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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된 억만장자 애드리언 쳉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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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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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언 쳉(Adrian Cheng)은 여러 의미로 흥미로운 사람이다. 먼저 그는 홍콩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인 고(故) 청유퉁(Cheng Yu-tung)의 손자로 뉴월드개발 그룹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홍콩 최대 부동산 유통 기업인 뉴월드개발을 이끌며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수많은 건물을 개발한다. 특히 그가 주축이 되어 만든 K11은 예술과 상업이 결합한 흥미로운 리테일 공간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보석상인 저우다푸(周大福)을 경영한다. 애드리언의 공식적인 자산만 해도 우리 돈으로 5조 원이 훌쩍 넘는다.

동시에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아트 콜렉터다. 수많은 미술 행사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통 크게 사들인다. 세계 예술계에서 그는 홍콩을 벗어나 유럽, 미국에까지 광활한 네트워킹을 구축하며 동시대 중국 예술가를 후원하고 새로운 전시, 행사를 기획한다. 미술계의 유력 인사를 선정하는 영국 '아트 리뷰 Art Review'지의 '파워 100인'에 몇 년째 계속 뽑히며 중추적으로 활동하는 그는 올해로 39세. 말 그대로 요즘 가장 각광받는 국제적인 젊은 리더다.

그런데 그가 얼마 전 디자인 전시를 열었다. 그것도 가구다. 오랜 세월 가구와 건축 분야에 헌신해 일본을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로 알려진 우치다 시게루(Uchida Shigeru)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디자이너로 데뷔한 것이다. 사실 그는 몇 년 전 직접 디자인한 주얼리를 크리스티 옥션에 올린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디자인 활동으로 보기에는 미미했다. 대외적인 크레딧에 디자이너라고 표기하는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협업이 끝나고 우치다 시게루가 갑자기 별세하는 바람에 그의 첫 가구 작업은 위대한 가구 디자이너의 마지막 작업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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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이며 호평 받았던 애드리언 쳉과 우치다 시게루의 전시가 서울에 왔다. 지난 9월 20일 시작해 오는 10월 22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Wander From Within_내면의 산책'전이다. 명상적인 분위기로 가득 찬 고요한 흰 색 공간에 넓직히 배치된 일련의 목가구들은 같은 듯 다른 면모를 보이며 존재감을 가진다. 삼면에 얽히고설킨 나무 사이로 은은한 빛이 들어오는 의자,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앉은 이의 숨결을 파고드는 의자, 그리고 모듈 가구처럼 형태를 변형할 수 있는 일본 특유의 격자무늬가 돋보이는 파티션과 벤치,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에 검은 옻칠을 더해 만든 평상과 조명까지 모든 작업은 일본의 자연 풍광에서 영감을 받았다. 일본에서 최고로 꼽히는 히노끼 공예의 명장인 토자와 추조(Tozawa Chuzo)가 참여해 나무의 선택과 그 짜임새의 경지도 높다.

'코라(Khora)'(참조1)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가구들은 애드리언 쳉과 우치다 시게루, 그리고 토자와 추조가 자연에서 영감받은 마음의 세계를 물질 세계에 투영한 것이다. 흥미로운 전시회를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오픈하며 방한한 (그는 한국에 집도 있고 주기적으로 한국에 온다) 애드리언 쳉을 만나 크리에이터로서 그의 면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조1
코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정의한 단어로 이데아의 세계, 감각의 현실계에도 속하지 않는 제 3의 존재로서 두 세계를 매개하는 중간자를 뜻한다. 코라 한 편에는 감각적 사물의 세계가 펼쳐지고 동시에 코라 저편에는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진중권 '서양미술사' 참고)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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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언 쳉 (Adrian Cheng, 1979~)
국제적인 명망을 갖춘 홍콩 출신의 사업가이자 아트 컬렉터. 이번 전시를 통해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더했다. 홍콩의 대표적인 부호로 뉴월드개발 그룹을 경영하는 쳉 가문의 3세대로 태어난 그는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교 교토 센터에서 일본학을 공부했다. 그는 예술과 상업의 만남을 지향하는 뮤지엄 리테일 컨셉의 K11을 설립하고, 2009년에는 중국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를 지원하며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K11 예술재단을 설립하여 중국 예술을 세계적인 무대에 올려놓는 데 힘쓰고 있다. 2012년 세계적인 경제지 '포춘 Fortune'의 '40세 이하 영향력 있는 기업인 40'에 선정됐으며 현재 뉴월드개발 그룹 부회장과 보석상 저우다푸(周大福)의 이사, K11과 K11예술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다. 또한 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과 영국 왕립예술협회 이사직을 겸하면서 최근에는 LVMH에서 런칭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인 Nowness의 의장이자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로 활동 중이다. 지속적인 홍콩 예술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사나바 미술대학(SCAD)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K11과 K11예술재단을 통해 그는 중국에서 문화와 예술 속에 살아가는 아티사날 리빙(artisanal living)을 지휘하고 있다.


코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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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1' (나무에서 영감을 받음), 2017, 아키타, 도호쿠 지역의 밤나무, 규슈 지역의 대나무
3개의 벽면으로 빛이 은은히 들어올 수 있는 차분하고 호젓한 공간. 닫힌 듯 열린 듯,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게 만들었고 사용자가 외부와 연결을 잃지 않으면서도 평온한 여유를 느끼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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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2' (산에서 영감을 받음), 2017, 아키타, 도호쿠 지역의 밤나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곡선의 의자. 깊은 산속에 있는 듯한 안식과 명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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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3' (물에서 영감을 받음), 2017, 벤치_아키타, 도호쿠 지역의 밤나무, 파티션_아키타, 도호쿠 지역의 밤나무, 규슈 지역의 대나무
변화무쌍한 하늘과 구름의 모습에서 영감 받아 주변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사용하는 벤치와 파티션. 파티션을 펼치면 부드러운 빛이 투과되고, 파티션을 거두면 광활한 풍경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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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4', 2017, 홋카이도 지역의 계수나무, 일본 옻칠공예, 와시 종이
'AU5', 2017, 홋카이도 지역의 계수나무, 일본 옻칠공예

어둠을 뚫고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코라 시리즈의 유일한 조명인 AU4는 주변 환경을 밝히며 고요함 중에 얻은 진리와 지혜, 인도를 암시한다. 이런 덕목은 성찰을 통해 습득이 가능한데 AU5는 이를 위한 여유를 제공하며 내면을 향한 상상력을 북돋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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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_교안', 1993, 목재, 대나무, 디자인 by 우치다 시게루

전통적인 다도(茶道)는 정원의 통로 또는 '로지'에서 손님이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으면서 시작된다. 본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도 방이나 집보다는, 단순히 경계가 있는 영역이었다. 15세기 다다미 방에서 발전한 다실은 전통적으로 약 2m X 2m 크기로 사각형 형태를 띤다. 우치다 시게루는 구조는 다르지만 안쪽을 대나무로 짓고 일본 화지를 사용한 다실 세 개를 디자인했다. 이 다실은 해체시켜 다른 곳에 다시 세울 수 있다. 애드리언 쳉과 우치다 시게루는 이 다실에서 마지막 디자인 회의를 가졌기에 이번 전시에서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 되었다.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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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다. 어제와 오늘은 어떻게 보냈나?
어제 한국에 막 도착했다. 오늘 아침에는 컨퍼런스 콜을 했다. 그리고 전시장에 오기 전 커피와 점심을 먹었다. 내 인생은 일과 자연스럽게 오는 즉흥적인 행위를 즐기는 것으로 채워진다. 나는 저절로 일어나는 즉흥성을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히 여긴다. 우리는 항상 아젠다를 세우고 스케줄에 맞춰 살지 않나.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계획 짜기의 영역을 벗어난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시간이 필요하다. 굉장히 본능적인 욕구를 위한 시간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커피와 점심을 즐기는 거지.(웃음) 그런 게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는 자연의 일부이자 리듬의 일부로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번 전시에 나온 가구인 코라도 마찬가지다. 나무와 물과 계곡 등 대자연의 유산에서 영감 받은 것들이다.

코라는 무슨 뜻인가?
코라는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공간으로 물질성을 초월한 존재를 뜻한다. 그 공간은 무척이나 실존주의적인 곳이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관련된 단어인데 신화도 자연이지만 현존적이면서 비현존적이지 않은가? 코라는 그 것을 만든 마음가짐이 전시 제목에 그대로 나와있다. 내면에서 우러 나오는 거닐음 말이다...

음, 원래 준비했던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 (웃음)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경영자이자 아트 컬렉터인 당신이 창작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 계기가 궁금하다.

창작은 내게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행위다.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 명의 크리에이터라고 믿고 있다. 삶의 리듬에 따라 인생의 각 단계마다 나는 여러 경험과 지혜를 가지며 자연스러운 즉흥성을 만나게 된다. 창조란 그런 자연적인 즉흥성에 대한 선언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는 주얼리를 만들어서 크리스티 옥션에 올린 적이 있다. 그것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거다. 그때는 보석이었고, 지금은 가구를 만드는 리듬이지만 5년 뒤에 무엇을 만들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당신의 창조 행위는 자연스러운 즉흥성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을 제외한 여가 시간에 크리에이터로서 흥미를 느끼는 것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일할 때도 창조를 한다. 업무 시간과 여가 시간을 나누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우리 회사가 새로 지을 건물부터 판매할 리빙 제품에 대한 생각들, 새로운 리테일 경험과 우리 고객들이 경험할 신선한 만족들, 내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K11까지.... 꼭 무언가 손에 잡히는 물품을 만드는 게 창조의 전부가 아니다. 당신도 크리에이터다. 경험을 창조하고 삶과 인생을 만든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을 뿐이지 모든 사람들이 창조를 한다. 과정과 정신 차원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사람들은 창조보다 무언가를 따르기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좀 더 파괴적으로 창조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창조 행위가 어떻게 가구로 이어 졌는지 궁금하다.
사실 여러 일이 겹쳐있다. 우치다 시게루에게 다실을 의뢰했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크리에이터로서 케미스트리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면서 예전에 교토에서 공부할 때 경험했던 '마음의 상태'가 다시 떠올랐고 이것을 가구로 한번 구현시켜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나를 위한 다실을 만들어주면서도 가구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가구 디자인 작업을 병행했다. 내게는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코라다.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 전시에서도 조용하고 차분한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주었다. 실제계에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은 존재를 투영한 가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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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당신의 첫 가구 작품이 우치다 시게루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당신에게는 일종의 스승과도 같을 텐데.
물론이다. 그는 진정 디자인의 대가였다. 디자인에 대해서라면 배울 게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젊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냥 크리에이터로서 접근했다. 두 명의 크리에이터가 만나 각자 생각하는 미학과 비전을 공유하고 이것을 결과물로 내어놓는 오묘한 관계였다. 우치다 시게루는 디자인을, 나는 창조적인 관점에서 완벽한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려고 했다.

실제 가구의 컨셉이 어떻게 구체화됐는지 궁금하다.
자연의 형상에서 영감 받은 아이디어를 응축시켰다. 크게 보면 물, 그늘, 빛, 계곡과 작은 만 등의 자연이다. 각 가구는 제법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의자에 앉으면 나무가 말을 걸고 그늘이 감싸고 물이 다가오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의 힘이 가구에 배어있는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크리에이터라고 칭한다. 이런 마음 가짐이 회사 경영과 아트 컬렉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먼저 아트 콜렉터로서 말하자면 예술가의 창조 행위가 어떻게 일어나고 발전하는 지 이해를 하기 때문에 단지 심리적이고 시각적으로 미적인 것을 모으는 것에 매몰되지 않는다. 나는 작가의 '창조적인 여정(creative journey)'을 모으는 사람이다. 사업가로서는 크리에이터를 찾아내는 눈이 있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다. 이런 미적인 감각 때문에 궁극적으로 돈도 더 잘 벌 수 있다. (웃음) 우리 기업 명함에 있는 기업 슬로건(We Create. We Are All Artisan)도 내가 만들었다. 시그너처 사인도 내가 직접 한 거고. 우리는 장인 정신을 존중한다. 이런 태도를 회사 안팎으로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을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꼭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은 창작물은 무엇인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특별히 생각해둔 디자인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 때가 되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즉흥적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웃음)

실제 만나본 그는 보통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도되곤 하는 재벌 3세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무척 소탈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인터뷰한 인사 중 뇌리에 강하게 남을 정도로 사고가 유연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한정된 시간과 주제 때문에 경영자와 아트 콜렉터, 전시 기획자로서 그의 면모에 대해 따로 질문하진 못했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 본질적인 사고의 흐름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향후 그의 움직임을 추적할 때 도움이 되는 작은 주춧돌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에서는 명확하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가 평소에 강조하던 장인 정신에 대한 신념이 단지 작업의 완성도나 효율적인 아웃 소싱의 개념이 아니라 '기다림'과 '인고'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는 경영자와 아트 콜렉터가 더 크게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조적인 과정'을 수집한다는 그의 발언은 예술가의 창작 흐름을 이해하고 예술가가 좀 더 성숙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려는 태도를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그의 컬렉션 방향과 전시 기획의 측면을 파악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될 것이다.

인물 사진: 장현우 스튜디오 www.janghyunw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