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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제주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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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타지에 사는 내게 고향은 여전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놀러 갈 때면 부모님께 전화한다.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숙소는 어디에 잡았는지 말씀드린다. 제주에 도착해서는 집에 잠깐 들르거나 공항에서 인사를 나눈다. 몇 년 전에도 그랬다. 동반자와 커플로 쉬러 간다고 알렸다. 며칠 뒤 집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에 오면 안 되겠느냐고 하셨다. 집에 가지 않고 돌아다니다 가겠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커밍아웃을 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꽃 본 듯하여라"

많은 곳에 성소수자라고 밝혔다 하더라도,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이 당연히 더 많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평생 계속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커밍아웃했다 하더라도, 그 한순간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관계를,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것은 커밍아웃이다. 한 사람에게 정체성을 알리는 일을 반복하기도 한다. 커밍아웃한 이후에도 만나는 이성이 없느냐, 장가 안 가느냐는 질문을 받는 때가 있다. 잊어버리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커밍아웃은 자주, 긴장되는 순간이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릴 때,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측하기는 어렵다. 기분 나빠하거나 자리를 바로 떠나버리지는 않을지, 관계를 단절해버리지 않을지 걱정하곤 했다. 다행히 이제까지 크게 불편하거나 인연을 끊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굳이 직접 커밍아웃하지 않았고, 포용적일 것 같은 사람들부터 서서히 넓혀가며 알렸다.

사람들의 수용은 내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여럿의 노력으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었고, 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며, 어쩌면 운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정체성을 알린 뒤 더 큰 고립과 차별과 편견에 노출되는 사람도 많다. 성소수자가 보일 때, 혐오와 폭력 역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생각해보면 가장 오래 알았던 사람들에게 제일 늦게 말했다. 그동안 알리지 않은 게 오래된 거짓말처럼 느껴져서인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야 10대 시절부터 만난 친구들에게 알렸다. 친구들은, 돌이켜보니 오래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먼저 다가가주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가족에게 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직접 말하지도 못했다. 힘든 시간이 흘렀다. 그때 게이인 한 선배가 말했다. 그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했을 때 집을 잠시 떠나야 했고, 치료가 필요하다며 정신과와 한의원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힘들지? 꽃 본 듯하여라." 꽃을 본 듯이 하라니. 그런데 묘하게 위안이 됐다.

처음 동반자와 같이 제주에 갔을 때는 부모님과 공항에서 짧은 인사를 나눴다. 그다음에는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또 그다음에는 고향집을 구경하고 집에서 식사를 했다. 부모님과 동반자 사이의 이 각본 없는 관계는 여전히 어색하다. 그렇지만 이제 같이 밥 먹을 수 있고, 고향에서 올라오는 반찬도 꼭 2인분씩 포장돼 있고, 동반자가 몸이 안 좋을 때는 부모님이 걱정의 말을 전해주기도 한다.

낙인을 묽게 만드는 것

편견과 낙인 속에서,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성소수자와 그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지고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피와 살을 가진 성소수자들의 희로애락과 그 서사는 편견과 낙인을 묽게 만든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갈 것이다. 꽃도 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제주도에 간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