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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이 나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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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행복공장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7] 죄책감이 나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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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6개월 전, 나의 장래희망은 시민단체 상근활동가였다.
대학 졸업 3개월 전, 가고 싶던 시민단체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선배활동가들은 나에게, "변호사가 없어서 힘들다. 변호사가 되어서 여기 와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일절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시험에 스스로를 가둬놓아야, 빨리 합격해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수험생활은 한 해 한 해 길어졌고, 조금씩 조바심이 났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도,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미안해졌다. 어쨌거나 나는 더 편안한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 책망하기 시작했다.

수험생활이 더 길어지면서, 마음을 뒤흔드는 일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어떤 분들은 한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온종일 울다가, 이러면 공부를 할 수 없겠다 싶어 아예 모든 뉴스를 다 끊었다. 부채의식은 점점 더 커져갔다.

우여곡절 끝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 업무는 적성에 잘 맞았다. 새 사건을 보면 엔돌핀이 돌았고, 며칠씩 밤을 새워도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고용변호사로 살면서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되었는데, 정작 단체 활동에는 손도 못 내밀고 있었다. 분명 행복할 조건을 다 갖춘 것 같은데도 하루하루가 불행하기만 했다. 이래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2달간 하고 싶던 일만 하고 살아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고, 가고 싶던 강연이나 회의에 마음껏 참여했다. 꿈꾸듯 즐거웠다. 점점 욕심이 커졌다. 쭉 이렇게 살고 싶다, 더 내 맘대로 살고 싶다. 이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 그만 세상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도 되지 않을까......

'시민단체 상근을 할까? 집에서 그 사무실까지 어떻게 다녀야 하지? 아니, 60세가 되면 하려했던 재난지역 구호활동 지금 가면 안 될까? Why not? 지금 나를 붙잡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그러던 와중에 어느 로펌으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았다. 1달 전의 나였다면 몹시 기뻤을,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물음표가 남는.

그때 릴레이성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24시간 독방에서 홀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래, 여기에 가서 향후 진로를 고민해보고, 결론을 내리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로펌 측에 대답을 주어야 하는 날 이틀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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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상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나니, 직장 생각은 무슨, 오로지 남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행복공장에서 준 <휴휴, 내 안의 감옥에서 나오기> 워크북의 <80살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과제를 보자 '80살의 나와 남편은 어떤 관계일까'하는 생각만 들었고, 독방에 들어간 뒤 좁고 긴 창문으로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보아도, 남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실은 남편에게 진로 문제에 대해 일방적인 통지를 하고 난 뒤였다. 그것도 SNS로, 심지어 남편이 여행을 떠나는 날 비행기 출발시각 직전에. 몇 년을 떨어져 살아야할지 모르는 선택이나 함께 세웠던 재정계획을 뒤집어엎는 선택을 하고 싶다고, 충분히 상의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잠자코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한두 마디로 끄적여 내질러 버린 것이다.

최근 나는 남편에게 늘 화나 있었다. 고집도 많이 부렸고, 마음속으로 원망도 했다. 남편의 존재를 좀 가볍게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가정생활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선택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고통받아왔으니 남편은 받아들여줘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80살의 나>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그때도 내 곁에 남편이 있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였고, <내 삶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1년간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 내가 자연스레 그린 그림은 '남편과 내가 손잡고 전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를 행복하지 못하게 막는 내 안의 감옥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죄책감과 분노'였다(남편이 아니라).

사교든 업무든 간에 집이 아닌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 지금까지 못한 만큼 내 시간과 에너지를 공적인 일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의무감. 좀 더 헌신하고 좀 더 곤궁해야 이 오랜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살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만은 특히 인색하게 굴었던 것 같다.

독방에 앉아 <휴휴> 워크북을 글과 그림으로 가득 채워가면서, 방바닥에 눈물을 투둑투둑 뿌리며 오래 울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나의 마음속에 이런 것이 있던 것을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구나. 자연스레 내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진 글과 그림을,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 <판결문 쓰기-지난 삶에 대한 중간 평가>에서 검사로서 내 현실을 지적하고, 변호인으로서 지나온 삶의 고통과 내가 해온 노력을 이야기하고, 판사로서 나를 용서해준 그 과정은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가슴에 새겨졌다. 다 쓰고 나서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울고 마음에 다시 새겼다. 그렇게 <휴휴> 워크북을 다 채우고 나니 밤이 깊었다. 정작 직장 문제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못했지만, 더 이상 생각을 할 기운이 없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108배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가부좌를 틀고 깊은 호흡을 했다. 이제는 소나무를 보아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숨만 깊게 천천히 마시고 내쉬는 것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조용히 출소할 준비를 했다.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직장에 관한 고민도 끝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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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이란 무엇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런데 막상 와서는 죽도록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만 고민했다. 그러고 나니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런 것 같다. 성찰이란 기존에 없던 생각을 새롭게 해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 알고 있던 것, 그러나 내 안의 감옥에 사로잡혀 드러내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고, 다시 나의 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문제도 내 안에 있고, 해결책도 내 안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과 동료와 사회 모두와 단절된 채로 보냈던 독방에서의 하루. 오로지 나만을 들여다보고, 나는 나를 용서하였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서 보낸 지난 열흘간 나는 이전보다 훨씬 많이 웃었고, 더 가벼워졌고(몸과 마음 모두가!), 나와 세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짐을 느낀다.

이제 나는 서슴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행복해지길.

글 | 현지현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