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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에 짓눌린 〈군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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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는 유승완 감독의 〈군함도〉를 봤다. 역사적 사건, 더욱이 일제강점기의 강제징용을 상징하는 사건을 다룬 영화이니, 어쩌면 논란은 당연하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혹은 문학적 '허구' 사이의 관계는 역사영화나 역사소설에서는 언제나 논란거리였다. 그런데 그런 논란에 끼어들기 전에 일단 역사적 '사실'을 대략은 알 필요는 있다. 이번주 〈한겨레21〉의 한 대목.
 

군함도에서 석탄이 발견된 것은 1810년입니다. 이후 1890년 미쓰비시합자회사(이후 미쓰비시광업주식회사)가 섬을 매수한 뒤 본격적으로 해저탄광을 개발했습니다. 전쟁 말기가 되자 해저탄광에 조선인들이 본격적으로 동원됩니다. 한국 정부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2012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1944년 군함도에 조선인 노동자 500~800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희생자 수와 관련해선 1925~45년 섬에서 숨진 조선인이 122명이라는 것이 공개돼 있습니다. 일본 시민단체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하 모임)의 한 회원이 섬을 방문했다가 이 시기에 숨진 일본인 1162명, 조선인 122명, 중국인 15명의 이름·본적·사망일시·사망원인 등의 정보가 담긴 정사무소(한국의 동주민센터)의 화장인허증을 발견했습니다. 숨진 일본인 노동자 수가 조선인보다 훨씬 많다는 데서, 군함도는 조선인은 물론 일본의 하층 노동자에게도 '지옥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겨레21〉 1173호)

 

이런 역사적 팩트는 해석을 요구한다. 그 해석에서 영화를 둘러싼 친일이니 국뽕이니 하는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2차대전 말기 군함도에는 수백명의 조선인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일본인들(5000명 정도)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지옥섬'에서 희생되었다. 군함도의 희생자가 단지 조선인 노동자들만은 아니었다는 것. 둘째, 좀 더 정확한 사실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당시 군함도에서 일했던 조선인 노동자들과 일본인 노동자들의 구성은 달랐다. 짐작컨대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하러 왔던 일본인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의 경우에는 자발적 노동자들도 있지만,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많았다. 셋째, 역사적 사실로서의 '군함도'와 영화 〈군함도〉를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 이렇게 계급적 문제(지옥도에서 희생된 일본인/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와 식민주의 문제(강제징용된 조선인들)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바로 인류역사에서 아직까지는 계급적 연대가 민족적/인종적 차이를 극복한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 식민주의의 폐해를 겪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해석의 어려움이 있고, 친일, 국뽕 논란의 핵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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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시 2,000개가 넘는 상영관을 확보한 걸 두고 독과점 논란이 있다. 나는 독과점은 구조적 문제이기에 구조적으로 해결해야지 특정 영화나 감독, 제작사를 탓하는 것, 그들의 자제를 촉구하는 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특정 영화가 어느 비율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법적 규제를 해서 해결할 일이다. 제작-배급-상영의 분리도 모색해야 한다. 그렇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영화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산업/상업'이다. 그렇다면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영화(산업)에서도 독점/독과점의 폐해는 제도적으로 접근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공정위가 개입 못할 이유가 없다.
 
친일적(?) 장면에 대해. 위에 언급했듯이, 역시 생산적이지 않은 논란이다. 영화에서도 묘사되듯이, 당시 군함도에는 일본인 노동자들이 조선인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었다. 물론 조선인보다는 더 나은 조건에서 일했는데, 영화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주거환경의 차이 등을 통해 그런 지점을 드러낸다. 감독의 솜씨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인-조선인 노동자들 사이에 때로는 갈등(영화의 뒷부분에서 다소 뜬금없이 보여지는 '린치'의 시도)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혹은 도주를 방관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비춰주는 장면을 통해 보여주듯이 상호 이해의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어떤 경우에도 단순하지 않은 인간사의 모습이다. 그리고 어디나 있듯이, 강한 자에게 부역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조선인 부역자들이 좋은 예이다. 군함도에서 그런 조선인 부역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그런 추한 조선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고 해서 이 영화를 비판하는 건 조야한 민족주의다.
 
'국뽕' 논란에 대해. 일본기를 자르는 장면이나, 촛불시위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두고 국뽕 운운하는 말이 있나 보다. 글쎄, 나로서는 굳이 그런 장면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좋게 이해하자면, 극적 구성과 (감독이 의도한) 서사의 전개가 요구되는 영화의 성격상 넣을 법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엄연히 있었던 강제징용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서는, 다소 상투적인 느낌을 주지만 이해할 법하다. 내 개인적 견해로는 좀 더 절제된 장면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영화'로서 좋은 영화인가. 이런 답변이 있다. "옳은 주제를 지닌 영화가 옳은 것은 아니고, 옳은 생각을 하는 이의 영화가 옳은 것도 아니며, 오직 자신의 형식으로 옳다고 느껴지는 자리에 올라 있는 영화만이 옳다. 영화의 사회적 가치와 영화적 성취를 혼동한 나머지, 한 편의 영화에 자신의 사회적 정의감을 온전히 의탁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정한석 평론가) 이 주장에는 영화 '군함도'를 평가하는 일종의 기준이 들어있다. 어느 영화 혹은 문학이 좋고 안 좋고의 문제는 그 영화가 내세우는 "사회적 정의감"(항일 민족주의 등)의 유무가 아니라는 것. 영화의 좋고 나쁨은 그만의 고유한 "형식"을 통해 거둔 성취로만 평가된다는 것. 그런 점에서 '군함도'는 흔쾌히 좋은 영화라고 평하기 힘들다.
 
이 영화에는 일종의 서사의 균열, 혹은 단절이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 그려지는, 당시 군함도에서 벌어졌던 노역(매일 15시간 이상을 일했다고 한다)을 그리는 부분들은 인상적이다. 장면의 구상을 위해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드러나는 장면들이고, 지옥도의 참상을 느끼게 해준다. 관객에게 감흥을 준다. 지옥도는 그 지옥도 내부에서의 저항을 통해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갖게 한다. 이런 기대는 한편의 영화로서 내적 서사의 필요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문제의 내적 전개를 통해 서사를 구성한다. 그런데 〈군함도〉는 돌연 외부의 영웅(광복군 박무영)을 등장시켜서 문제를 단숨에 풀려고 한다. 그런 구성을 왜 시도했는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또한 당시 실제로 이런 일이 군함도에서 있었는지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사실과 픽션을 섞은 역사 '영화'이기 때문이다. 요는 박무영의 출현과 이어지는 집단항거, 그리고 영화의 상업성을 위해 기획된 탈출의 스펙터클이 서사의 전개상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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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절제가 핵심이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하나뿐인 딸 '소희'(김수안).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칠성'(소지섭), 칠성과 짐작 가능한 관계를 맺게 되는 여성인 '말년'(이정현) 등. 그리고 그 각각의 사연들은 미처 전개되지도 못한 채 '한꺼번에' 돌연 수습된다. 영화의 구성상 그렇게 수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이 영화의 큰 결함이 있다. 영화에서 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것은 문학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이 영화는 특히 그점에 소홀하다. 역사의 비극을 고발하면서도 동시에 영화의 상업성을 고려해야 했던 애매한 절충의 결과로 보인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차라리 다른 모든 인물을 빼고 칠성과 말년의 관계와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파고들면서 덜 상투적인 방식으로 지옥도의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서사의 집중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좀 더 힘을 뺐으면 싶다는 뜻이다. '군함도'라는 역사적 사실의 무게에 감독이 짓눌린 듯하다. 그 무게를 영화적 상업주의와 상투적 스펙터클로 해결하려 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수산의 소설 〈군함도〉나 유승완의 영화 〈군함도〉나 기대에 못 미친다. '군함도'를 비롯한 일제강정기 강제징용의 문제를 제대로 다룬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광주를 다룬 〈택시운전사〉가 개봉했다. 두가지 이유로 볼까 망설인다. 첫째, 영화의 시놉시스나 몇 개의 이미지컷을 보니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대충 짐작 가능하다는 점. 물론 송강호라는 배우가 그런 짐작을 깰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서사가 뻔히 보이는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둘째, 어떤 접근법을 택하든 '광주'를 다룬 영화나 문학은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 점. 그래도 봐야지 싶은데, 일단 주위분들의 평을 먼저 들어봐야겠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