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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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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이 커플이 몇 해 전 결혼식을 올렸다. 두 신랑은 서로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다. 한 사람이 선택한 곡은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이었다. 동성 커플의 결혼식에서 부르면 사람들이 많이 웃을 것 같아 골랐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이 둘은 노래가 시작되자 슬프게 울었다. 노래 가사와 달리 결혼식에 부모님이 와 있었지만, 이들은 이 곡이 그렇게 슬플 줄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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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 황망함을, 절망감을

지난해 이맘때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에 대한 법원의 심문이 있었다. 이 둘이 낸 혼인신고 불수리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이었다. 소송대리인으로 법정에서 김조광수 감독에게 물었다. 차분하던 그가 몇 마디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본인의 성적 지향에 대한 인식과 살아온 이야기를 묻는 질문이었다. 심문기일을 마치고 나와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그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 왜 그렇게 울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이성 커플은 그냥 혼인신고서만 제출하면 되는 일인데, 왜 자신은 법적 혼인을 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누구를 좋아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법정에서 판사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서글펐다고 했다. 그리고 50살이 넘은 그는 해외 다큐멘터리에서 본, 동성 결혼을 위해 싸웠던 한 커플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 커플 중 한 명은 동성혼이 제도화되기 직전에 세상을 떴다.

아무도 모른다. 상담으로 들어오는 동성 커플들의 사연을. 가장 먹먹하게 만드는 일은 언제나 어느 한쪽이 사망한 뒤의 이야기들이다. 사그라드는 파트너에 대해 수술동의서 한 장 못 쓸 때의 자괴감을, 죽은 이의 가족에게 집이 넘어가 같이 살던 공간에서 내쫓기던 막막함을, 유품을 챙겼다고 망인의 가족이 절도죄나 사기죄로 고소할 때의 황망함을, 파트너의 가족이 '너 때문에 죽었다'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할 때의 비참함을, 유골을 빼앗기고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르게 될 때의 절망감을.

가끔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결혼은 환상이고 문제가 많은데 굳이 원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결혼을 축하받을 수 있고, 결혼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얘기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 동성 커플들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결혼이 환상이라는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제도으로부터의 배제는 분명 실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2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이태종 법원장은 헌법이나 민법에서 명문으로 혼인이 남녀의 결합이라고 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 해석상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결합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에 대한 혼인신고 불수리가 적법하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상속권,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 입원 또는 수술에 동의하고 사망시 장례를 주관할 권리, 국민건강보험에서 가족으로 혜택을 받을 권리, 유족 보상 혹은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 각종 세법상의 가족공제청구권 등을 누릴 수 없게 되어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캄캄한 안갯속에 놓인 우리

결혼식을 올린 그 게이 커플의 어머니는 식장에서 인사말을 했다. 결혼식에 오려고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안개가 자욱했다고. 그래서 자식의 앞길도 이렇게 아득하겠구나 생각했다고. <금지된 사랑>만큼, 이 말 역시 슬펐다. 우리를 언제까지 이 캄캄한 안갯속에 놓아둘 것인가.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