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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어게인〉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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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중창 팀 '낯선 사람들'로 데뷔했다. 솔로로 데뷔한 뒤에는 팝과 재즈를 적절히 조화시킨 음악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스스로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최고의 앨범을 연이어 만들었다. 목소리만큼이나 음악도 깊어졌다. 특히 6집 〈눈썹달〉과 7집 〈7〉은 이소라 개인의 디스코그래피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반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의 대중음악을 말하며 이 두 장의 앨범을 거론하지 않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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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 제3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공식 데뷔했다. 작곡을 공부한 이론적인 배경과 함께 어떤날, 팻 메시니 등에 영향 받은 감성적인 그의 스타일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 일명 '토이남' 정서라 불리는 도시남자의 감수성 가득한 음악은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 겸 프로듀서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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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 한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다. 솔로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앨범에서 연주를 도운 멤버들과 함께 윤도현밴드를 결성했다. 〈한국 록 다시 부르기〉 같은 앨범을 내며 한국 록의 적자로 평가받았다. 윤도현밴드에서 YB로 이름을 바꾸고 꾸준히 해외 진출을 타진하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투어를 돌았다.


위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한 글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소개 글을 쓴 건 이들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었고,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새삼스레 확인하고 싶어서다. 나열한 것처럼 이 세 명의 음악가는 지금 한국 가요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그만큼의 음악적 결과물도 만들어낸 음악가들이다. 이들의 이름 앞에 '한국을 대표하는' 정도의 수식어를 붙인대도 이의를 제기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세 명의 음악가를 데리고 JTBC 예능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이 시작됐다. 프로그램 내용으로 볼 때 제목은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따왔을 것이다. 영화에서 거리, 지하철 역사, 보트 위, 옥상 등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이소라와 유희열, 윤도현 역시 거리에서, 작은 펍(pub)에서, 공원에서 노래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무명 음악가이고 자기 나라의 거리에서 노래하는 거라면 한국에선 유명하지만 외국에선 무명인 세 명의 음악가가 한국이 아닌 외국에 나가 버스킹(거리 공연)을 한다는 것이 차이이다.

'외국'과 '버스킹'이 〈비긴어게인〉의 정체성이다. 제작진과의 사전 미팅 현장에서 "(외국에 나가) 하루에 한 번은 버스킹을 해야 한다면?"이라는 물음에 유희열은 답한다. "(굳이) 왜?". 유희열의 물음만큼 〈비긴어게인〉의 근본적인 문제를 잘 드러내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원고를 위해 〈비긴어게인〉을 찾아보면서도 내내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왜 이들이 외국을 나가야 하고, 왜 이들이 버스킹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찾아봤다. "과연, 나의 노래는 외국에서도 통할까?"라는 큰 제목 아래 "그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해외 길바닥에서 만들어지는 무대는 어떨지?"를 보여주고 "음악을 매개로 한 여행을 통해 그동안 전혀 다른 음악을 한 음악인들이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리는" 것이 기획의도라 한다. 기획의도를 아무리 읽어봐도 근본적인 물음은 가시지 않는다. 한국에선 유명할 대로 유명한 음악가들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해외 길바닥에서" 노래하는 것을 '초심'이나 '진정성' 같은 걸로 꾸미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너무 낡은 방식이다. 결국 남는 건 "과연, 나의 노래는 외국에서도 통할까?"라는 부질없는 의도뿐이다.

말하자면 이건 우리안의 작은 사대주의다. 제작진은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보이는 화면이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유럽에 나가 외국인들에게 박수를 원할 이유도 없고 자신의 앨범만 8장을 가진 가수가 'Over The Rainbow'나 'Moon River' 같은 뻔한 스탠더드를 부를 이유도 없다. 아일랜드에 왔다고 U2의 'With Or Without You'를 부르는 민망하고 상투적인 연출이 그렇게 말한다. 실제 감정은 알 수 없지만 감동받은 듯한 청중의 표정을 과하게 모은 편집은 이 의심을 더 강하게 한다.

가장 아쉬운 건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티스트를 겨우 이 정도 소재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지겹게 우려먹는 영화 〈원스〉의 주인공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보다 이소라가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룬 음악가라고 나는 확신한다. 둘을 나란히 세워 놓고 비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소라의 〈눈썹달〉이나 〈7〉보다 뛰어난 앨범을 글렌 한사드는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비긴 어게인〉에서 이소라는 그저 'Falling Slowly'를 카피하는 가수일 뿐이다.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비긴 어게인〉의 예고편이 나온다. 이번엔 영국에 가 비틀스가 공연했던 캐번 클럽에서 비틀스 노래를 커버한다. 공원에서 노래하는 윤도현의 모습을 보며 민망해하던 유희열처럼 나는 예고편을 보며 민망해진다. 누구보다 특별했던 우리의 음악가들은 흔해빠진 비틀스 커버 밴드가 되었다. 물론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할 한국의 시청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물음은 되돌아온다. 왜 '외국'인 건가? 굳이 외국까지 가 부른 노래가 한국에서만 소비된다. 제작진이 원한 건 노래의 감동인 건가? 외국인의 반응인 건가?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처음의 물음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도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