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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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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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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당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 많이 돌았던 '짤'이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냐는 기자 질문에 서리 낀 안경을 쓴 문재인 후보가 "안보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사진이다. 나도 그때 보면서 많이 웃었지만, 요즘 사드를 비롯해 안보 관련 사안이 논의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꼭 농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안보의 이름으로 안 보이게 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드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가정보원이 아무 감시도 받지 않고 특정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데도 안보라는 장막이 절대적인 구실을 했다. 안보만 들이대면 어떤 비밀도 어떤 독재도 정당화할 수 있기에,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안보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었다. 남북한이 여전히 전쟁 상태에 있다고만 하면,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대체로 입을 다물었다. 홉스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자연권의 일부를 양도해야 한다며 국가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했듯이, 전쟁에 대한 공포는 국가권력에 대한 판단을 정지시키며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그런데 미셸 푸코가 홉스의 논의에는 실제 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처럼, 사실 안보 논리를 작동시키는 '전쟁'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안보교육'에서 한국전쟁은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지만 거기서 제시되는 것은 몇 가지 정형화된 이미지들뿐, 한국전쟁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한국전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알게 되면 안보가 보장하는 것이 누구의 안전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 논리는 어떤 구체적인 것을 안 보이게 하면서 작동한다.

한국전쟁 개전 직후에 남한 전역에서 벌어진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집단학살은 이 전쟁이 지닌 어떤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49년에 정부 주도로 결성된 보도연맹은 과거 좌익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조직한 전향자 단체였는데,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은 전쟁이 터지자마자 구금되었다. 6월25일에 내무부 치안국이 전국의 도 경찰국에 그들을 구금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구금된 이들은 후퇴하는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했다. 그 희생자는 분명히 확인된 인원만으로도 5천명에 가깝다. 그 뒤에도 거창사건을 비롯해 국군의 민간인 집단학살은 여러 번 벌어졌다. 이들은 누구의 '적'이었을까?

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는 4·19혁명이 일어나자 곧바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전국적으로 유족회가 조직되고 국회에서도 진상조사가 진행되었다. 군경이 권력자를 위해 '국민'을 죽이고 억압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완수되지 못했다. 1961년 5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세력은 진상조사를 중단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족회를 해산시키며 그들이 세운 위령비도 모조리 파괴했다. 심지어 유족회 간부들은 '특수반국가행위'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아야 했다. 안보 논리로 쿠데타를 정당화해야 할 군부세력에게 국군이 꼭 국민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만큼 '위험한' 것도 없었기에 이 문제는 철저히 봉인되었다. 이런 강요된 망각 위에서 오랫동안 안보 논리는 기승을 부렸다.

'박정희 레짐'에서 벗어나려면 그 체제의 핵심에 있던 안보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국가폭력의 진상을 밝히는 정부 차원의 작업이 꼭 재개되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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