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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뛰어놀 공간 위해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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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심해 야외놀이도 힘들 때 종종 찾는 유료 키즈카페. 몸놀이가 중요한 시기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찾게 된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생후 32개월 정두리.

엄마 머리 꼭대기에 올라 내려올 생각을 않네요. 늘 지치고 기운 없는 게 요즘 들어 부쩍 말을 안 듣는 두리 때문인 줄 알았더니, 병원에서는 '소진증후군'이라고 하더군요.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심하고 말은 횡설수설하고, 그래서 마치 저 자신이 반쪽짜리 인간이 된 기분입니다. 신생아 시절의 육아가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는데 왜 지금 와서 소진증후군일까요?

아마도 임신 기간까지 포함한 지난 40개월 동안 서서히 방전된 게 아닌지 추측해볼 뿐입니다. 몸만 힘든 게 아니라 우울감을 동반한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인데요. 그래서인지 요새 저는 두리에게 쉽게 화를 냅니다. 마흔한살짜리 여자애와 세살짜리 여자애가 싸우는 꼴이죠. 엄마의 감정이 탄탄하지 않으니 아이를 타이르는 게 아니라, 엄마 감정을 배설하기에 급급합니다. 두리에게 화내고 후회하고 화내고 후회하고, 그런 반복 속에서 우울감은 점점 불어나죠.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애 낳고 깜박깜박한다는 엄마들 모두 소진증후군을 겪는 게 아닐까요? 밤 열시쯤 아이가 잠들면 드디어 '육퇴'(육아 퇴근)했다고 기뻐하면서, 한숨 돌릴 새 없이 바로 싱크대로 출근하는 게 대한민국 엄마들 처지니까요.

밥보다 놀이!

소진증후군 진단을 받은 뒤로 두리를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엄마 마음이 건강해야 두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일도 육아도 엉망이 될 만큼 지쳐 있기 때문이죠.

이전 글들에서 간간이 밝혔듯이 두리 엄마아빠는 여러 가지 이유로 두리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작성한 '2015년 보육실태조사'를 보면, 보육기관 최초 이용 월령은 평균 24.1개월이고, 영유아의 77.4%가 만 3살 이전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다는군요. 두리가 엄마아빠 곁에 오래 있긴 한 거죠. 두리가 어린이집에 가면 아무래도 그 시간에 집안일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처럼 주3일이 아닌 주5일 근무를 할 수도 있으니까 숨통이 좀 트이겠죠? 다들 가는 어린이집에 왜 두리만 못 보내겠다는 건지, 유난스러운 엄마아빠를 만나서 두리가 더 피곤한 건 아닌지, 그놈의 소진증후군도 다 내가 자초한 일이 아닌지, 한숨만 나는 요즘입니다.

두리 엄마아빠가 어린이집을 망설인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급식이었습니다. 지난 6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2020년까지 서울 소재 어린이집·지역아동센터·복지시설 7338곳에서 친환경 급식(친환경 재료 70% 이상)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그 가운데 어린이집이 6368곳(2016년 기준 23만6550명)으로 가장 비중이 높고, 소요 재정은 3년간 3329억원으로 한 끼당 500원의 보조금을 서울시가 부담할 계획입니다. '두리가 4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말도 안 되는 아쉬움도 남네요.

여하튼 2011년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초·중등학교 친환경 무상급식이 시작되고 어린이집까지 시행되는 데 무려 10년이 걸렸네요.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정말 중요한 변화는 맞습니다. 이것은 박원순 시장 개인의 업적이 아닙니다. 2008년께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 제정 운동이 시작됐고, 지금은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라는 이름으로 전국화되었죠. 이런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박원순 시장이 '친환경 무상급식'이라는 공약을 스스로 발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올해 친환경 급식을 업그레이드한 친환경 논지엠오(Non-GMO) 급식을 선언한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정치인'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사실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죠.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단 하나의 필요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시민·당사자의 자발적인 운동뿐입니다. 즉 엄마아빠와 아이들이 나서야 하고, 시민운동의 연장선에 정치가 있고, 당사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그걸 경청하는 좋은 정치인이 필요한 거죠.

두리 엄마아빠는 밥에 집착하지만, 두리 입장에서 보면 두리의 행복감과 직결된 것은 밥보다도 놀이입니다. 배곯는 상황을 제외하면 모든 아이들이 마찬가지죠. 지난 3년간 두리의 삶만 봐도 먹고 싸고 자는 것 외에 노는 게 전부입니다. 그게 아이들의 인생이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 아이들은 잘 놀지 못해서 행복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역시 꼴찌입니다. 아동의 52.8%가 정기적인 여가활동(취미나 운동 등)을 하지 않으며(2013 아동종합실태조사), 15~24살 학생들의 학습시간도 1일 7시간50분으로 세계 최장을 기록하고 있죠. 급기야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경쟁과 사교육이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의 '놀 권리'를 침해한다며 한국 정부에 시정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만하면 우리 아이들의 불행은 객관적으로 입증됐다고 볼 수 있겠죠? 물론 어른들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2015년 5월4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이 모여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했는데 △어린이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차별 없이 놀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놀 터와 놀 시간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는 다양한 놀이를 경험해야 한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놀이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등 5가지 항목으로 이뤄져 있죠.

그리고 같은 해 11월20일에는 정부가 주도하는 '아동 놀이 헌장 제정 및 놀이 정책 수립을 위한 추진단'(이하 정부놀이추진단)이 구성돼 첫 회의를 열었는데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생애 첫 놀이'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지려면 보건복지부가 참여하는 정부놀이추진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첫 회의 이후 개점휴업 상태라고 하니 새 정부의 의지를 기대해보죠.

어린이집 영유아 47% 못 놀아

아이들 노는 데 '정부놀이추진단'까지 필요하다니 썩 와닿지 않으시나요? 아이들 놀 권리가 정치의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한국 아이들이 오이시디 국가 중 가장 불행하다는 사실에 가슴 치지 않으시나요?

요즘 시소-그네-미끄럼틀로 이뤄진 '판박이 놀이터'를 탈피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한 새로운 놀이터를 만드는 움직임이 지자체-지방의회 중심으로 활발합니다. 덩달아 온라인 매체에서는 외국의 다양하고 앞선 형태의 놀이터들이 폭발적으로 소개되고 있죠.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정치'가 빠져서는 모든 아이들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놀이터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인데, 달이 아닌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죠. 눈에 보이는 문제(놀이터)를 해결하려는 것은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삶은 낡은 놀이터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먼저 복지부에 한마디. (문제의 '0살 사교육'은 논외로 하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1~4살 아이들 대부분은 놀 시간이 없어서 못 노는 건 아닙니다. 이들에겐 제대로 놀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게 문제죠.

영유아보육법 제15조의2 제1항 제1호에 따라 보육 정원 50명 미만인 어린이집은 옥외·옥내놀이터를 설치할 필요가 없고, 인근 놀이터 이용계획서를 제출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 보건복지부 '2016 보육통계'에 따르면 전국 4만1084개 어린이집 가운에 3만605곳이 정원 50명 미만이고, 이 중 2만1010곳은 정원 20명 이하의 가정어린이집인데요. 즉 2016년 현재 어린이집에 다니는 총 145만명의 영유아 가운데 최대 69만여명(0살반 14만명 제외)이 놀이터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죠. 물론 정원 50명 미만 소규모 어린이집도 '제3차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에 의거해 정기적인 야외 신체활동과 자연탐구 활동을 하도록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마땅한 놀이터가 없을 경우,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공터나 유휴지를 산책하는 것으로 야외 활동을 갈음하거나 심지어 야외 활동을 하지 않고도 복지부와 지자체 평가 인증을 위해 일지를 조작하는 경우까지 발생하죠.

반면 정원 50명 이상 어린이집이 자체 놀이터 대신 인근 놀이터를 이용하는 조건은 꽤나 까다롭습니다. △어린이집부터 보행 거리 100m 이내에 위치 △왕복 2차선(편도 1차선) 이내의 도로를 횡단보도를 건너 이용 가능하여야 함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라 설치·관리되는 놀이터로서 6살 미만의 영유아가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 3종 이상 설치 △초등학교의 경우 놀이기구가 영유아 연령에 맞지 않고 수업시간대 시설물 사용이 어려우므로 인가 불가 등인데요.

중소 규모 어린이집에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유효한 야외 활동은 거의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가정어린이집이 자체 놀이터를 갖출 수 없기 때문에 영유아보육법에서 설치기준을 면제해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러나 복지부는 표준교육과정 고시를 통해서 야외 활동을 제시한 만큼 중소 규모 어린이집에 대한 대안을 마련했어야 합니다. 놀이터가 없는 동네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당사국인 우리 정부의 책임이고 의무죠. 그걸 어린이집 설립자의 책임으로 돌리고, 작은 어린이집에는 그 책임을 면제해주는 방식이 결국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맘껏 뛰놀 곳이 없어서, 매일같이 집 안에서 놀아야 하는 영유아 수십만명에 대해 우리 어른들은, 특히 복지부 직원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영국 정부는 노동당이 집권하던 2007년에 아동학교가족부(Department for Children, Schools and Families, 현재 교육부) 주도로 '아동계획'(The Children's Plan)을 발표하고 '놀이 정책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모든 주거지에 안전하고 접근이 용이하고 흥미로운 놀이터와 공원을 설치(정비)하기로 하고,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모든 아이들의 놀이를 지원하기로 했죠. 실제로 영국은 2008년부터 3년간 2억3500만파운드(약 3612억원)를 들여 전국에 총 3500개의 놀이터를 신(개)축하고, 4천여명의 놀이 종사자(play workers)를 양성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휴지가 부족한 대도시·도심 지역은 특히 공공건물을 이용한 옥내놀이터(실내·옥상) 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어떨까요? 시청, 구청, 군청, 주민센터, 보건소, 복지관 등 옥상마다 놀이터가 생기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으면 좋겠네요. 주중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이용하고, 주말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면 아이들의 놀이 공간(키즈카페)을 돈 주고 사야 하는 불쾌함도 해소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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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계신 제주에 가면 반드시 찾는 휴양림. 아이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는 자연이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놀 권리 옹호하는 정치 시급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놀 장소가 아니라 놀 시간이 없어져 버립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지적한 대로 공부 시간이 감히 놀 시간을 침해해선 안 되는데 말이죠. 멋진 놀이터가 많아진다 한들, 주말에만 갈 수 있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놀이가 일상이 아닌 이벤트에 머물러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아이들의 놀 시간을 되찾아주는 운동에도 힘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부 지자체와 교육청들은 아이들의 놀 권리 보장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서울 상상나라, 순천 기적의 놀이터, 전북 놀이밥, 전남 놀 권리 조례, 세종 놀이이모 등 의미 있는 시도가 많은데요. 이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전북의 '놀이밥 60+' 프로젝트입니다. 2~3교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늘려서 '매일' 하루 60분 이상 놀이 시간을 확보하는 전북도교육청의 시범사업이죠. 선생님들이 공부 시간을 줄여서 놀 시간을 만들어 주는 상황 자체가 유쾌하지 않나요?

아이들의 놀 권리는 사실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한국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면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이름의 경쟁에서 해방시켜야 하죠. 우리 아이들이 어우러져 함께 놀고, 지금보다 친구가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서서히 인간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제안합니다. 까마득하지만 시작이 반이니까요.

*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