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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상어 커플이 해양수산부에 편지를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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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희는 귀여운 백상아리 커플, 상순이와 상돌이 입니다. 네, 무시무시한 바다의 포식자이기도 하지만, 또 사랑과 육아에 있어서는 의외로 섬세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귀여운 물고기들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뼈대 있는 집안이기도 합니다. 우리 상어 집안은 42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고요, 백상아리와 우리와 가까운 친척인 주름상어는 10억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가족 모임 때마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놀리기도 합니다.

수억 년 동안 바다의 보스로 지내면서 자존심도 센 우리가 이렇게 인간의 언어를 배워서 뭍으로 나와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은, 그만큼 지금 우리 집안의 상황이 안 좋다는 뜻입니다. 최근 200년 동안 우리 상어 가문은 그 구성원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예 대가 끊긴 집안도 많으며, 거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집안은 더 많습니다. 이유는 임신한 상어, 어린 상어 그리고 사람들이 먹지도 않을 피라미까지 무분별하게 잡는 '파괴적 어업'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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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집어장치 바로 근처에 상어가 있는 모습이 팔라우 해역에서 관찰 된 모습>

파괴적 어업 중 우리의 희망을 가장 짓밟는 것은 '불법어업'입니다. 바다를 대상으로 하는 도둑질의 일종인 불법어업은 현재 바다가 처한 심각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바다 속 상황, 정말 안 좋습니다, 진짜로. 계속 무너지고 있는 바다 환경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입니다. 불법어업은 그 시간이 언제인지를 알 수 없게 합니다. 텅 빈 바다가 눈 앞에 보이게 되는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순간입니다.

IUU(불법.비보고.비규제)라고도 불리는 불법어업은 한국에서도 익숙한 표현일 것입니다. 한국이 2013년에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각각 '불법어업국' 그리고 '예비 불법어업국'이란 부끄러운 이름표를 붙이게 된 뉴스는 바다에서도 꽤 이슈였답니다. 사람이 통통배와 돛단배를 버리고 대규모 어업을 시작할 때부터 우리 물고기들은 이럴 줄 알았답니다.

불행 중 다행은 지난 2년 동안 한국의 원양산업이 조금씩 성숙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원양산업발전법을 두 차례에 걸쳐 개정하였고 조업감시센터도 설립, 어선마다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도록 규정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노력의 성과로 지난 2월에는 미국, 그리고 이어 지난 4월에는 유럽연합으로부터 한국의 불법어업 지정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얼마나 신경 쓰시고 고생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느러미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직도 너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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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야 말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이 바다에서 우리의 생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닿기 위해서는 그저 법 개정을 한 것에 만족하시면 안됩니다. 불법어업을 안하고 바다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정신이 담긴 법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신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이런 구체화는 '하위법령'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지금 이 하위법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좋은 기회인데, 손가락도 없고, 눈은 거의 장님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속이 타들어가고 있을 때, 우리와 앙숙이지만 그래도 정보를 얻기 위해 종종 만나는 참치 녀석이 '그린피스'가 지난 4월 23일 원양산업발전법 하위법령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알려줬습니다. 원양산업발전법의 바른 이행을 위해 국제 해양법 전문가들과 함께 의견을 모아 마련된 제안서라더군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바다 속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돌고래에게 부탁해서 이 제안서를 번역해봤는데요, 이거 꽤 괜찮습니다. 이 제안서대로라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한국의 원양산업은 고기잡이의 패러다임을 지속가능한 어업으로 전환시키는 리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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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기는 기회이듯, 불법어업국 지정 오명을 썼었지만 지금 원양산업발전법의 하위 법령을 제정하기에 이른 상황은 분명 기회입니다. 우리는 바다 자원의 90% 가까이를 파괴하고서야 자신들의 행동이 미치는 악영향을 인식한 사람들에게 좀 실망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구라는 공동체에는 분명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그만큼 지구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다고, 사람들의 세포 하나하나 그 어느 것도 지구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결국 사람들과 우리 상어 가문, 그리고 나아가 모든 생명은 이어져 있습니다. 이런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리는 바다와 지구는 우리 모두가 책임 있게 함께 돌봐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런 절박함을 직접 전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선 우리의 얘기도 널리 널리 알려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5월 겁나 더운 어느 날 우체통 앞에서
상순, 상돌 배상

* P.S. 다음에는 '이메일'이라는 것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돌고래 녀석이 사람들이 아직도 편지로 얘기 나눈다고 거짓말을 한 것 같습니다. 바다로 돌아가서 좀 따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