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임하영 Headshot

나는 태어나서 학교를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들어가기에 앞서

1998년의 끝자락에 태어나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습니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함께 눈물 흘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옳지 못한 일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 머리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법, 그리하여 사람들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더한층 깊은 지혜를 얻었습니다. 책을 통해 수많은 인물을 만났고,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현실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면 스승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분들께 인생을 대하는 자세와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배웠습니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만났습니다. 열여덟이 되던 해, 홀로 88일간 떠난 유럽여행에서 철학을 논하는 고등학생들을 만났고,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보았고, 약자를 보듬을 줄 아는 따뜻한 어른들을 보았습니다. 답을 찾으러 갔지만, 결국 더 많은 물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2017-03-24-1490340845-9035351-DLAGK2.jpg

공부란 무엇일까요? 배움이란 무엇일까요? 이러한 물음이 생길 때마다 길을 나섰습니다. 때로는 책을 읽고, 때로는 여행을 떠나고, 때로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했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혼자서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배우며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제 삶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저 누군가 제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다르게 살아갈 조금의 실마리를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일곱 살의 불안

나는 태어나서 학교를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남들이 걸어오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사실은 종종 불안을 야기했다. 열일곱, 고등학교 1학년 나이가 될 무렵 이러한 불안은 감당할 수 없으리만치 극심해졌다.

2017-03-24-1490340960-6384455-DLAGK3.jpg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지? 대학에 가야 하나? 아니, 그 전에 대학에 들어갈 수는 있으려나? 군대는 어떻게 하지? 학벌, 연줄 없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모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생각했다. 차라리 학교에 다녔으면 어땠을까. 나에게도 정해진 길이 있으면 어땠을까. 곁에서 누군가 명확한 답을 제시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용없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고, 그 한숨은 이내 눈물로 변했다.

sewol 2014 16

나와 동갑이거나 고작 한두 살 많은 학생들이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았던 그해 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참혹한 장면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밖에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그리고 연이은 하루하루. 나는 똑똑히 보았다.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의지도, 능력도 없는 국가. 진상 규명은커녕 사건 은폐에 급급한 권력자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망각의 물결. 그동안 우리 사회에 존재하리라 여겨왔던 최소한의 가치들조차 무너져 내리자 허탈감과 무력감이 엄습했다. 광화문 광장에 주저앉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목적은 무엇인가.

그 실마리를 찾고 싶어 공허한 마음을 안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때 만난 것이 손때로 거뭇거뭇해진 홍세화 선생님의 책들이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부터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빨간 신호등』, 그리고 『생각의 좌표』까지. 젊은 날엔 민주화운동가, 회사원, 택시운전사, 귀국 후에는 신문사와 정당에 몸담으신 홍세화 선생님의 글 곳곳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2017-03-24-1490341226-2845724-DLAGK5.jpg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한마디였다. 홍세화 선생님은 불합리한 사회에 맞서 싸우려면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 사회가 원하는 실력이 없으면 이 사회에 맞서 발언하고 행동할 기회 자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유념해야 할 한 가지는 사회가 인정한 본인의 능력이 당연히 보잘것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보잘것없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님은 이것이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면 안주할 수 있고, 안주하려는 자신을 합리화하다 보면 사회에 대한 시각 또한 비판적이기보다 긍정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초심을 망각한 채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개인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지난한 싸움을 버텨낼 수 있단 말인가? 홍 선생님의 충고는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라는 것이다. 그대의 탓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인간성은 너무 오염되었다. 물신은 밀물처럼 일상적으로 그대를 압박해올 것이며, 그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질의 크기로 비교당할 것이다. 그것에 늠름하게 맞설 수 있으려면 일상적 성찰이 담보한 탄탄한 가치관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기 성숙의 모색을 게을리하지 말라. 자아실현을 위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그리고 성찰 이성의 성숙 단계가 낮은 사회에서 그대는 자칫 의식이 깨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에 앞서 오만함으로 무장하기 쉽다. 만약 그대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고 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 성숙의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모두 쉬운 길을 택한다. 그러나 삶은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그 소중한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자유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물신의 품에 안주할 것인가. 다시금 강조하건대, 그것은 일상적으로 그대를 유혹하는 물신에 맞설 수 있는 가치관을 형성하는가와 자기 성숙을 위해 끝없이 긴장하는가에 달려 있다. -『생각의 좌표』중에서

쉽진 않겠지만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것만이 세월호의 친구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선 먼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사회에 맞서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고지에 도달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타협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 능력을 다 갖추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두려웠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었다.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는 것. 능력을 갖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에는 끝없는 자기 성찰과 회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꿔나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홍 선생님의 책에서 마주한 프랑스의 대학 입시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같은 또래인 나의 숨을 턱 막히게 만든, 그런 광경이었다.

2017-03-24-1490341368-4453370-DLAGK1.jpg

프랑스의 고교 3학년 학생에겐 프랑스어 시간이 없어지고 철학 시간으로 대체된다(바칼로레아의프랑스어 시험은 다른 과목에 비해 1년 앞당겨 2학년 말에 치른다). 바칼로레아에서 철학의 배점은 프랑스어와 같거나 큰 차이가 없으며, 문과 학생의 경우에는 옵션으로 철학을 선택하면 전 과목 중에서 가장 높은 배점을 차지하게 된다. 그만큼 철학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고3 일 년 동안 플라톤부터 데카르트, 로크, 흄, 몽테스키외,루소, 볼테르, 칸트, 헤겔, 니체, 프로이트 등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처럼 시기 연대를 암기하고 저작명이나 주의 주장의 단순한 내용을 대충 알고 넘어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차이는 시험문제로 출제되는 논제의 몇 가지 예를 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망각이란 무엇인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락되는가" "지혜는 혁명적일 수 있는가" "좋은 편견은 있는가" "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데모크라시는 꼭 가장 좋은 체제인가" "역사에 방향이 있는가"등으로 추상론부터 사회철학, 역사철학의 중요한 문제까지 등장한다. 시험은 세 가지 논제 중에서 하나를 골라 네 시간 동안 논술하게 되어 있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중에서

불현듯 가슴이 뛰었다. 사유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나라, 노동자들이 카페에 앉아 정치를 논하는 나라, 끊임없이 연대하고 또 연대하는 나라, 그리고 똘레랑스의 나라. 나의 청춘을 이런 곳에서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사유하고 토론하며 학문을 닦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홍세화 선생님을 만나 직접 조언을 구해보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홍세화 선생님께 보낼 메일을 적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임하영이라고 합니다. 여태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실제로 고등학교 1학년이 아닌 고등학교 1학년 나이가 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중략)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가장 크게 깨닫는 것은 제가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공부해야 할 것은 끝도 없고, 여러 이상들을 접하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자면'내가 공부하는 것들이 과연 실현이나 될 수 있을까'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이제 차츰 진로를 결정해나가야 한다는 고민과 압박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혹시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선생님을 직접 뵙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길 원합니다. 불러만 주신다면 제가 어디든지 달려가도록 할게요! 선생님께서 제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셨으면 하는 정말 간절한 바람이에요.

너무 두서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적어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임하영 드림

그러자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글,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임하영 님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임하영 님은 훌륭한 부모님 아래 엄청난 행운을 누리셨고 또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임하영 님의 멘토가 되기에는 부족할 듯싶고, (실은 제가 멘토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좀 있어요. 제가 감히 누구의 멘토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요. 자신의 삶에 대한 최종 책임자, 최종 평가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에.) 멘토의 자격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또는 한국 사회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한 선배로서, 앞으로 한국 사회를 열심히 살아갈 후배와 만나는 자리라면 제게도 즐거운 만남의 자리가 될 것 같아요.그럼,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연대의 인사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홍세화 드림

답신을 읽어 내려가던 그 몇 초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동반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라고 하셨다. 홍세화 선생님이 직접 이런 메일을 보내주시다니! 정말이지 감격스러웠다.

홍세화 선생님을 만난 것은 가을이 막바지에 달하던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긴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나신 홍 선생님은 내내 담배를 태우며 잠자코 나의 고민을 들어주셨다. 가끔 동네 할아버지처럼 눈웃음을 지으시며. 그리고 중간 중간 말씀하셨다.

"조급해하지 말아야 돼. 초조함은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거야. 남은 중요하지 않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또 내일은 얼마나 발전할 것인지 나 자신을 비교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패하는 것이 중요해.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아주 멋지게 실패하는 거야. 더 멋들어지게 실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부딪쳐보아야겠지"

"프랑스 좋지! 그런데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야 할 거야. 글도 열심히 써야 하고. 내가 알기로 프랑스에서 학부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자본주의가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마지막에는 자연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그럼 지구는 파국에 이르고 말 테고. 그때에서야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환경을 돌아보기 시작하겠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반쯤 열린 창문으로 서늘한 공기가 밀려왔다. 홍 선생님은 앞으로도 종종 얼굴을 보자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는 사라져가는 '선배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섬주섬 웃옷을 챙겨 발걸음을 옮겼다.그날 밤 홍 선생님은 나의 가슴에 자그마한 불씨를 던져주셨다. 나자신을 끝없이 태워야 내리 타오를 수 있는, 그런 불씨. 불안과 좌절, 절망과 분노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지만, 이제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기로 했다. 그 불씨를 살려 이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변화의 불꽃이 더욱 활활 타오르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다음 날 아침, 나는 홍 선생님이 이사장으로 계신 학습협동조합 '가장자리'에 전화를 걸어 초급 프랑스어 수업을 신청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그리고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기 위한 첫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에 실린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