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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Headshot

아이디어 사칙연산 32 | 안과 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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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여럿이 고깃집에 갔다. 깻잎에다가 고기를 한 점 올려놓으려는데 옆자리 분이 말했다. 깻잎을 뒤집어서 싸 먹어 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깻잎의 앞면, 즉 비교적 맨질한 면에다 고기를 놓고 쌈을 싸 먹는다. 그런데 이분의 지론은, 그렇게 하면 깻잎의 뒷면, 즉 털이 부슬부슬한 면이 쌈의 겉면이 되어 입안에 닿게 되므로 식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깻잎을 뒤집어서 싸 먹으면 맨질한 면이 겉면이 되어 한결 거슬리지 않게 된다. 그분 말씀을 따랐더니 과연 그러했다. 그후에 고기를 먹을 땐 다시 습관적으로 앞면에다 고기를 놓게 되었지만, 그 의견은 내게 인상적이었다. 그래. 깻잎의 앞면이 안쪽으로 가게 고기를 싸 먹으라고 누가 정해둔 것은 아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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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김을 놓고 그 위에다 밥을 펴서 올린 뒤 이런저런 재료를 넣고 돌돌 만 음식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겉면은 까만 김 색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것의 안팎을 뒤집어서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 위에 밥을 펴서 올린 뒤 그것을 뒤집어서 재료를 넣고 돌돌 만 것이다. 그러면 김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고 흰 밥이 바깥 면으로 나온다. 안팎만 바꿨을 뿐인데 검정색이 흰색으로 바뀌니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른바 누드 김밥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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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네이버음식백과


속옷을 뒤집어 입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렇게 하면 태그와 솔기가 바깥쪽을 향하게 되므로 몸에 닿는 쪽에는 거슬릴 게 없게 된다. (살이 여린 아기들의 옷은 혹시나 태그에 쓸리지 않도록 태그가 처음부터 바깥쪽에 붙어 있다.) 나는 깻잎의 식감에도 속옷의 솔기에도 그다지 민감한 편이 아니지만, 그게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뭐 어떤가, 속옷은 누가 보는 옷도 아니고 단지 나만을 위한 옷인데.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아니 누가 보기 때문에 옷을 뒤집어 입는 경우도 있다. 어떤 패셔니스타들은 일부러 티셔츠나 재킷을 뒤집어서 솔기나 안감이 밖으로 나오도록 연출하곤 한다. 보이는 겉면은 엄숙하지만 숨겨진 안감은 화려해서 살짝 옷깃이 벌어졌을 때 예상치 못한 섹시함이 느껴지게 하는 옷도 있고, 아예 안쪽 면과 바깥쪽 면을 모두 겉면으로 만들어 뒤집어 입을 수 있게 한 '리버서블' 옷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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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은 보통 권세를 과시하는 화려한 건축물이다. 그런데 내가 평생 본 것 중에 가장 화려한 궁전은 수수한 외양을 하고 있다. 바로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이다. 겉에서 본 알함브라는 그저 밋밋하고 푸석한 직선의 건축물일 뿐이다. 그런데 그 무뚝뚝한 벽체 안쪽으로 들어서면 별세계가 펼쳐진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정교한 타일들, 우아한 아치와 기둥, 금으로 치장한 천장, 무결하게 아름다운 정원과 곳곳에 놓인 섬세한 분수... 안쪽에 지상의 천국을 들여놓은 알함브라는 바깥쪽을 향한 치장에 무심하다. 마치 그것은 겉감은 건조하고 안감만 화려한 옷 같다. 그 표리부동함이 알함브라를 더욱 관능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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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부부는 아내가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고, 남편은 공부를 하면서 집안일을 돌본다. 그래서 아내를 바깥사람이라 부르고 남편을 안사람이라 부른다. 하하, 이거 재미있다. 안사람 바깥사람이라는 말은 옛날에 남자가 밖에서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는 등의 일을 하고 아내는 안에서 밥을 짓고 아이들을 키우던 때의 전통적 성역할에서부터 비롯한 말이다. 그것이 점점 부부의 성별을 칭하는 말처럼 변해 왔다. 하지만 전통적 성역할에 따라 살지 않는 요즘 사람들에게 안사람과 바깥사람의 구분은 뒤바뀔 수 있다. 안과 밖을 성별로 못박아 두는 기존의 관념에서 풀려나면 생각은 훨씬 유동적이 된다.


자. 나는 지금까지 안팎의 개념을 뒤집은 여러 예들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바꾸어보고자 했다. 안과 밖의 구분은 당연하며 또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 안팎에 대한 고정관념을 살짝 뒤집어 보면 조금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이게 꼭 겉이어야 할까? 이게 꼭 안이어야 할까? 이걸 뒤집어 보면 어떻게 될까? 깻잎 한 장 뒤집듯이 가볍게, 생각을 뒤집어 의문을 품어 보자.


* SBI 저축은행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