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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쩌다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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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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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1984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한 뒤 곧바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와중 구속되기도 몇 차례. 87년 1월의 어느 날, 그는 몇 명의 수사관에게 붙잡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다. 하루가 지나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고, 그 죽음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그의 이름은 박종철이다.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그는 1967년 영주에서 태어나 역시 1984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했다던 그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과 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그는 얼마 뒤 만 20세의 최연소로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던 그는 검사장 진급에 실패한 뒤 옷을 벗었으나, 곧 민정수석으로 부활해 막강한 권력을 움켜쥔다. 그의 이름은 우병우다.

대학 동기 우병우와 박종철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같은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그릇된 사회를 바로잡고야 말리라는 정의감과 사명감에 불타올랐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국내 최고의 대학에 진학했고,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름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 사람은 존경받는 민주화운동가로, 그리고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공분을 사는 범죄자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우병우는 어쩌다 그런 인물이 되었을까? 그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그 자신이요, 이등공신은 우리 사회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한 법조인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사회 환경에 의해 괴물이 되고 만 것이다. 박근혜­ 최순실은 차치하더라도, 최유정, 홍만표, 진경준, 김정주, 안종범, 정호성, 우병우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수재중의 수재, 제도권 교육이 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들이라는 것. 모두가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 했던, 그야말로 성공의 표상이 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막대한 재산,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남을 속이고 짓밟으며 호가호위한다. 그들이 인생을 향유하는 방식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여태까지 그런 인물들에 의해 운영되어 왔다. 온 국민이 한목소리로 "박근혜씨, 부끄러운 줄 아세요! 우병우씨, 반성하세요!", 한다고 반성할까? 뉘우칠까?" 아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이제껏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자신 없다. 만약 내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검찰에 들어가 부잣집 딸과 결혼할 수 있다면, 나름 정의의 검을 휘두르며 기업·정치인들을 줄줄이 기소할 수 있다면, 나의 지조와 신념은 돈과 권력 앞에 눈 녹듯 녹아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두렵다.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한경쟁에 내몰려 끝내 그 승자독식의 법칙을 내면화하고 마는 학생들이. 오늘도 집, 학교, 학원을 오가며 성공만을 위해 질주하고 있을 젊은이들이. 강용석을 존경하고 이희진에 열광했던 그대들이.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말이다.


#2

며칠 전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았다. 쳐진 어깨, 축 늘어진 가방, 교복, 그리고 슬리퍼. 인기척이 들리자 슬쩍 뒤를 돌아본다. 부스스한 머리에 초점이 풀린 눈. 발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다. 얼마 뒤 버스가 도착하자 터벅터벅 계단을 오르던 학생. 잠시 휘청거리다 픽 쓰러지듯 자리에 앉는다. 문이 닫히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드디어 운명의 11월 17일. 온 나라가 거대한 등급매기기 이벤트를 치르기 위해 난리법석이다. 관공서 출근이 한 시간 늦춰지며, 9시에 개장하던 주식시장도 10시에 문을 연다. 전철과 시내버스의 배차가 늘어나고,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들로부터 응원이 쏟아진다. 9시간에 걸친 정답 찾기가 끝나는 시각은 오후 5시 40분. 이제 끝이라는 안도감도 잠시, 곧바로 가채점이 시작된다. 그리고 판정이 내려진다. 1등급, 2등급, 3등급, 4등급... 9등급까지. 마치 소고기처럼.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방에서 목을 매고, 옥상에서 투신하고, 온몸에 휘발유를 뿌린 이들. 모두 만족할만한 등급을 얻지 못한 학생들이다. 이번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시험이라면 그 박탈감은 더욱 심했으리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에는 245명의 1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올해는 몇 명이나 될까. 안타까운 일들이 매년 반복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 줄여서 수능(修能). 학문을 닦을 수 있는 능력, 곧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여기서 '배울 수 있는 능력'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수학능력(修學能力)의 본질은 사유하는 힘, 또 그 사유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올해 프랑스의 대학입학시험인 바깔로레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출제되었다고 한다.

"노동을 덜 하는 게, 더 잘 사는 것인가? (Travailler moins, est-ce vivre mieux ?)"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아는가? (Savons-nous toujours ce que nous désirons ?)"
"욕망은 본래 무한한 것인가? (Le désir est-il par nature illimité ?)"
"우리의 도덕적 확신은 경험에 기초하는 것인가? (Nos convictions morales sont-elles fondées sur l'expérience ?)"

모두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묻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배움의 정의가 남다른 모양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수능을 통해 치밀하게 사유하는 학생이 아닌, 정해진 답을 더 잘 맞히는 학생을 뽑는다. 백번 양보해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니 그것도 아니다. 수능 영어를 외국인들에게 풀어보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역사를 주입식으로 외운다는 것도 기가 막히다. 제2외국어의 경우 이번 시험에서는 응시자의 69%가 아랍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찍어도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국의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수없이 문제집을 풀고, 암기에 암기를 거듭한다. 학교도 모자라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며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머릿속에 쑤셔 넣는다. 설령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마찬가지다. 사유하는 법을 익히고 학문을 닦기는커녕 4년 내내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학점관리와 취업준비에 치중해야 한다. 과연 이것을 진정한 배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암기와 반복된 연습으로 정답 찾기에 고도로 숙련된 학생을 뽑아, 이후 4년 동안 또 앵무새마냥 정답을 외우게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스스로에 대한 성찰 없이 본인의 욕망을 쫓아 질주하던 이들은, 비록 처음엔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이러한 비극은 언제까지고 되풀이될 것이다.


#3

이 시대의 학교는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부끄러움을 가르치는가, 아니면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가. 이제는 공부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성공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1등이 되는 법이 아닌 부끄러움을 아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으로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정도를 익혀야 한다. 철학, 그리고 인문학을 통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주입식 교육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공부할 권리도 마땅히 누려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고 획일화된 기준에 따른 줄 세우기가 계속된다면, 학벌 또는 물질의 축적이 여전히 성공의 기준으로 여겨진다면, 학생들을 암기하는 기계로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를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또 하나의 우병우와 김정주, 그리고 안종범이 탄생하는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정의롭고 공정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수능 끝 하야 시작"이라고 외친 고등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