우리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들은 바로 독일의 십 대들이다. 7월의 어느 화창한 여름날, 나는 우연찮게 청소년들의 정치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의 호스트이자 김나지움 선생님인 슈테판 덕분. "이 행사는 청소년들의 의견을 실제 교육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 열리는 거야." 그의 말마따나 건물 안에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고등학생, 더러는 중학생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학생들의 무리를 따라 어느 회의실로 들어갔다. 건물 곳곳에서 여러 주제를 다루는 워크숍이 열리고 있는데, 그중 하나에 슈테판과 내가 합류한 것이었다. 방 중앙에는 정치인 몇 명이 앉아 있고, 학생들이 그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학생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또 궁금한 점을 정치인들에게 질문했다. 질문과 답변은 종종 불꽃 튀기는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들이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인들도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필요할 경우 그 내용을 수첩에 메모했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당시 학생과 정치인들은 '학교는 난민들을 어떻게 환영할 것인가'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또 '초등학교 4년 이후 학생들을 직업학교와 김나지움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올바른 일인가' 같은 주제를 두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몇 시간에 걸친 토론이 마무리되자, 다 함께 커다란 강당에 모여 각 조별로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나는 입이 딱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학생이 열심히 발표를 하고 있는데, 앞에 앉은 정치인이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러자 학생은 곧바로 호통을 쳤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웃음이 나오냐고요!"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정치인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했는지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단연 이 한 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가꿔나간다는 것. 어엿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에 반영된다는 사실! 모두 한국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한국 학생들보다 독일 학생들이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독일 학생들은 14세부터 정당에 소속되어 정치 활동을 시작할 수 있고, 16세에는 교육감과 지방의회 선거, 18세에는 연방의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2002년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된 안나 뤼어만은 이러한 시스템이 낳은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녀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 10대 시절부터 녹색당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세의 나이로 의원 자리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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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을 방문한 안나 뤼어만. © 한겨레

다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책상에 앉아 꾸역꾸역 무언가를 머리에 쑤셔 넣고 있을 지구 반대편의 불쌍한 영혼들이 떠올랐다. 독일의 청소년들과는 너무나 다른, 한국의 학생들이었다. 그 다름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단순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연 청소년도 국민인가?'

'국민'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의 범주에 청소년이 포함되지 않을 리는 없다. 그러나 청소년을 국민이라고 가정하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명제는 성립될 수 없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민'이 '주'가 되는 사회인데, 한국 사회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못한 채 공부만 해야 한다. 공부가 무엇인지, 무엇을 공부하는지, 왜 공부하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무작정 해야 한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주관도 별 쓸모가 없다.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객관적 사실을 외우고 또 외울 뿐이다. 목적이 있다면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하는 것. 그 목적을 위해 우리는 남을 짓밟기도 한다. 여기서 밀려나면 실패자가 되어 앞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불행하고, 또 불안하다. 그렇기에 경쟁하고 또 경쟁한다. 이러한 경쟁과 불안 심리를 강요하고, 또 부추기는 곳이 바로 한국 사회다. 이러한 사회를 어떻게 청소년(=국민)이 주인 된,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이 주권자인 국민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 칭할 수 없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에 실린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