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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밥, '무상'이라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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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의 엄마정치] ⑩ 친환경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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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5일 쌀밥보다 반찬을 더 좋아하는 두리에게 문화센터에서 배운 소스 조리법을 응용하여 볶음밥을 해줬다. 자극적인 굴소스 맛 때문인지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 아빠도 두리도 배부르게 먹은 날이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무상, 말 그대로 공짜라는 뜻이죠. 무상급식은 공짜급식이라는 뜻이고요. 내던 급식비를 안 내기 시작하면서 무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재를 털어 급식비를 대납해주는 것도 아니고, 해외 원조를 받아서 아이들 급식이 제공되는 게 아닌데, 무상급식이라는 표현은 가당치 않죠. 당장 폐기하고 싶은 말입니다. 만약 (120개월 이상 보험료 납부자에 한해 만 60세 이후 지급되는 국민연금과 달리) 만 65세 이상 어르신(소득 하위 70%)들께 일괄 지급되고 있는 기초연금을 무상연금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무상은 곧 포퓰리즘이라고 목소리 높이는 세력들이 과연 뭐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내라는 대로 꼬박꼬박 세금 낸 우리들에게 무상은 없습니다. 무상이라는 말로 쓸데없이 감사한 마음 들게 하지 말고 친환경 공공급식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의무교육·공교육이라는 표현은 써도 무상교육이란 말은 잘 안 쓰잖아요.

내 세금은 어쩌고 공짜라니

사실 문제의 근원은 헌법 제31조 3항입니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해당 법조문 때문에 무상이란 표현을 무조건 쓰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거든요. 최초의 무상급식 논쟁 때 '급식은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역시 무상으로 제공함이 옳다'는 주장이 꽤 힘을 얻었죠. 문제가 헌법이라면 답은 개헌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국민참여 개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저도 개헌 논의에 참여해야겠네요. '무상'이 과연 적확한 표현인지 토론을 제안하고 대안으로 '의무교육은 국가 재정으로 실시한다'는 개정안을 주장해봐야죠. 물론 개헌이 되든 안 되든 무상급식·무상보육의 '무상'을 대체할 만한 표현을 같이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친환경 무상급식. 사실 오늘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무상'이 아니라 '친환경'입니다. 공짜(무상)가 아니라 내 돈(세금) 내고 내 아이 먹이는 건데 주는 대로 아무거나 받아먹게 할 순 없죠. 대한민국 아이들은 무얼 먹고 사는가? 그게 두리 엄마의 고민거리, 골칫거리입니다.

우리 부부는 지난 28개월간 두리에게 '친환경 무상식사'를 제공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두리가 다닐 어린이집을 알아보다 먹을거리 문제에 부딪혔죠. 초등학교에서는 친환경 급식을 주지만 두리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남은 4년간은 어린이집에서 주는 '그냥 급식'을 먹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공백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요? 제한된 예산이 문제라면 중학교 대신에 유해인자에 취약한 영유아기 아이들 먼저 친환경 급식을 먹이는 게 당연한 일 같은데요. 현실은 교육기본법상 의무교육인 초·중등학교 먼저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유치원·어린이집은 오히려 기약 없는 후순위가 돼 있습니다. 또 유치원·어린이집의 경우는 사립 시설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급식은 물론 운영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이 안 되는 실정입니다. 어린이집은 규모가 대체로 작기 때문에 학교 급식소처럼 관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죠.

눈치채셨겠지만, 두리 엄마아빠는 두리의 식생활을 매우 중시합니다. 즉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부모죠. 친환경 인증(유기농·무농약) 농산물, 무항생제 축산물, 유기농 유제품을 먹이고 주스 대신 오미자청이나 매실청을 물에 타줍니다. 화학첨가물이나 가공식품 섭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리고 감기 기운이 있다 싶으면 대추·생강을 푹 끓인 물이나 배·도라지청, 무말랭이차를 마시게 하는 대신 감기약은 조금만 먹이려고 애를 씁니다. 두리에게 당장 아토피나 비염 증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토피와 같은 비감염성 질환 유병률이 점점 높아지는 환경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하니까 예방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는 거죠.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어차피 학교 가면 친구들이랑 과자, 패스트푸드 사 먹기 때문에 헛고생이라는 말과 친환경 식단은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인데요. 태아·영유아 시절의 아기 신체가 환경유해인자에 더 취약하므로 그 시절에 안 좋은 음식을 가려 먹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영유아기에 식단 관리를 안 하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친환경 급식을 먹이는 현실이 저로선 너무 답답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왜 이 대답을 여기에 쓰고 있냐면요. 사실 두리 먹는 것 가지고 까다롭게 굴 때마다 매우 눈치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부쩍 소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너무 일찍 알파벳이나 숫자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되게 못마땅한데요. 그렇다고 그런 말을 내뱉진 못하잖아요. 근데 제가 두리 음식을 가리는 걸 보면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안 그래도 돼, 괜찮아, 쓸데없는 일이야'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두리에게 지식을 전해주는 것보다 두리의 세포를 무엇으로 채워줄지, 그리고 두리의 근육에 어떤 기억을 심어줄지가 훨씬 더 중요한데요. 그러나 뇌세포보다 체세포를 중시하는 육아 방침은 문화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지지받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급식비도 따로 안 받는데 진짜 친환경은 맞을까요? 친환경 급식의 기준은 지자체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 제도를 최초로 시행하고 또 내실 있게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의 친환경 급식을 기준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친환경 급식은 식재료의 70% 이상을 친환경 인증 농수축산물로 채우고 채소 위주의 식단,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저염분 건강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엄마 노동시간부터 보장돼야

2017년 기준으로 서울 관내 초·중학교 940개교(공립초 558개교, 국·공·사립중 381개교, 지구촌학교 1개교)에 다니는 학생 63만2천명(초등 40만9천명, 중등 22만3천명) 전원이 매일 무농약·유기농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있죠. 제가 정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집이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부모가 바쁘거나, 식생활에 관심이 없거나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하루 한 끼는 건강한 밥을 먹일 수 있는 정치가 너무 좋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지자체장 의지에 따라 급식 정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 말고 전국 어디에 살든지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이가 똑같이 좋은 밥을 먹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지금처럼 친환경 급식 조례에 따라서가 아니라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에 따라 친환경 급식이 이뤄져야 하는데요. 더 많은 엄마아빠들이 친환경 급식에 관심을 갖고 예산 확대와 법 개정에 목소리를 높인다면 무상급식을 반대해온 보수정당들도 뜻을 굽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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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은 보통 한 번에 5~8끼니 먹을 만큼 만든다. 완성된 이유식과 육수, 채소 등 재료는 냉동보관을 한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먹는 건 두리 마음대로다. 남는 건 아빠가 먹는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제가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첫째, 저 자신이 아동·청소년기에 늘 비만이었기에 다시 비만이 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고, 두리는 저처럼 소아비만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둘째는 제 고향인 제주도가 청소년 아토피 전국 1위 도시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죠. 서울과 같은 대도시보다 환경적 여건이 훨씬 좋은 제주에서 아토피가 가장 많이 발병한다니, 원인이 궁금했습니다. 예전에는 아토피, 비염, 천식, 비만, 고혈압, 당뇨, 심혈관계 질환, 암, 우울증, 공황장애, 치매와 같은 비감염성 질환이 증가하는 이유는 단지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오염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경이 오염되면 수질, 토양, 대기뿐 아니라 사람의 몸이 오염되죠. 당연히 질병에 취약해지고요. 그런데 오염 과정에서 외부 요인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먹을거리와 같은 내부 요인도 영향이 크다는 사실에 뒤늦게 주목한 것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맞벌이가구 비율이 44.9%인 데 반해 제주도는 60.3%로 전국 1위입니다. 맞벌이 가정은 외식 횟수와 가공식품 섭취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엄마가 일을 그만둬야 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칼퇴근하고 엄마아빠에게 저녁시간을 돌려준다면 아이들의 식생활이 바로 나아질 겁니다. 칼퇴근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말입니다. 사실 서울·수도권은 오후 6시 칼퇴근을 한다 해도 집에 오면 7~8시, 장 보고 밥 차려 먹으려면 9시를 훌쩍 넘기게 됩니다. 그러니까 외식이나 가공식품을 이용할 수밖에요. 가족 공동체가 복원되고 사람답게 살려면 이번 정부 내에 주 40시간, 칼퇴근을 실현하는 동시에 주 35시간으로 가는 청사진도 그려야 합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런 점에서 엄마 정치의 핵심 요구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은 어린이집·유치원의 친환경 급식 실시가 시급합니다. 보통은 정부에 과감한 재정 투입을 촉구하는데, 이 문제는 상황이 좀 다르네요. 지난번 글에서 아동수당 10만원을 주기 전에 국공립 시설부터 확충해달라고 주장했는데요.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올해 2월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은 '유치원·어린이집 실태점검 결과 및 개선방안'을 발표했습니다. 2016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대형·다수 시설 운영 기관 95개소(유치원 55곳, 어린이집 40곳)를 종합점검 한 결과인데요. 유치원은 55곳 중 54곳에서 위반사항 398건, 부당 사용금액 182억원이 적발되었고, 어린이집은 점검 대상 40곳 중 37곳에서 위반사항 211건, 부당 사용금액 23억원이 적발됐습니다. 위반 사례를 보면 참 가관인데요. 유치원 설립자가 개인 외제차량 3대를 유치원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차량 보험료 1400만원을 유치원 회계에서 지출했다거나, 유치원 원장 아들의 대학등록금 및 연기 아카데미 수업료 3900만원 지출, 어린이집 대표가 자기 부인을 취사부로 채용하여 인건비 5400만원을 지급한 사례 등 엄마아빠들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죠.

회계비리와 친환경 급식의 관계

유치원·어린이집 회계비리와 친환경 급식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친환경 급식뿐 아니라 일선 보육교사들의 처우 개선이라든가, 교사 1인당 담당 아동수를 줄이는 등 유아교육·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돈이 어떻게 잘못 쓰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무조건 예산을 늘려 달라고 주장하기가 애매한 겁니다. 정부가 제안한 개선 방안대로 사립유치원의 회계관리·인사관리를 국공립처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좋고요. 민간 시설을 국가가 매입해서 국공립 전환하는 방안도 엄마들은 환영합니다. 국공립 비율을 50% 이상(문재인 대통령 공약 40%)으로 확충해야 나머지 절반의 민간 시설도 공공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더군요. 프랑스의 유아학교는 100% 공립이고 일본의 경우 국공립 보육소가 48.6%, 민간은 51.4% 비율이지만 민간 시설 가운데 90%는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과는 차이가 큽니다. 애초에 유아교육?보육을 시장에 맡긴 것이 실패한 정부 정책인 거죠. 현 정부가 국공립 40%를 공약했지만 바로잡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습니다.

지난 25일 언론에도 보도됐다시피 서울시교육청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유아교육발전 5개년 기본계획 4차 세미나'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 소속 원장들의 무력행사로 무산됐는데요. 한유총이 유명세를 탄 것은 지난 4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한유총이 개최한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 대회'에 참석해서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발언을 했다가 지지율에 타격을 입은 이른바 '단설 사태' 때문이었죠. 한유총과 같이 조직적으로 국공립 확대와 사립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저지하는 세력이 있으니, 그 맞은편에 바로 엄마 정치가 존재해야 하는 겁니다. 저처럼 밥이 가장 중요한 엄마도, 돌봄이 중요한 엄마도, 배움이 중요한 엄마도, 놀이가 중요한 엄마도, 공공성 강화에 동의한다면 모두가 뜻을 모을 때입니다. 엄마의 정치세력화 없이는 국공립 40% 공약은 달성되지 않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공공성 강화부터 하다가는 어느 세월에 어린이집에서 친환경 급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 지난 6월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민 먹거리 기본권'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서울 관내 모든 어린이집(2016년 기준 6363개소, 23만4천명)에서 친환경 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광명시는 2016년 11월 전국 최초로 '논 지엠오(Non-GMO) 친환경 무상급식'을 초·중·고등학교까지 전면 실시한 바 있고요. 이런 바람직한 흐름에 엄마 정치가 가세하면 전국 어디서나 영유아 친환경 급식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정치를 고민하는 순간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