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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현수막 펼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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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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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가족분들을 모시고 강연한 적이 있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전하며 가족의 수용이 성소수자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자녀의 정체성이 불편하더라도 지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였다. 강연을 듣던 한 어머니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마무리할 즈음 그 어머니께 소감을 여쭤보았다.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모질게 대했던 기억이 났다고 했다. 다른 어머니가 말했다. 자녀의 정체성을 알고 나서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방문하던 날, 그 사무실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여기에 들어가면 그냥 다 인정해버리는 것 같았다고,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올라갔다고, 그런데 들어가 사람들을 보니 정말 다 우리 아이 같았다고.

폭력은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가족이 성소수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연을 종종 듣게 된다. 정체성을 알게 된 이후 감금하거나 내쫓기도 하고, 정신병동에 강제로 입원시키기도 하며, 독립한 자녀의 집에 쳐들어가 헤집어놓기도 하고, 자녀의 연인에게 협박하기도 하며, '치료'가 필요하다며 상담기관이나 종교기관에 강제로 보내기도 한다. 학대와 폭력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가혹해진다.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더럽다, 부도덕하다, 죄악이다, 비정상이다, 척결하자 외치는 속에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낙인과 혐오를 공유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 낙인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폭력을 함께 행하는 쪽으로 돌아선다.

그러나 폭력은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회귀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모진 말들, 폭력과 인권침해는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자기 일처럼 다가온다. 성소수자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차별을 받기도 한다. 이런 차별을 연계차별이라고도 한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을 당하는 자는 그 핍박이 얼마나 부당한지 점차 알아간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혐오를 넘어 거리에 나서듯, 성소수자의 가족과 친구들도 자신에게 덧씌워진 낙인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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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지난 퀴어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프리 허그'를 했다. 젊은 성소수자들이 다른 성소수자의 부모님에게 달려가 껴안는 모습, 그리고 서로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기 모습 그대로 제 부모에게 안기는 마음, 편견과 차별과 낙인과 혐오 속에 자라온 자기 자녀를 안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힘들었지? 그래 네 맘 안다,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부모모임 부스 앞에는 쪽지가 붙었다. "언젠가는 저도 말씀드릴게요. 거짓말 안 하고." 진실된 모습이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서로를 다독이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낙인을 공유하며 손잡다

강연을 들으며 눈물을 닦던 그 어머니는, 인권단체 사무실에 떨리는 걸음으로 들어오던 그 어머니는, 이제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일원이다. 상담가이고, 조언자이고, 운동가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이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을 들고 퀴어퍼레이드에서 행진하는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낙인과 차별을 공유하는 이들이 손잡고 나아가고 있다. 성소수자가, 성소수자의 가족들이, 성소수자의 친구들이, 그 가족의 가족과 친구의 친구들이.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