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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 없는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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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를 보았다. 그는 이름을 믿고 볼 만한 감독 중 한 명이다. 단상을 적기 전에 프랑스 지명인 Dunkirk의 발음에 대해. 나는 불어를 거의 모르지만 아무래도 발음이 이상해서 동료 불문과 교수님께 문의해보니 불어로는 Dunkerque라고 표기하고 한글로 표기 가능한 발음은 '됭께르끄'란다. 한글 표준표기법에서는 경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됭케르크'가 가깝다. 영어 발음으로는 '던케르크' 혹은 '던커크'가 가까울 것이다. '덩케르크'는 영어, 불어 모두 어색하다.

좋은 영화나 문학은 보고 난 뒤에 관객과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실화에 기반한 작품은 그렇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만든다. 이 영화도 그렇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덩케르크라는 지명에 대해 전혀 몰랐고, 이런 구출작전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영화를 보고 나서 덩케르크에서 벌어진 구출 작전, 다이나모 작전에 대해 찾아봤다. 내용은 이렇다. 폴 콜리어 외 지음, 〈제2차 세계대전>(플래닛미디어)에 나온 설명이다.

- 다이나모작전
1940년 5월 26일, 덩케르크에서 포위되어 섬멸당할 위기에 처한 연합군을 구출하기 위한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이 시작되었다. 다이나모 작전을 통해 연합군은 총 36만6,162명의 병력을 덩케르크 일대의 해안지대로부터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 가운데 5만3,000명은 프랑스군이었다. 그러나 덩케르크 탈출 성공의 대가 역시 결코 적지 않았다. 영국 공군은 탈출작전을 엄호하다가 안 그래도 부족한 금쪽같은 항공기를 177대나 잃었으며, 영국 해군 역시 호위함을 10척 잃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 종료 이후에도 연합군 병력에 대한 철수활동은 지중해 연안지역을 비롯한 여타 프랑스지역에서 계속되었으며,모든 철수작전이 중단된 8월 14일까지 19만1,870명이 추가로 탈출에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5월 20일부터 8월 14일까지 프랑스를 탈출한 연합군 병력은 총 55만8,032명에 달했다. (130면)

- 덩케르크
아직 노르웨이의 연합군 철수작전이 채 완료되지 못한 시점에서 독일군의 전격전으로 인해 벨기에와 프랑스의 연합군이 붕괴되자, 영국 해군은 노르웨이 철수작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철수작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독일군에게 포위당한 채 덩케르크에 옹기종기 모여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던 영국 원정군 주력과 프랑스군 일부의 머리 위에는 히틀러 총통에게 공군력만으로 연합군을 섬멸해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한 괴링의 지시를 받은 독일 공군기들이 난무하고 있었으며, 독일 공군기들의 집요한 공격에 영국군은 구축함 9척과 다수의 병력 철수용 민간선박을 앓는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러나 버트람 램지Bertram Ramsay 준장의 지휘하에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지속된 철수작전을 통해 영국 해군은 총 33만8,226명의 영국군과 프랑스군 병사들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한다(그러나 대부분의 장비를 덩케르크 해변에 그대로 버려두고 와야 했기 때문에 , 이후 영국은 미국의 도움을 받을 때까지 계속 장비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영국은 강대한 독일 제3제국에 홀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2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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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 거대한 구출작전의 총체적 면모를 담는데 영화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 작전은 2차전쟁 초기에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던 수세국면에서 좋게 말하면 구출, 나쁘게 말하면 도주작전이었다. 전쟁 말기에 공세국면에서 전개된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는 대조가 된다. 작전의 성격부터가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멀다. 〈덩케르크〉의 시작 부분에서 독일군의 공격으로 쓰러져가는 몇몇 영국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래서 시사적이다. 이 영화는 격렬한 전투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 영웅들의 승전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것. 덩케르크 구출작전 자체의 성격이 그럴 뿐만 아니라 감독의 관심사가 그것이 아니라는 걸 도입부에서 알려준다.

그러므로 영화는 스펙터클이나 영웅담에는 관심이 없다. 꼭 전쟁의 지휘관만이 아니라 예컨대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평범한 군인들의 영웅담도 배제된다. 〈덩케르크〉에서도 구출의 지휘를 맡은 램지 장군 등 몇몇 인물의 이름이 거명되지만 그것이 도드라지지 않으며 관객의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익명이다. 그렇게 관객에게 기억된다. 그것은 의도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내세우지 않는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일반 병사들의 모습, 공중전에 참여하는 파일럿들, 그리고 도버해협을 건너 민간 선박을 몰아 병사들을 구하러 간 민간인들의 이야기(기록에 따르면 수천 척의 민간 선박이 동원되었단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에나 영화는 거의 의도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지운다. 이 전쟁을 누군가의 영웅담으로 만드는 걸 한사코 피하는 것이다. 이름 없는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래서 동료를 불신하고, 영국군들은 프랑스군들을 배에서 몰아낸다. 전쟁에 고귀한 이념이나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전선에 서지 않기에 죽을 일이 없는 정치인들이나 고위 군장성들이나 떠드는 공허한 말들에 불과하다. 물론 영웅담으로 보도되는 어떤 '죽음'이 있지만, 그건 아마도 당대에 실제 있을 법한 일의 삽입이라는 느낌을 준다. 영화의 초점은 거기에 있지 않다.

전쟁에서 관건은 살아남는 것이다. 그게 승리다. 그래서 영화에서 살아돌아온, 하지만 패잔병이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병사들에게 '살아온 것이 승리다'라고 영국인들은 말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다소 '국가주의적'인 멘트가 등장하나(역시 실제로 있었을 것이 틀림없는), 영화의 관심은 그런 거창한 이념이나 말들이 아니라 살아남고, 살아남게 하기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말은 필요 없다. 그냥 행동으로 보여줬을 뿐이다. 거기에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자신들의 배를 몰고 해협을 건너가 젊은 병사들을 구했고, 연료가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구출되는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일럿은 적 폭격기를 공격하고 불시착한 뒤 포로가 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특히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국가주의적 요소가 있는 영화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른바 '국뽕' 영화. 나는 그런 해석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고, 영화에서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설령 그렇더라도 내가 알기로 영국의 국가주의는 우리가 아는 국가주의와는 매우 다르다. 영국의 왕실, 귀족들, 지배계급들은 국가의 위기상황에 가장 먼저 전투에 나갔고 전사했다. 1차대전, 2차대전이 끝난 뒤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들의 재학생 다수가 사망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그들은 대개가 지배계급에 속했다. 영국의 왕정제나 귀족제가 수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존립하는 이유. 그들 지배세력이 그들의 방식으로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반시민보다 앞서서 전쟁터에 나갔고 몸을 던졌다. 그게 보수주의의 가치다. 전쟁이 나자 비밀리에 도주한 뒤 한강 다리를 폭파한 어떤 이와는 다르다. 나는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내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는 이것이다. 한국식 국가주의, 국뽕, 보수의 수준이 어떤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용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영화의 구성과 리듬, 편집은 좋다. 이 영화의 매력은 내용보다는 여기에 있다. 구출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행렬, 공습해오는 독일 전투기. 스러져가는 병사들. 특히 항공 전투장면은 할리우드 영화가 신물 나게 보여주는 특수효과와 스펙터클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어떤 감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물들과 공간의 배치에 대한 감각, 그 감각에서 독특한 미장센을 제시하는 능력에서 놀란 감독은 뛰어나다. 영화가 단지 인물만이 아니라 공간과 장소의 예술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 대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거의 행동과 표정으로만 상황을 제시한다. 그걸 통해 긴박한 영화의 리듬을 창출한다. 그점도 마음에 든다. 요즘 영화는, 특히 한국영화는 너무 말이 많다. 그것도 감독이나 제작자가 관객을 불신해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불만은 한스 짐머가 맡은 음악이다. 대체로 음악도 좋았지만, 대사의 절제만큼이나 음악도 좀 더 절제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전쟁영화라고 해서 꼭 짐머 풍의 장중한 음악만이 어울리는 게 아니라는 걸 실험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움은 남는다. 때로는 절제와 침묵이 더 깊은 감흥을 주는 법이다.

아이맥스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추천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