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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일어나는 공멸의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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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일간 바다 위를 헤매다, 며칠의 사투 끝에 5미터가 넘는 대어(大漁)를 낚은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 세계적 문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테지요. 그런데 만약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2015년이라는 현재의 시간으로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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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연승선이 설치한 연승에 잡힌 청새치를 구해주고 있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노인이 낚아 올렸던 대어는 청새치(blue marlin)라 불리는 물고기인데요. 안타깝게도 청새치는 지난 수십년간의 남획으로 고갈되어, 현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the Conservation of Nature)에 의해 멸종취약종으로 분류되고 있는 어종입니다. 산티아고가 지금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다면... 어쩌면 그는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낚지 못하거나, 기업형 어선과의 경쟁에 밀려 진작에 어부라는 직업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가 바다를 풍요롭다 했는가

청새치뿐만이 아닙니다. 한때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바다는 매우 빠른 속도로 비어가고 있는데요. 불과 지난 40여년간 전체 해양생물의 49%가 바다에서 자취를 감췄고, 고등어와 참치 같은 상업적 어종의 경우엔 무려 75%가 사라졌습니다.

이미 거의 완벽하게 멸종에 처한 해양생물도 적지 않습니다. 유럽뱀장어의 99%, 남방참다랑어와 태평양 참다랑어 95%가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어는 대서양과 내륙의 강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상어, 가오리, 대구, 명태, 정어리, 도다리 등도 매년 멸종 위기종 목록에 추가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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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미국, 영국 등의 생태학자와 경제학자 십여명이 공동 집필한 사이언스지의 논문에 따르면, 2048년이면 현재 어획되는 모든 해양동물의 90%가 바다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바다가 휑하니 비어버리기 까지 불과 32년 정도가 남은 셈이지요.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원인은 물론 복합적이지만, 가장 큰 주범 중 하나는 인간의 욕심이 자아낸 과도하고 파괴적인 조업입니다. 수산업 시장의 세계화와 경쟁이 가져온 무차별적인 남획 말이죠.

더 멀리, 더 오래, 더 많이... 수산업 시장경쟁의 가속화

해산물 소비량은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유엔식량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에 따르면 일인당 연간 해산물 소비량은 지난 50년 동안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같은 시기 세계 인구 또한 두 배가 넘게 늘었습니다. 늘어난 수요에 따라 업계는 바빠졌고 바다 위 선박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12년도에는 총 4,720여만 척의 선박이 바다 위에서 조업활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수산업 기업들의 덩치가 점점 커지면서, 매년 더 많은, 더 거대한, 그리고 최신식 기술로 무장한 어선들이 더 깊고 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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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배들이 밀려왔고, 그물은 너무 촘촘했다"

문제는 많은 경우 이들의 조업 방식이 해양생태계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이고 파괴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방식으로 남획된 해양생물의 일부는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일부는 죽은 채로 바다에 버려집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거대 가공 시스템과 유통망을 거쳐 소비자의 밥상으로 올라오지요. 과학자들은 이러한 조업방식과 소비행태가 해양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앞 다투어 경고합니다. 지금 바다가 그야말로 "붕괴 직전(brink of collapse)" 상태에 와 있다고 말이죠.

바다 위 유일한 가치 효율성, 그리고 버려진 인권

지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그린피스는 여러분께 바다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바다 위 인권유린은 수산업계의 파괴적 조업, 그리고 이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돌입한 수산업계를 움직이는 건 '비용의 최소화, 이윤의 극대화'라는 효율성의 법칙 뿐입니다. 경쟁은 가열되고 간접비는 늘어난 상황에서, 업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비용은 낮추면서 시간대비 어획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개도국과 저개발국의 노동자들이 파괴적 조업에 동원되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노동 착취, 심지어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의 피해자로 전락했습니다. 더 먼 바다에서, 최대한 오래, 그리고 최대한 많이 낚기 위해서, 소박한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착취하고 때로는 인신매매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끌고 와 노예처럼 부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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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멸로 향하는 경주, 우리가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해산물이 이처럼 파괴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 공급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바다가 스스로 개체수를 회복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멸종 위기에 처한 해양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바다의 자원을 누리는 인류가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아닐까요?

이제 우리는 경쟁적인 조업에 혈안이 된 수산업계와 그들의 탐욕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점차 비어가고 있는 바다와, 배에서 내리지 못한 채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선원들... 이 두 문제가 떼레야 뗄 수 없으며, 인간의 탐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글:
경규림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선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김지우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해양보호 캠페이너

* 이 글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시작된 스토리펀딩 "참치뿐일까요?"에 연재된 내용 중 일부를 축약한 내용입니다.

▶ 스토리펀딩 "참치뿐일까요?"를 통해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