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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뺨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방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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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 보따리가 풀려지는 드라마 시리즈를 챙겨 보듯이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가 늘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원전 운영과 관련해 국민의 안전에 대한 주요 사안을 논의·결정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전체회의 입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감 속에 시청하는 '본방사수'라면 좋겠지만, 그동안 제가 지켜본 이 '드라마'는 임성한 작가도 울고 갈 한 편의 '막장 드라마' 같아 늘 무거운 마음으로 방청하게 됩니다.

시민의 후원금으로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로서 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원자력 규제기관과 원전 당국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입니다. 원안위 회의 방청은 이를 위한 활동이지요. 방청석에서 어떤 발언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고 있어야 하지만 사안에 대해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 똑똑히 기억하기 위해 귀를 더 쫑끗, 눈은 더 크게 뜨게 됩니다. '지켜보고 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책임있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허투루 논의할 생각마라!'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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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놀라운 전개: 캐나다는 폐쇄 결정한 원전, 한국에선 수명연장 표결 강행

지난 2월 27일 처음으로 참여한 원안위 회의 방청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새벽 1시가 넘어 끝났습니다. 이날 회의의 안건은 월성 1호기 수명연장 건. 국내 노후 원전 월성 1호기와 '쌍둥이 원전' 격인 캐나다의 한 원전은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 폐쇄하기로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월성 1호기는 그 비용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안전성을 강화했다며 수명연장 승인이 안건으로 올라온 상황.

새벽 1시까지 진행된 안전성에 대한 갑론을박에도 표결이 강행된 것을 보며, '막장 드라마'의 첫 느낌을 맛보았습니다. 자극적 소재에 빠른 전개 속도. 심사숙고해야 할 안건이 놀랍게도 전광석화 같이 표결되었습니다. 첫 방청을 통해 받은 인상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한 국가기관이라기보다 무엇인가에 쫓겨 서둘러 결정하는 '친원전 거수기'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상당히 우려스러운 비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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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특이한 주인공들: 서로 다른 역할로 견제해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상대방을 대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삼위일체' 구나!' 원안위 회의 방청을 하면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원자력 안전 업무를 수행하는 중앙행정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규제 전문기관인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이 셋은 자신들의 입장뿐만 아니라 다른 두 상대 기관의 입장을 어쩌면 그리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감탄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원안위가 KINS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는가 하면, KINS는 사업자인 한수원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지난 4월 23일에는 '규정된 고시를 원안위가 바꿔주면 KINS는 이를 따르겠다'고 KINS 원장이 발언할 정도니,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안전등급에 해당하는 주요부품이 기술기준에 맞지 않게 신고리 3호기에 설치되어 교체가 당연한 상황이었으나, 아예 그 기술기준을 바꾸자는 논의가 나올 정도니 원안위는 원자력 사업자 '규제'기관이 아니라 원자력 사업자 '구제'기관이라고 해야 어울릴 것입니다.

문제부품을 교체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자 다급했는지 방청석의 한 한수원 임원은 벌떡 일어서며 사업자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이 순간은 가히 압권이었죠. 조용히 방청해야 할 방청객이 발언했음에도 그 한수원 임원은 퇴장조치를 받지 않고 끝까지 회의를 방청했으며, 회의가 정회되었을 때 원안위 위원장의 자리로 찾아가 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안위를 독립기구로 설치하도록 권고한 것은 바로 이런 삼위일체의 모습을 예방하기 위함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Scene #3. 단골 명대사: '이것은 다 국익을 위한 것!'

기술기준을 어긴 부품의 교체가 당연한 상황에서도 여러 위원들은 '국익'이라는 단어를 들먹였습니다. 신고리 3호기 운영 허가의 조기 승인이 곧 국익을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 부품 교체를 피하고자 하는 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니 심박수가 자꾸 높아집니다. 안전에 대한 수많은 문제제기에 대해서 '정해진 기술기준을 준수했기에 문제 없다'고 고수하던 그 지엄한 기술기준이 이번 사안에서는 그냥 무시될 수 있다는 말인 걸까요.

그 기술기준을 종이 호랑이로 만드는 '국익'은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심히 궁금해집니다. 국민의 안전은 그 무엇과도 거래 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닌데, 국민의 안전이야말로 국익일 텐데, 도대체 원안위는 누구의 국익을 위해 국민의 안전을 팔아 넘기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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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4. 황당한 캐릭터: 놀라운(?) 판단력의 소유자

막장 드라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황당한 캐릭터가 원안위 회의에도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한 위원이 프랑스 신규 원전을 사례로 들며 우리나라는 신고리 3호기보다 더 큰 용량의 원전을 계획하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당혹스럽게도 그 위원은 작년에 진행되었던 새로운 노형이자 신고리 3호기보다 더 큰 용량인 APR+의 설계인증 심사에 원안위원으로 참여했었던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추가 자료로 우리나라 원전의 부지별 리스트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을 꼭 서면으로 받아야 하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함께 앉아있던 위원들이 더 부끄러워한 웃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본인이 무엇을 심의 의결하고 있는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 위원이라니. 이 캐릭터의 등장을 보는 것은 웃기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이런 분들에게 국민의 안전이 맡겨져 있다는 생각에 소름끼치게 무섭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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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원안위 회의를 방청하면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문제제기, 그리고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검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만약 4월 9일 개최된 원안위 회의에서 신고리 3호기의 운영 허가 승인이 났다면, 4월 23일 회의에서 확인된 기술기준을 어긴 부품 문제가 드러나기도 전에 위험한 원전 가동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한 위험과 손실은 오롯이 신고리 3호기 인근 340만 주민과 국민들이 떠안아야 했겠지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4월 23일에라도 중요한 안전 문제가 드러난 것을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알고 부실한 원전 안전 관리와 품질보증체계의 문제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4월 9일 회의 중 '대승적인 차원에서 위원 만장일치로 운영허가를 승인하자' 제안했던 한 위원의 발언이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들은 제발 대승적 차원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한 고민-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고민이 아니라-을 해주십시오.

글: 고수인 /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