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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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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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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지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지난 5월22일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되는 날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기도 해서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에서도 꽤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의 소설들도 당시에는 모두 번역되었지만, 이제는 다 절판돼서 그 책을 보려면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이미 잊힌 존재에 가깝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다른 재일조선인 작가들과 달리 이양지는 등단한 1982년부터 사망한 1992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의 작품들도 대부분 서울에서 집필되었다. 초기작들은 일본에서 지내던 시절의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어찌 보면 전형적인 '재일조선인 문학'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작품의 소재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모국 유학생'으로 변해간다. 그 계기는 아마도 한국어 번역이었다. 일본 문단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이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일본 내의 소수자로서 재일조선인을 그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한국에 와도 소수자가 되는 재일조선인들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그는 계속 일본어로만 썼지만 그가 염두에 둔 독자는 어쩌면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에 와서 무시당하거나 소외감을 느꼈다는 재일조선인들은 많다. 이양지도 그랬지만, 일본에서 차별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족 정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품게 되는 '조국'에 대한 마음은 '본국인', 즉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활씬 강하다. 그런데 막상 '조국'에 와보면, 왜 말도 못하냐는 핀잔을 듣고, 또 '일본인' 취급을 받아 상처를 받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 특히 이양지가 한국에서 지냈던 80년대에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훨씬 부족해서 그는 '조국'에서도 이방인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이 그가 모국 유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쓰게 된 동기였을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면서 소비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그 '한국인'이라는 범주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외국인을 대할 때보다 재일조선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덜 관용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일조선인들은 '한국인'이라는 규범을 혼란시키기에 불편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양지의 대표작 〈유희〉는 이러한 혼란을 의도적으로 추구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모국 유학생을 다루었지만, 그 전에 썼던 것과 달리 소설의 화자가 본국인인 점이 중요하다. 작품의 줄거리 자체는 '유희'라는 모국 유학생이 끝내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는 좌절 이야기지만, 그 과정을 본국인의 시선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재일조선인과의 만남을 통해 본국인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양지는 본국인의 위치에서 말한다는 '유희'를 통해 '다수자'를 낯설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소수자'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지만, 소수자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해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소수자가 공격하는 것은 '다수자'라는 우리이며, 거기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바깥세상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이양지의 도전은 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중단되었지만, 그가 시작한 '유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