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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코 좋은 프로듀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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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89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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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동안 윤종신의 음악을 들어왔다. 그는 좋은 가수였고 동시에 좋은 작사가였으며 또 좋은 작곡가였다. 그저 미성의 객원 보컬리스트로 출발했던 그는 부단한 노력을 거쳐 언제부턴가 자신의 음악은 물론이고 남의 음악까지 책임지는 음악감독이 됐다. 윤종신이란 이름이 이제 예능인이란 직함에 더 잘 어울리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음악을 찾아듣는 이들에겐 프로듀서 윤종신의 무게감도 만만치 않다.

김예림의 새 음반 <심플 마인드>(Simple Mind)를 듣는다. 총괄프로듀서는 윤종신, 제작사는 윤종신이 중심에 있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이하 미스틱)다. 윤종신은 늘 그래왔듯 오랜 지음인 정석원을 비롯해 프라이머리, 포스티노 등을 끌어모았다. <심플 마인드>를 두고 많은 얘기가 오갔다. 주로 웰메이드 음반이라든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혔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다. 나에게 <심플 마인드>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심플 마인드>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난 윤종신과 정석원, 프라이머리, 포스티노란 이름에서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에 음반의 전체적인 색깔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음반은 거의 예상대로 나왔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이건 근래 미스틱의 결과물을 지켜봐왔다면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이었다.

김예림, 박지윤, 퓨어킴. 지금 미스틱에 속해 있는 대표적인 여성 음악가들이다. 셋의 음악적 성정이나 성장 과정은 무척이나 다르다. 김예림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윤종신에게 간택됐다. 박지윤은 어린 시절 연예계에 데뷔해 박진영의 손길을 거쳐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한, 많은 굴곡을 거친 아티스트다. 퓨어킴은 서울 홍익대 앞에서 활동하며 묘한 매력을 전달하던 싱어송라이터였다. 이처럼 다른 음악적 성정과 성장 과정을 거친 셋이지만 미스틱이란 배경이 드리워지는 순간 이들은 하나같이 윤종신의 아이들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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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킴은 홍대 앞에서 주로 활동하며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불러왔다. 보편적 정서는 아니었지만 그의 가능성을 높게 쳐주는 이도 많았다. 퓨어킴이 윤종신과 함께 작업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 윤종신도 그의 가능성을 높게 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퓨어킴은 미스틱에 들어가 <마녀 마쉬>란 괴상한 제목의 음반을 발표하고, 이제는 사람들이 기억도 하지 못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미스틱에서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동안 싱어송라이터 퓨어킴은 단 한 곡의 자작곡도 싣지 못했다. 박지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홀로서기를 하며 훌륭한 음반 두 장을 연이어 발표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감성은 미스틱과 계약하는 순간 휘발돼버렸다.

이쯤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분명 윤종신은 퓨어킴이나 박지윤이 미스틱에 들어오기 전의 활동에서 어떤 매력을 느껴 계약을 제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듀서 윤종신의 손이 닿는 순간 그 매력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돼버린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세 가수의 노래들을 바꿔 부르게 한다 해도 별 차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박지윤이 <알면 다쳐>를 부르고, 김예림이 <미스터리>를 불렀다 해도 여기에서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아마 음색의 차이만 조금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간단하게 '몰개성'이라 말한다.

과한 비유를 들자면 마네킹 세 개를 두고 의상디자이너 윤종신이 계속해서 옷만 갈아입히는 것 같은 모양새다. 그는 새로운 대안을 꿈꾸었을 것이고 지금도 꾸고 있겠지만 그 결과는 웬만한 아이돌 기획사보다 더한 획일성이다. 앞서 나는 윤종신을 좋은 작사가이며 좋은 작곡가라고 말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더해서 나는 한때 그가 좋은 프로듀서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미스틱의 음반이 발표될수록 그 생각은 변하고 있다. 지금 그는 결코 좋은 프로듀서가 아니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