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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장남으로 살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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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남성성'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남성들의 세계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글을 써달라는 메일이었다. 메일을 읽고 여러가지로 고민이 됐다. 나는 남성들만의 세계, 아니면 남성들이 주축이 되는 세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모임이나 공간을 회피해왔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남성들만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물론 그런 세계를 접할 일이 거의 없는 여성들보다는 조금 더 아는 게 많겠지만,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남성들의 세계란 이런 것이라고 자신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고민 끝에 다른 남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고, 내가 남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남성으로서 존재하고 행동하는 공간을 하나만 꼽자면 다름 아닌 가정이기에, 내가 어떻게 가족 안에서 생활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남성으로서의 삶

본격적으로 가족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내게 이런 글 청탁이 들어왔는지를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글의 기획이 '남성페미니스트 말하기'인 것으로 보아, 첫째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둘째 내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나한테 글을 부탁한 것 같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잠시 차치하고, 나는 여성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가능하다면 여성운동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떻게 처음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원래부터, 그러니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평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고, 그 중에서 성평등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왜 그랬을지 생각해보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거나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내 마음 안에서 너무나도 자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대학생 때 반(反)성폭력 운동을 열심히 했고, 나중에는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활동에도 참여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나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입장을 정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차별적인 언행을 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이 '가정'의 의미가 조금 애매할 수 있어서 자세히 쓰자면, 나는 올해 봄에 결혼을 했다. 지금 내게 가정은 와이프와 나 둘로 이루어진 공간이자 관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게 가정은 이른바 '본가'를 의미했다. 본가는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남동생 둘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 빼고는 다 남성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정 내에서의 남성의 세계, 내가 참여하며 관찰하고 살펴본 우리 형제들의 이야기를 써 볼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조차 쓰기 힘들 것 같다. 동생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도, 아빠하고 깊은 유대를 나누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본가 가족구성원들과 나의 관계

아빠하고는 언젠가부터 가깝게 지내고 싶지가 않았다. 아마 중학교 이후로 아빠랑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아빠가 맨날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와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빠가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권위적인데다가 이따금 폭력적이어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과 권위를 싫어했고, 아빠가 가부장적이었든 아니었든 어쨌든 그 권위와 폭력 때문에 아빠와 멀어졌다. 나중에야 그 권위와 폭력을 가부장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내게 폭력과 권위는 가부장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동생들하고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생들이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다소 부적절한 말을 하려고 하면 나는 일단 대화를 피하고 봤다. 사실 동생들이 점차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 적잖게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할 정도의 의욕이 생기진 않았다. 적당히 선을 그으며 살아왔다. 그나마 엄마하고 이야기하는 건 즐거웠는데,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인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엄마한테 말하지 않게 됐다. 내가 무슨 수업을 듣는지, 일주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요즘 누구랑 가깝게 지내는지 등, 어떤 이야기도 안 하게 됐고, 주로 내가 엄마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그냥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원래 내가 내향적이고 외골수여서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어도 심심한 줄 몰랐다. 아무튼 나는 부모님이나 동생들하고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기보다는 내 둘레에 벽을 쌓아서 상대방도 넘어오지 않고 나도 넘어가지 않는 그런 삶의 방식을 유지해 왔다. 다행히도 나는 그렇게 외골수로 가족 안에서 잘 살아왔다.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말하지 않아도 됐고, 일어나고 싶은 자리에서는 손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빠는 이따금 토요일 아침부터 거실에서 막걸리를 마시자고 나와 내 바로 밑 동생을 방에서 불러냈다. 막내동생은 미성년자라서 애초에 부르질 않았다. 토요일 낮부터 무슨 술이냐 싶어서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거칠어지고 권위를 내세우는 아빠를 보기가 싫었다. 그것도 주말 시작부터 말이다. 내 바로 밑 동생은 원래 나보다 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를 거절하는 법이 잘 없었다. 반면 나는 처음부터 아빠 말을 아예 무시해버리거나 같이 자리를 하더라도 술을 마시는 시늉만 하고 이내 다시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때면 나는 굉장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바쁘다고, 일이 있다고 짧게 말하며 일어나기 바빴다.

가부장제 속 남성권력의 계승 의식

아빠랑 같이 막걸리를 마시던 동생이 아빠랑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모른다. 굉장한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던 것 같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아빠가 막걸리를 권하고, 동생이 막걸리를 받아 마시는 그 시간은 우리 가정 내 남성들이 갖는 우월적 지위를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이었고, 가부장의 권력을 계승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그 의식을 공유하지는 않았다는 스스로 만족해하며 그동안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와 막내동생을 소외시키며 이래저래 부적절한 이야기를 한 아빠나 동생이나 잘 한 건 없겠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피해온 내 자신은 과연 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과연 가부장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행동을 보여왔는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드디어 글의 서론을 마치고 내 이야기, 가족 안에서 내 남성으로서의 모습, 내 소통 부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관계맺음과 소통을 위한 감정노동

어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필요하다. 기초적인 생존을 위한 노동도 물론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감정적인 노동도 필요하다. 요컨대 모든 인간은 조금씩 다르기에 서로 소통을 해가며 욕구와 필요를 맞춰 나가야 하고, 교감을 통해 관계를 가꿔 나가야 한다. 상대방과 맞춰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상대방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돌봐야 하기 때문에 소통이라는 노동을 해야 한다. 이 소통을 소홀히 하거나 할 줄 모른다면, 관계 또한 자연스럽게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바로 그 소통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소통 부족 그 자체가 내 남성으로서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사실 소통 부족은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단점이다. 다만 나는 소통을 제대로 할 줄 몰랐음에도 가족 안에서 별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꽤 편안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내가 소통을 하지 않고 내 뜻대로 일을 밀어붙일 때, 부모님, 특히 엄마, 그리고 동생들이 내 기분을 살피고 알아서 나한테 맞춰줬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내가 누렸던 장남이자 큰형으로서의 특권이다. 나는 소통이 부족했음에도 그로 인한 불이익을 보지 않았고, 가족 안에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동으로부터 면제되어 있었다.

장남이라는 특권에 대한 성찰

그러니까 나는, 가부장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고, 실천할 줄 알았다. 여성을 차별하지 말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리고 여성들과 연대해서 여성을 가시적으로 억압하는 제도들과 맞설 줄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가부장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 내 삶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바꿔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지금이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내가, 비록 능동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내 의사를 강요하진 않았지만, 가만히 있으면서 수동적으로 상대방이 내게 맞추기를 기다려 왔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내향적이라거나 외골수라거나 하는 것과는 무관하고, 내가 가정 내 남성(그것도 장남)이라는 권력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남성성'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남성성에 한 가지 모습만 있진 않을 것이고, 특히 문제가 되는 가부장도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가정 내의 남성성에 대한 글을 쓴다고는 했지만, "가정 내의 남성성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나는 남성으로서, 남성이기에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문제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빠가 내게 막걸리를 권할 때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까? 동생 따라 같이 식탁에 앉아 막걸리를 따라야 했을까?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아빠한테 내가 토요일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싶진 않으니 엄마를 포함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른 활동을 하자고 하거나, 술은 저녁에 온 가족이 같이 식사하며 마시자고 제안이라도 해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빠가 비록 전형적인 마초이자 가부장이지만, 그렇다고 매번 나 때문에 무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야, 아빠가 바로 밑 동생과 나만 불러내는 상황에서 엄마하고 막내동생도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다음 번엔, 스스로 조금 어색하더라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글쓴이(가명)는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기획: 윤영 (노동당 여성위원회 조직국장)
편집: 김나영

* 이 글은 <페미디아>에 실린 글입니다